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능선 끝자락을 부여잡고,,
o 산행일 -2005 3.12 오전 5:50~오후 4:40
o 어디로 - 외둔리-신선대-형제봉-원강재 임도- 삼거리-시루봉-회남재
o 누구랑 - 오해봉님, 김수훈님. 허허바다님, 편한세상님. 진로님, 슬기난(6명)
o 지리산 세석고원 영신봉에서 시작한 남부능선이 흘러내리며 삼신봉, 내삼신봉을 일구고 상불재, 내원재를 지나 섬진강에서 그 맥을 다하기 전 솟구쳐 올린 형제봉, 신선봉능선과 , 시루봉, 칠성봉, 구재봉능선이 둘러싸고 있는 악양벌이 펼쳐져있다.
남쪽 건너편으로 백운산을 사이에 두고 흐르는 섬진강이 있는 천하명당 악양은 “소다사“란 순 우리말을 옮긴 말이라 한다.
따뜻하던 날씨가 널 띄기를 하듯 한파주의보를 발령하게 할 만큼 갑자기 추워져 웅크리며 밤 12시에 고속도로 수원(신갈) 정류장으로 향한다.
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설악으로 향하려던 진로님이 방향을 바꿔 쌍재 식수행사를 하기에, 하루 앞서 악양
형제봉 산행을 계획하여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정확하게 약속시간 전에 차가 도착한다.
잠시 후 김수훈님 차로 오해봉님이 같이 오셔서 반갑게 인사하고 밤길을 헤쳐 화개장터에 이르니 캄캄한 어둠속에 찬바람만 휑하니 반겨준다. 아침식사 할 만한 곳을 찾다가 마침 신축중인 건물 안에서 김수훈님이 준비한 해장국 데워 아침식사를 한다.
떨리는 중에서도 오늘의 산행을 위해 식사를 마치고 평사리 외둔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아직도 어둑한 가운데 별빛만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악양 평사리 입구 섬진강변 국도 옆에 소상 낙원(瀟湘樂園)이라 새겨진 큰 바위
앞에서 잠시 장비 점검하고 산행에 임한다.
원래 이 돌은 시루봉 아래 청학이골에 있던 것인데 1992년 악양 산악인들이 옮겨와 악양 입구 동쪽 돌에는 악양동천(岳陽洞天),서쪽 돌에는 소상낙원이라 새겨 이곳이 악양동천이고 악양 8경이 중국의 소상 8경과 비슷한 절경임을 알리고 있다.
잠시 오르니 어둠속에 하얀 매화꽃이 눈에 들어오나 매섭게 불어오는 찬바람에 그대로 지나쳐 오른다. 무덤지대를 지나 내려다보니 어둠속에 반짝이는 님들의 랜턴 불빛이 정겹게 느껴지고 잠시 후 도로를 건너 소나무 숲을 지나 한산사 갈림길 지나고 잘 정비된 고소성에 오른다.
돌담 한가운데서 늠름하게 서있는 소나무 한그루 의연한 자세로 세찬 바람 이겨내며 반갑게 맞아주고 이제 날이 제법 밝아져 아스라이 보이는 악양 벌판과 섬진강을
굽어보며 한동안 기다리니 일행들이 올라온다.
고소성 소나무( 허허바다님 사진)
세찬 바람과 추위에 귀까지 덮는 모자를 눌러 쓰지만 반팔 차림의 오해봉님 포즈
잡으며 사진 찍어 달라 하시고 잠시 휴식 후 출발하는데 진로님 밟은 돌이 삐거덕
거리며 넘어져 성곽을 무너뜨렸다고 일행들 놀리신다.
신선대까지 소나무 푸른 숲이 시원한 조망과 바위와 어우러 지며 이어져 서정적인
능선이 일품이다.
건너편 구재봉 능선 위로
이제 떠오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쉬엄쉬엄 오르다 통천문 통과하던 오해봉님 좁은 길 가운데서 돌아서시며 카메라를 내맡긴다. ㅎㅎㅎ
예정 시간 보다 약간 늦게 출발한데다 산행 시간이 생각외로 길어져 신선대까지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숨차게 치고 오르니 진로님 부지런히 쫓아오신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잠시 쉬다가 후미가 오면 출발하고 등에 땀이 맺힐 때 쯤 신선대에 올라선다. 겨우내 산행을 게을리 한 탓인지 힘들게 진행 한 것 같다.
