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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지리산(화엄사-노고단-만복대-다름재-?마을) 23-24일

올 해가 가기전 마지막 산행지를 지리산으로 정했다.
모처럼 3일간 연휴, 차분하게 1박2일 산행도 가능할 것이고,다만 25일이
크리스마스여서 아무레도 가족들에 대한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했었다.

산행코스는 홀로 산행인지라 번잡함을 피해 조용한 곳으로 골라 화엄사계곡에서 서부능선쪽으로, 어차피 비박해야 하니 하중 훈련겸 안얼어 죽을 정도로 베낭을 꾸렸다.
아침 늦잠을 자버려 10시경 구례에 도착, 터미널내 식당에서 다슬기탕으로 아침과 점심의 어중간한 식사를 완벽하게 하고 촌로와 이야기를 나누며,화엄사행 버스를 기다렸다.
일주일전 내린 눈 때문에 성삼재 버스는 통제되어 있고, 택시만 산행객들을 실어 나른다.

화엄사 매표소에서 어떤 아저씨가 관리공단 직원과 목소리 높이며 언쟁 중이다.
공원입장료 1,600원 문화재관람료 2,200원 합계 3,800원
화엄사 구경 안할려는데 왜 2,200원을 내야하는가에 대한 심심찮게 보게되는 실랑이다.
내년부터 공원입장료는 없어진다고 하지만 문화재 관람료는 공원입구에서 계속 징수한다.

매표소에서 아저씨의 실랑이 때문인지, 문화재 관람료 2,200원이 아까워 지금까지는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사찰내부를 잠깐 구경하기로 하였다.
또, 부처님에게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성삼재 도로가 개통된 뒤로   노고단의 관문과도 같던 화엄사계곡은 이젠 호젓한 길이 되어 버렸다.

날씨는 청명하여 꼭 봄 날 같다.
자켓을 벗어 베낭에 넣고 이제
화엄사앞 다리를 건너 계곡길로 향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면서,
어깨를 누르는 베낭을 의식하여 보지만, 삶의 무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임을…….
평탄하고 조용한 길… 바람이 휭하고 지나가고 나면 그때야 산죽이 파르르 떨리는 소리를 내고, 잠시 바람소리에 가려있던 계곡의 물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계곡의 바람이 전하는 말을 두 눈 뜨고 듣는다.



한참을 조용하게 혼자 올라가는데 앞에서 재잘재잘 거리는 목소리가 낭자하게 들려온다.
대학 초년생 정도의 아가씨 4명이 페트병 하나씩 들고 서로 사진찍으며 올라 가고 있다.
잔뜩 짊어진 베낭을 보고 경외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어 온다.
속으론 힘들어 죽겠지만 내색은 못하고 웃음 가득하게 대답해 줄 수 밖에..
“아저씨 안 무거우세요” “우와! 대단하다.” “연기암까지 갈려면 아직 멀었나요?”
“아저씨는 어디까지 가세요?” “노고단…, 저희들도 따라가면 되나요? 야,우리 가보자”
“그냥 아저씨 따라가면 되겠다. 별로 힘도 안드는데..”……등등 정말 속수 무책이다.
4명 단체사진도 찍어주고, 그 커다란 베낭에서 귤도 하나씩 꺼내여 주었더니
이젠 나를 완전히 존경하는 눈치다.
연기암에서 헤이지며 손을 힘차게 힘들어 준다.  그래, …고맙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이제부터 경사가 가파라 지고 잠깐씩 다리쉼하는 횟수도 많아진다
간혹 몇 명이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올라가고 멋진 고어텍스 자켓을 입은 스님 한 분이 뒷짐지고 날아가듯이 올라간다.(아마 축지법의 도를 연마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우보법을 열심히 연마하고….
햇볕은 따사롭고 평화롭기만 하지만, 국사등을 지나 중재부터 이건 고행이다.
담배하나 멋있게 피워물며 쉬고 있는데,
나를 힐끗 바라보며 또 그 스님이 바람처럼 내려간다.

