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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3799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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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가믄 1만2000봉에 8만여남으개 암자기 있다던디…" 아흔을 넘긴 아버지의 이 말을 들은 막내아들 이군익(42) 씨는 고심 끝에 지게를 생각해냈다. 그는 특별히 만든 지게에 아버지를 태워 귀면암과 구룡폭포 등 금강산 절경들을 두루 오르내렸다. 지난 여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던 금강산 탐승 '지게 효성'이었다.

1960년 한국을 찾은 <대지>의 작가 펄 벅은 우리의 지게에서 '한국인의 정신'을 읽어냈다. 지게에 볏단을 진 한 농부가 볏단을 가득 실은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것을 지켜보며 무릎을 쳤다. "미국이라면 지게의 짐도 소달구지에 싣고, 농부도 달구지에 올라탔을 것이다. 소의 짐까지 덜어주려는 농부의 저 마음이 바로 내가 찾는 한국인의 정신이다."

지리산의 많은 골짜기들 가운데 걸어가기에 좋기로는 대원사 계곡이 으뜸이다. 그 중에서도 공원 매표소~대원사~가랑잎학교의 10리 길은 환상적이다. 자연경관이 꿈결같이 빼어나다. '한국의 명수 100곳'의 하나인 청정계류와 화강암반에 둘러싸인 소와 담, 조선 소나무의 그림 같은 운치 등 그 모두는 시요, 그림이요, 음악이요, 춤인 것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길을 기분 좋게 걸어갈 수가 없다.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많이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청정한 공기, 맑은 물소리, 짙은 솔향기마저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과 소음들로 하여 진저리를 친다. 비좁은 도로, 왕복 1차선에 보행로마저 없다. 매연과 소음은 두고라도 자동차에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고 시종 가슴을 졸이게 된다.

걸어가는 사람 사이로 자동차가 질주하면 어떻게 되는가? 자연 탐승의 여유를 잃고, 매연과 소음으로 스트레스만 받게 된다. 지게에 구순 노부를 태우고 금강산 탐승에 나선 아들, 지게를 진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걸어가는 이치를 생각해보자. 볏단 아닌 배낭을 지게 아닌 자동차에 싣고 가는 것에서 '한국인의 정신'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자동차를 타고 대원사 계곡을 100번을 오르내리면 무엇하나? 이 계곡이 만들어내는 시와 그림과 음악과 춤은 걸어가지 않으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국립공원구역, 자연탐승의 인기가 높은 곳에 자동차 통행을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허용해도 되는 것일까? 어제 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닌 데도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어째서 수수방관하기만 할까?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 요세미티는 3061㎢의 광대한 면적이지만 자동차도로는 몇 개밖에 없고, 셔틀버스는 소음과 매연이 없는 '무공해 차량'이다. 공원 구석구석은 자전거로 돌아보게 한다. 대원사 계곡의 차량 통행도 제한돼야 마땅하다. 무공해 셔틀버스 운행과 자전거 탐승, 걸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한 자연탐승로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제안과 주장이 제기된 것은 오래 전부터다. 하지만 아무리 짖어보았자 쇠귀에 경 읽기다. 여론이야 어떠하든 마이동풍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깊은 불신은 부동산과 교육정책 탓만이 아니다. 국립공원의 차량 통행 문제 하나마저 여론을 일방적으로 묵살하는 관료적 타성이 지배한다. 이런 것들이 쌓여 국민의 울화통을 터뜨리게 만든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시민들에게도 문제가 없지 않다. 그들에게 노부를 지게에 태우고 금강산 관광의 효심을 권유할 수는 없다. 지게를 지고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한국인의 정신'을 강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신의 편의와 편리 때문에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은 알아야 한다. 자동차가 아닌, 걸어가는 진정한 즐거움도 깨우쳐야 할 일이다.

[이 글은 지난 10월31일자 국제신문 <최화수의 세상읽기>에 실었던 글을 옮겨온 것임을 밝힙니다.-최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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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규 2006.11.06 08:48
    딱 이때쯤 대원사 계곡의 운치는 극치에 다다를 것입니다. 차량으로 갈 때와 걸어서 계곡을 갈때는 완전히 그 맛이 다르더군요. 차량으로 갈때는 계곡의 아름다움과 고운 나뭇잎들, 숲속에 가려진 작은 폭포와 청정옥수의 비경을 전혀 감상을 할수 없는데 걸어서 감상을 해 보면 무릉도원이 되어 버리더군요. 길가에 수북히 쌓인 가을 낙엽도 범상함의 도를 넘어 지리산의 참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신비의 존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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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6.11.06 14:15
    " 1960년 한국을 찾은 <대지>의 작가 펄 벅은 우리의 지게에서 '한국인의 정신'을 읽어냈다. 지게에 볏단을 진 한 농부가 볏단을 가득 실은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것을 지켜보며 무릎을 쳤다 "

    참 좋은글을 읽었습니다,
    새재 에서부터 유평리 버스정류장 까지는 정말로 아름답고 정다운
    길이지만 항상 지쳐서 내려오는 길이고 먼길 이기에 지루하기도
    하드군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고 기막힌 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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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경 2006.11.08 00:41
    여산선생님께서 전에 말씀하시던 대원사의 소나무가
    생각납니다
    겨울에 오는 길목에서 하이얀눈이 쌓인 대원사계곡의
    설경을 벌써부터 그려봅니다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신비의 계곡~~~대원사의 길
    오래오래 옛길을 걸을수있도록~~~ 정책을 세우는분들도
    직접 그길을 걸어보면 좋으련만~~저도 아쉬움을 더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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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마 2006.11.11 12:14
    어제 하산길을 대원사쪽으로 할것을...
    너무 힘들어서 그냥 법계사쪽으로 내려왔답니다.
    '무공해 셔틀버스 운행과 자전거 탐승, 걸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한 자연탐승로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절대 동감입니다. 이 댓글로 귀국인사 가름합니다.
    많은 격려말씀 감사드리구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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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도식 2007.07.13 14:26
    "대원사 계곡 걸어서 가게하라" 잘읽고 공감 하는바 큽니다.
    여기에 더붙여 가야산 홍류동계곡, 이 얼마나 아름답고 수려한 자연 경관입니까 그런데 이 빼어난 자연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치인리 해인여관을 비롯한 위락 숙박 시설을 단계적으로 매표소 밖으로 이전 조성하고 매표소 부터는 무공해 셔틀버스외 통행을 못하게 해서 보행자 위주로 바꾼다면 자연도 다시 소생 하고, 여유롭게 자연을 즐길수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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