신선대에서 -지나온 능선
신선봉(철쭉밭 사이로 길이 보이고,)
신선대뒤로 멀리 백운산
구름다리 건너는데 세찬 바람이 불어 조심조심 건너 바위 위에서 기다리는데 뒤따라
오던 허허바다님 내리막 계단 중간에서 멋진 세레머니를 하고 건너오신다.
한분, 두분 올라오신 님들과 잠시 휴식 후 하동군에서 설치한 철쭉 제단 지나고 철쭉 밭 사이로 난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헬기장에서 잠시 간식 먹으며 가야할 길을 가늠해본다.
제법 올라온 것 같은데 회남재 고개 길은 아득해 보이고 성제봉이나 원강재 임도에서 힘들면 하산 할 요량으로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다들 열심히 잘 가시니 가는데 까지
진행을 하기로 한다.
가운데 멀리 원강재 임도(점심식사한곳) 뒤로 이어지는 남부능선
두 번째 성제봉
지도상에는 형제봉이나 성제봉(聖帝峯)이라는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 올라서니 희미한 구름 사이에서도 병풍처럼 둘러 선 지리 주능선이 장쾌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고
마음은 어느새 주능선 마루금을 따라 천왕봉으로 향하고 있다.
뚝 떨어진 기온에 얼었던 길이 녹아 질퍽해 미끄러운 길을 따라 태극기 펄럭이는
두 번째 성제봉도 지나고 간간히 쌓인 잔설의 흔적을 보면서 순한 숲길 능선을
이어 활공장에 이른다.
오른쪽 끝 시루봉에서 왼쪽으로 마루금을 따라 이어지는 남부능선 (내원재-상불재- 내삼신봉-삼신봉 뒤로 희미한 천왕봉)
멀리 보이는 회남재
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동장군의 심술 잔뜩 머금은 찬바람에 가슴 툭 트이는 조망에도 불구하고 서서 사진 찍기도 어려울 정도이고 내려쬐는 햇살에 챙 넓은 모자로 바꿔 쓴 탓에 귓불이 얼얼하고 손도 시려 서둘러 하산을 하니 뒤따라 온 일행들 빨리 내 뺀다 아우성이다.
살짝 숨어서 지나는 길손이 넘어지기를 기다리는 낙엽에 가린 얼음을 피해 미끄러운 내리막을 조심조심 내려와 원강재 임도에 내려선다.
아침 먹은 지 오래라 청학이골 갈림길 조금 지나 바람을 피할만한 곳에서 배낭 내리고 점심준비를 한다.부지런한 진로님 열심히 점심 준비하고 후미까지 도착하여 화기애애한 시간이 흐른다.
힘들어 보이는 일행들을 생각하니 청학이골로 하산을 할까 생각하는데 설왕설래 끝에 분연히 진로님 배낭 메고 회남재까지 간다고 일어선다.
일행들의 뜻에 따르신다 하신 오해봉님 할 수 없이 따라 나서고 나머지 일행들도
흔쾌히 나선다.
편안한 임도 지나고 남부능선 특유의 산죽이 시작되는 오름길을 쉬엄쉬엄 헤치며
오르니 조망이 툭 트이는 내원재, 시루봉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이른다.
삼거리에서 -청학동 뒤로 천왕봉
좀 더 가까이
진로님과 한동안 조망을 즐기며 산죽에 기대어 쉬고 있으니 일행들 도착하여 땀을
닦는다. 작년 불수사도북때 북한산에서 마중해주고 끝까지 같이 산행 후 피로회복에
좋다며 허허바다님이 건네주던 환타 생각에 준비해온 환타를 건네주니 오해봉님
이유를 몰라 꼬치꼬치 물으신다.
꿈결 같은 전경을 마음에 담고 아쉬운 발길을 동쪽으로 돌려 산죽무성한 길을 이어
시루봉으로 향한다.조그만 돌탑 하나 있는 시루봉 지나니 내리막 경사가 만만찮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일행들 먼저 보내고 후미에서 오해봉님과 속도를 맞추어 조심
조심 내려오니 따라오시며 걱정 말고 가라고 하신다.