밑에서 두사람이 올라오고 있다.
남자의 행색으로 보아 고수임이 한 눈에 보이는데, 일행인 여자는 이거 정말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힘들어 한다.
같이 쉬면서 두 분 모두 솔로등반이고 우연히 하동에서 같은 버스를 탔단다.
어차피 시간상으로 어중간하여 오늘 운행은 노고단밖에 되질않기에 같이 오르기로 했다.
코재에서 코가 씩씩 거리도록 올라 드디어 가파른 경사길이 끝나고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와 만나게 된다.

코재에서 올라서면 바로 왼쪽편에 종석대가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지만, 출입통제 상태다.
노을이 질무렵이므로 종석대에 올라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시간때인지라 아쉬움이 더 컸다.
무시하고 올라버릴까 했는데 노고단대피소에서 너무 뻔하게 보이는 지라 비싼 요금내고 싶지가 않아 참기로 했다.

  대피소 바로 앞 외국인 선교사 별장촌 건물터에 오른다.
지리산 주능선의 막내 종석대를 바라보는 조망처로 이 폐허지 만한 곳이 없다.
노고단에 들릴때면 꼭 아무도 없을 때 이폐허지에 오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종석대로 해가 떨어지고 있다.
한 없이 바라만 보다 어둠이 내려서야
대피소 취사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취사장은 의외로 붐비지 않고 공간의 여유가 있다.
코재를 같이 올랐던 두 분이 자리를 잡고 앉아 나를 반긴다.
안그래도 혼자 쓸쓸하게 먹기엔 조금 어줍잖았는데 흔쾌히 합석하였다.
남자분이 고수라는 것은 저녁 식사 준비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백두대간도 종주하였다 하니, 산행에서는 가히 경지에 이르렀다 하겠다.

취사에 약한 나는 그저 간편하게 뜨거운 물만 넣으면 15분만에 완성되는 알파미 비빔밥
(일명 군대에서 전투식량이라 한다. 몇 번 먹어 보았는데 간편하게 한끼의 식사로는 거뜬하다. 라면보다 역시 밥이 배를 알차게 하고 기호에따라 쇠고기,야채,김치 비빔밥이 있다.
중량과 부피면에서 라면과 비슷하여 동계훈련때나 비상식으로 사용하면 안성맞춤이다.)
만 준비하였는데 미안해서 하나 드렸더니 내일 점심 식사용으로 최고다고 좋아한다.

밥의 뜸이 드는동안 술안주용으로 준비한 고기를 볶아 고량주를 함께 내 놓았더니
그 고수분 싱긋 웃으며 베낭에서 발렌타인 17년산을 꺼내 올려 놓는다.
이제는 한치의 의문도 제기할 수 없이 그가 고수임을 인정하고 만다.
헐! 입이 벌어지고 향긋한 술내음을 만끽하면서 밥은 이제 저 멀리 기억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 취사장안은 온갖 요리준비에 버너의 불꽃들이 쉭 쉭 소리를 내며 춤을 추고 있는동안, 한 잔 또 한 잔 너무 일찍 시작한 술로 거나하게 취해가고 있었다.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별장 건물터로 잠자리를 하러 갔다.
눈이 소복히 쌓여 있어서 발로 다져 누르고 피곤한 몸을 침낭에 집어 넣고 나니
꼭 집안 거실에 누워있는 것 같다. 밤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눈앞으로 쏟아져 내리고…..
        
  
아침은 누룽지 한 그릇 끓여 먹고, 식수와 꿀차를 준비하여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서북능은 인월의 앞 덕두산까지 해발고도 1,000m – 1,400m정도 되는 봉우리와 고개를 수없이 오르내려야 하는 굴곡진 길이 20km가 넘는데 당일로 주파하기는 힘들고,
점심때쯤 탈출하여야 하므로 정령치까지 가면 혹 오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일단 정령치까지 가기로 하고 성삼재를 향해 내려간다.

성삼재엔 갑자기 으스스 한기가 돌정도로 제법 아침 칼바람이 분다.  
철책의 문을 통과하여 이제 서북능으로 발길을 옮긴다.
작은 고리봉에 오르는 길은 결빙이 되어 있어 조심 조심하느라 애를 먹는다.
아이젠 꺼내기 싫어 그냥 운행하다가 다니는 이 없는 산길인지라 혹 다치면 고생일 것 같아
착용하니 훨씬 편안하다. 진작 그럴걸…..

