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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러 가지 일로 시간에 쫓겨 이곳에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6월1일자 '다음 칼럼' <최화수의 지리산통신>에 올렸던 글을 대신 싣습니다. 해량 바랍니다.-최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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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리산을 찾는 이들은 바래봉 철쭉을 모르는 이들이 없다. 매년 바래봉 철쭉제가 열리는 것을 전후하여 등산객, 유산객이 장사진을 이룬다. 하지만 바래봉의 철쭉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불과 10년 남짓이다.
지난 89년 필자는 국제신문에 <지리산 365일>을 연재하는 가운데 바래봉 철쭉 화원을 소개했다. 또 필자가 발행하던 <우리들의 산>에 바래봉 철쭉을 화보로 실었다. 바래봉 철쭉밭이 매스컴에 오른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요즘은 이른바 '태극종주'라고 하여 인월 덕두산에서 올라 서북능선과 주능선을 거친 뒤 하봉과 왕등재를 지나 웅석봉까지 산행을 한다.
그러나 지난 90년까지는 '태극종주'란 말은 없었고, '완전종주'라 하여 운봉읍 수철리에서 세걸산으로 올라 만복대, 주능선을 거쳐 대원사까지 걸어갔다.
그 때까지는 지리산 '완전종주'를 하던 이들조차 바래봉은 발길을 들여놓지 않았던 것이다. 바래봉 일원은 '국립종축원 남원지원'으로 철망을 둘러놓았었다.

바래봉 철쭉 화원의 특별한 아름다움도 운봉목장이 조성된 데 따른 것이다. 국립종축장 남원지원은 요즘 '축산기술연구소 남원지소'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기술연구소는 1971년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면양 시범목장으로 운봉에 들어섰던 것이다. 또한 바래봉 일원 등 689헥타르를 면양 방목장소로 포함시켰다.
이 면양 시범목장은 원래 대원사 유평계곡 옆 외고개 남쪽 고원에 조성하기로 추진이 되었으나 교통불편을 이유로 운봉고원으로 바뀌었다.

한, 호 면양 시범목장이 유력한 후보지 유평계곡의 외곡 고원에서 남원의 운봉고원으로 옮겨진 것은 단지 교통 문제 하나 때문이었다.
유평계곡 삼거리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좁다란 산판도로를 따라들면 왕등재 아래 꽤 넓은 분지가 나타나고, 그 서쪽 외고개 아래에 아주 광활한 고원분지가 자리한다.
이곳에는 한때 농축산 관련 대학까지 들어설 계획이 검토되었고, 그 때문에 한, 호 면양 시범목장의 후보지로 이곳이 가장 먼저 선정되었던 것이다.

지난 71년 당시의 유평계곡은 험난한 산판도로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학자와 낙농기술자들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한번 들어가보고는 두번 다시 들리지 않겠다고 꽁무니를 뺐음직도 하다.
어쨌거나 오스트레일리아가 지원하는 면양 시범목장은 운봉고원으로 장소를 옮겨와 개설되었다. 이 종축장은 국내에 면양을 보급하는 등 여러가지로 이바지했고, 그 뒤로 축산기술연구의 산실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면양 시범목장은 바래봉 일원에 아주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시범목장측은 면양을 방사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바래봉으로 도로를 내는 한편, 목초지를 조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래봉 능선에 파란 목초가 뒤덮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초지가 조성된 주변에는 철조망을 둘러 면양 떼들을 보호할 수 있게 한 것도 물론이다. 시범목장에서 사육하던 면양떼는 바래봉으로 올라가 초지에서 한가롭게 뛰놀 수 있게 된 것이다.

초식동물인 면양의 방목으로 바래봉 능선은 뜻밖의 변화를 불러왔다. 면양 떼는 풀은 물론이요, 바래봉의 잡목들을 모조리 뜯어먹었다.
그런데 오직 한 가지 철쭉만은 입을 대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바래봉 능선 일대는 목초밭이 되고, 그 사이에 철쭉만 남아있는 진귀한 형태로 자리를 잡아갔다.
철쭉들은 무리를 지어 파란 초지 위에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그들만의 낙원을 구가했다. 철쭉의 무리들은 매년 4월 하순과 5월 초순 꽃을 활짝 피웠다.

바래봉 능선에 철쭉화원이 환상적인 선경을 빚어내고 있던 지난 89년 필자는 그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연초록 목초밭과 분홍 철쭉의 황홀한 조화, 그 아름다운 정경에 너무나 감탄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한 것이다.
그 얘기를 <지리산 365일>에 담았고, 필자가 몸담았던 산악회 회지 <우리들의 산>에 철쭉 화원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화보로 실었다.
그로부터 5년 쯤 지났을까. 바래봉에서 철쭉제가 처음으로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바래봉에 첫 발을 들여놓은 후 필자는 매년 서북능선을 찾아갔다. 덕두봉이나 정령치에서 찾거나, 성삼재에서 서북능선을 종주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짙은 운무와 비바람에 길을 잃고 비상탈출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철쭉제가 열리고부터는 바래봉에 발길을 끊었다. 철쭉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룰 것인가.
사람 하나 만날 수 없던 지난날, 바래봉 철쭉 화원의 수채화와 같던 그 정경을 오직 가슴에 새겨두고 싶어서이다.

서북능선 동쪽 끝 덕두산과 나란히 자리한 바래봉은 지난날 발산(鉢山)으로 불렸다. 바래봉의 '바래'란 나무로 만든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에서 나온 말이다. 봉우리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또는 삿갓봉이라고도 하는데, 스님들이 쓰고다니는 삿갓 모습을 연상시키는 데서 유래했다. 운봉 10경에는 '바래봉 달빛 아래 들리는 경쇠소리'가 있다. 산제당과 절이 많았던 지난날의 발산, 달밤의 그 경쇠소리는 얼마나 은은했을까!

  • ?
    오 해 봉 2007.08.13 23:40
    다시 읽어도 좋으네요,
    바래봉을 지나 다닐때는 항상 여산선생님이
    떠오른 답니다,
    더위에 잘 계시지요,
    올가을에는 달빛초당이든 덕산에서든 만나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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