시루봉 내리막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능선(가운데 볼록한 성제봉)
험한 내리막 내려서니 저만큼 앞쪽에 송신탑이 보이고 완만한 능선을 지나며 진행을
조금 빨리 하자하니 잠시 후 다리에 쥐가 나는 분이 나온다. 미안하게시리,,,,
오른쪽으로 뒤돌아보니 지나온 능선이 아득해 보이고 이제 회남재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서로 격려를 하며 내려선다.
회남재 안내 간판
드디어 회남재(해발 926m)에 내려서니 먼저 온 일행들 달콤한 휴식을 하고 있고
역사의 현장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남명 조식 선생이 이 고개에 올랐다가 골이 좁고 좋은 땅이 아니라 하여 돌아섰다하여 회남재라 이름 붙여진 이 고개는 묵계사람들이 화개장이나 하동장을 이용하기 위해 넘나들던 애환서린 고개이기도 하다.
1951년 11월 남부군 이영회부대가 거림골과 도장골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악양에서
식량을 조달하여 회남재-묵계재를 거쳐 근 일주일간 주민들을 동원하여 쌀을
날랐으나 국군의 반격에 밀려 잿더미로 변한 끝에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최화수님 글 중에서)
회남재길
힘든 내색 안하시고 같이 해준 님들께 다시 감사드리고 제법 쌀쌀한 날씨 속에 정겨운 길을 따라 내려와 택시 기사님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한 차에 다 타고 차량 주차된
곳까지 내려오는데 청학이골로 하산한 등산객이 간간이 보인다.
지리산에 청학동에 관한 전설이 많이 있으나 청학동에 관한 지명이 있는 곳은 악양뿐이라며 이곳 분들 여기가 진정한 청학동이라 여기신단다.
소설 토지의 영향으로 친숙하게 느껴지는 악양 평사리 벌판과 최참판댁을 지나 차량
회수하고 산청으로 이동하여 서울서 내려오는 일행을 만나고 이어 공수님과의 짧은
만남 후 아쉬운 이별을 하고 즐거웠던 하루를 마무리 한다.
o 산행일 -2005 3.12 오전 5:50~오후 4:40
o 어디로 - 외둔리-신선대-형제봉-원강재 임도- 삼거리-시루봉-회남재
o 누구랑 - 오해봉님, 김수훈님. 허허바다님, 편한세상님. 진로님, 슬기난(6명)
o 지리산 세석고원 영신봉에서 시작한 남부능선이 흘러내리며 삼신봉, 내삼신봉을 일구고 상불재, 내원재를 지나 섬진강에서 그 맥을 다하기 전 솟구쳐 올린 형제봉, 신선봉능선과 , 시루봉, 칠성봉, 구재봉능선이 둘러싸고 있는 악양벌이 펼쳐져있다.
남쪽 건너편으로 백운산을 사이에 두고 흐르는 섬진강이 있는 천하명당 악양은 “소다사“란 순 우리말을 옮긴 말이라 한다.
따뜻하던 날씨가 널 띄기를 하듯 한파주의보를 발령하게 할 만큼 갑자기 추워져 웅크리며 밤 12시에 고속도로 수원(신갈) 정류장으로 향한다.
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설악으로 향하려던 진로님이 방향을 바꿔 쌍재 식수행사를 하기에, 하루 앞서 악양
형제봉 산행을 계획하여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정확하게 약속시간 전에 차가 도착한다.
잠시 후 김수훈님 차로 오해봉님이 같이 오셔서 반갑게 인사하고 밤길을 헤쳐 화개장터에 이르니 캄캄한 어둠속에 찬바람만 휑하니 반겨준다. 아침식사 할 만한 곳을 찾다가 마침 신축중인 건물 안에서 김수훈님이 준비한 해장국 데워 아침식사를 한다.
떨리는 중에서도 오늘의 산행을 위해 식사를 마치고 평사리 외둔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아직도 어둑한 가운데 별빛만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악양 평사리 입구 섬진강변 국도 옆에 소상 낙원(瀟湘樂園)이라 새겨진 큰 바위
앞에서 잠시 장비 점검하고 산행에 임한다.