작은고리봉에 오르니 사진작가 한 분이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고 있다.
새벽 해뜨기 전에 올라왔다고 한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 조망이 기가 막히다고 웃음이 가득하다.
덕분에 사진 한장 부탁하고……
작은 고리봉에서 만복대까지 능선을 바라보니 갑자기 힘이 빠진다.
이건 오르막의 연속이다.

(가을 억새밭 산행을 할 때 정령치에서 성삼재로
8km의 만추산행을
바래봉 철쭉이 필 무렵에는 정령치에서 운봉목장까지 12.2km의 철쭉산행을 꾸리는 것이 실속있고 효과적이라고 한다).

만복대까지 가는 지루한 길에 오가는 이 하나도 없다.
어쩌다 대간종주하는 한 무리가 지나가길래 정령치 사정을 물어 보았더니
택시도 안올라 온다고 한다.
이미 상위마을로 빠지는 길을 지나왔기에 다시 내려가기도 그렇고 일단 만복대까지
올라 가기로 하였지만, 명확한 계획이 없는 터라 몸마저 힘들어 진다.
점심은 계획상 정령치에서 해결 하기로 생각하고 식수만 준비한 관계로
어제 저녁 밥 몇술 뜨고 아침 누룽지만 먹었더니 뱃속에서 자꾸 신호를보낸다.

양지바른 곳에 걸터앉아 비상식 크래커와 꿀물로 기운을 차리면서 두다리 쭉 뻗고
쉬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린다.
“아빠! 어디세요? 몇시에나 도착하세요? ……” “ 응, 아직 산인데 금방 내려갈께”
말은 그리 하였지만, 이거 몇시나 될지 모르겠다.

만복대 오르는 좁은 등산로 양옆의 잔목들에 배낭이 걸리고
시름 시름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사람이 나타나 웃고 있어 놀랐다.
남원에 사시는 분인데 주말이면 지리산온천- 당동마을 – 성삼재 – 만복대 –다름재 - ? 무명능선-지리산온천으로 산행을 즐긴다고 한다.

아하! 하늘이 나를 도우셨구나.
만복대에서 바로 지리산온천으로 빠지는 길을 알게 되었으니, 마음씨가 꼭 부처같다.
초행인 나와 동행해주고 지리산온천에서 남원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준다.
정말 고맙고 미안스럽기 그지 없을 정도로 호인이었다.
산행전 화엄사에서 부처님에게 이번 산행 잘 부탁드린다고 기도드렸더니 첫째날,둘째날
멋진 분들을 만나 오랜만에 지리산과 산사람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된 뜻깊은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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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난 2006.12.25 13:17
    酒님과 친하지 못하니 고수의 반열에 오르기는 요원한데
    어설프게 축지법도 못하는 주제에 우보법은 더 어렵더이다^^*
    청명한 날씨에 지리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는듯한 산행 흔적을
    따라가다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집니다!
    화엄사 부처님의 불력을 미처 몰랐더이다! 요 다음에,,,,
  • ?
    오 해 봉 2006.12.25 23:21
    노고단 별장터 눈밭에서 비박을하신 虛虛님은
    대단한 고수 싶니다,
    화엄사에서 만복대까지 반가운소식 고맙습니다,
    참 재미있는 산행기를 읽고갑니다,
    자주좀 들려 주세요.
  • ?
    타타타 2006.12.27 22:01
    만복대..
    정말 좋은 곳이죠.
    서늘한 추위 속에서도 하늘에 별바다가
    다시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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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훈 2007.01.05 17:06
    야 복천아우 난 누구다구 자네도 오브넷 가족이었나.. 지리산은 그리 많이 다녀도 보고싶은 여기 사람들은 한번도 못보구 서로 우연히 마주치기만 하는데... 잘찾아보면 내이름으로 쓴글도 많은데 ㅋㅋ
  • ?
    虛虛 2007.01.05 23:32
    참~~헐~
    그라게 형님 ^^
    지리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모두 여기서 만나니....
    좋게 좋게 어여 빨리 계곡 갑시다.
    초행길 나 혼자 가서 험한 꼴 당하긴 싫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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