원래 이 돌은 시루봉 아래 청학이골에 있던 것인데 1992년 악양 산악인들이 옮겨와 악양 입구 동쪽 돌에는 악양동천(岳陽洞天),서쪽 돌에는 소상낙원이라 새겨 이곳이 악양동천이고 악양 8경이 중국의 소상 8경과 비슷한 절경임을 알리고 있다.
잠시 오르니 어둠속에 하얀 매화꽃이 눈에 들어오나 매섭게 불어오는 찬바람에 그대로 지나쳐 오른다. 무덤지대를 지나 내려다보니 어둠속에 반짝이는 님들의 랜턴 불빛이 정겹게 느껴지고 잠시 후 도로를 건너 소나무 숲을 지나 한산사 갈림길 지나고 잘 정비된 고소성에 오른다.
돌담 한가운데서 늠름하게 서있는 소나무 한그루 의연한 자세로 세찬 바람 이겨내며 반갑게 맞아주고 이제 날이 제법 밝아져 아스라이 보이는 악양 벌판과 섬진강을
굽어보며 한동안 기다리니 일행들이 올라온다.
고소성 소나무( 허허바다님 사진)
세찬 바람과 추위에 귀까지 덮는 모자를 눌러 쓰지만 반팔 차림의 오해봉님 포즈
잡으며 사진 찍어 달라 하시고 잠시 휴식 후 출발하는데 진로님 밟은 돌이 삐거덕
거리며 넘어져 성곽을 무너뜨렸다고 일행들 놀리신다.
신선대까지 소나무 푸른 숲이 시원한 조망과 바위와 어우러 지며 이어져 서정적인
능선이 일품이다.
건너편 구재봉 능선 위로
이제 떠오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쉬엄쉬엄 오르다 통천문 통과하던 오해봉님 좁은 길 가운데서 돌아서시며 카메라를 내맡긴다. ㅎㅎㅎ
예정 시간 보다 약간 늦게 출발한데다 산행 시간이 생각외로 길어져 신선대까지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숨차게 치고 오르니 진로님 부지런히 쫓아오신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잠시 쉬다가 후미가 오면 출발하고 등에 땀이 맺힐 때 쯤 신선대에 올라선다. 겨우내 산행을 게을리 한 탓인지 힘들게 진행 한 것 같다.
신선대에서 -지나온 능선
신선봉(철쭉밭 사이로 길이 보이고,)
신선대뒤로 멀리 백운산
구름다리 건너는데 세찬 바람이 불어 조심조심 건너 바위 위에서 기다리는데 뒤따라
오던 허허바다님 내리막 계단 중간에서 멋진 세레머니를 하고 건너오신다.
한분, 두분 올라오신 님들과 잠시 휴식 후 하동군에서 설치한 철쭉 제단 지나고 철쭉 밭 사이로 난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헬기장에서 잠시 간식 먹으며 가야할 길을 가늠해본다.
제법 올라온 것 같은데 회남재 고개 길은 아득해 보이고 성제봉이나 원강재 임도에서 힘들면 하산 할 요량으로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다들 열심히 잘 가시니 가는데 까지
진행을 하기로 한다.
가운데 멀리 원강재 임도(점심식사한곳) 뒤로 이어지는 남부능선
두 번째 성제봉
지도상에는 형제봉이나 성제봉(聖帝峯)이라는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 올라서니 희미한 구름 사이에서도 병풍처럼 둘러 선 지리 주능선이 장쾌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고
마음은 어느새 주능선 마루금을 따라 천왕봉으로 향하고 있다.
뚝 떨어진 기온에 얼었던 길이 녹아 질퍽해 미끄러운 길을 따라 태극기 펄럭이는
두 번째 성제봉도 지나고 간간히 쌓인 잔설의 흔적을 보면서 순한 숲길 능선을
이어 활공장에 이른다.
오른쪽 끝 시루봉에서 왼쪽으로 마루금을 따라 이어지는 남부능선 (내원재-상불재- 내삼신봉-삼신봉 뒤로 희미한 천왕봉)
멀리 보이는 회남재
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동장군의 심술 잔뜩 머금은 찬바람에 가슴 툭 트이는 조망에도 불구하고 서서 사진 찍기도 어려울 정도이고 내려쬐는 햇살에 챙 넓은 모자로 바꿔 쓴 탓에 귓불이 얼얼하고 손도 시려 서둘러 하산을 하니 뒤따라 온 일행들 빨리 내 뺀다 아우성이다.
살짝 숨어서 지나는 길손이 넘어지기를 기다리는 낙엽에 가린 얼음을 피해 미끄러운 내리막을 조심조심 내려와 원강재 임도에 내려선다.
아침 먹은 지 오래라 청학이골 갈림길 조금 지나 바람을 피할만한 곳에서 배낭 내리고 점심준비를 한다.부지런한 진로님 열심히 점심 준비하고 후미까지 도착하여 화기애애한 시간이 흐른다.
힘들어 보이는 일행들을 생각하니 청학이골로 하산을 할까 생각하는데 설왕설래 끝에 분연히 진로님 배낭 메고 회남재까지 간다고 일어선다.
일행들의 뜻에 따르신다 하신 오해봉님 할 수 없이 따라 나서고 나머지 일행들도
흔쾌히 나선다.
편안한 임도 지나고 남부능선 특유의 산죽이 시작되는 오름길을 쉬엄쉬엄 헤치며
오르니 조망이 툭 트이는 내원재, 시루봉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이른다.
삼거리에서 -청학동 뒤로 천왕봉
좀 더 가까이
진로님과 한동안 조망을 즐기며 산죽에 기대어 쉬고 있으니 일행들 도착하여 땀을
닦는다. 작년 불수사도북때 북한산에서 마중해주고 끝까지 같이 산행 후 피로회복에
좋다며 허허바다님이 건네주던 환타 생각에 준비해온 환타를 건네주니 오해봉님
이유를 몰라 꼬치꼬치 물으신다.
꿈결 같은 전경을 마음에 담고 아쉬운 발길을 동쪽으로 돌려 산죽무성한 길을 이어
시루봉으로 향한다.조그만 돌탑 하나 있는 시루봉 지나니 내리막 경사가 만만찮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일행들 먼저 보내고 후미에서 오해봉님과 속도를 맞추어 조심
조심 내려오니 따라오시며 걱정 말고 가라고 하신다.
시루봉 내리막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능선(가운데 볼록한 성제봉)
험한 내리막 내려서니 저만큼 앞쪽에 송신탑이 보이고 완만한 능선을 지나며 진행을
조금 빨리 하자하니 잠시 후 다리에 쥐가 나는 분이 나온다. 미안하게시리,,,,
오른쪽으로 뒤돌아보니 지나온 능선이 아득해 보이고 이제 회남재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서로 격려를 하며 내려선다.
회남재 안내 간판
드디어 회남재(해발 926m)에 내려서니 먼저 온 일행들 달콤한 휴식을 하고 있고
역사의 현장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남명 조식 선생이 이 고개에 올랐다가 골이 좁고 좋은 땅이 아니라 하여 돌아섰다하여 회남재라 이름 붙여진 이 고개는 묵계사람들이 화개장이나 하동장을 이용하기 위해 넘나들던 애환서린 고개이기도 하다.
1951년 11월 남부군 이영회부대가 거림골과 도장골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악양에서
식량을 조달하여 회남재-묵계재를 거쳐 근 일주일간 주민들을 동원하여 쌀을
날랐으나 국군의 반격에 밀려 잿더미로 변한 끝에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최화수님 글 중에서)
회남재길
힘든 내색 안하시고 같이 해준 님들께 다시 감사드리고 제법 쌀쌀한 날씨 속에 정겨운 길을 따라 내려와 택시 기사님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한 차에 다 타고 차량 주차된
곳까지 내려오는데 청학이골로 하산한 등산객이 간간이 보인다.
지리산에 청학동에 관한 전설이 많이 있으나 청학동에 관한 지명이 있는 곳은 악양뿐이라며 이곳 분들 여기가 진정한 청학동이라 여기신단다.
소설 토지의 영향으로 친숙하게 느껴지는 악양 평사리 벌판과 최참판댁을 지나 차량
회수하고 산청으로 이동하여 서울서 내려오는 일행을 만나고 이어 공수님과의 짧은
만남 후 아쉬운 이별을 하고 즐거웠던 하루를 마무리 한다.
확실히 만들어 집니다. ^^*
주관적 시점이나 줄거리 기법을 이용해서 만든 영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