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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량 6] 종녀촌의 '성(性)축제'
                                   2002년 08월 02일

오래 전에 '전설따라 삼천리'란 라디오 방송 프로가 있었다. 용이 못 된 이무기며, 사람으로 변신한 백여우, 뱀과 까치의 싸움하며 으시시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전설따라...'보다 더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는 것은 시골에서 성장할 때 마을 할머니들에게 들었던 달걀 귀신이나 '매구(마귀)' 이야기였다.
한여름밤 모갯불이 피어진 평상에 둘러앉아 소름이 오싹오싹 돋는 그런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초가지붕 위의 아름다운 박꽃마저 귀귀한 모습으로 다가오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귀신 얘기나 전설은 한결같이 그게 그것이었다. 관광지에서 팔고 있는 기념품이란 것이 전국 어느 곳이든 그게 그것인 것과 같다.
지리산에도 꽤 많은 전설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다른 지역의 전설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또한 나이든 이들에게 소름이 돋아나게 할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지리산 전설 가운데 '종녀촌(種女村)' 이야기는 아주 색다르다. 으시시한 얘기라기 보다는 '씨받이 여인'의 잔인한 삶이 냉기를 불러 일으킨다.

지리산 피아골 깊은 곳에 종녀촌이 있었다. 씨받이 여인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이 종녀촌에는 성신(性神)어머니라고 불리는 절대자가 많은 씨받이 여인(종녀, 種女)들과 시동(侍童)을 거느리고 삶을 이어갔다.
성신어머니는 인근 마을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집이 있으면 자신이 데리고 있는 종녀를 보내 아이를 낳게 해주고 그 대가로 먹고 살 수 있는 물품들을 받아왔다.
종녀들은 아들을 낳게 되면 곧 혈육의 정을 끊고 아이를 넘겨주고 홀로 종녀촌으로 쓸쓸하게 돌아와야 했다.

종녀가 딸을 낳았을 때는 그 아이를 종녀마을로 데려와서 길렀다. 그 아이가 다시 종녀로 자라날 때까지 키워선 다시 성신어머니에게 바쳤다. 종녀의 딸은 다시 종녀가 되고, 그 종녀의 딸은 또다시 종녀가 되는 악순환이 끝없이 되풀이 되었다.
종녀들은 헐벗고 굶주린 채 살면서도 씨받이 여인이란 평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피아골 그 깊은 골짜기 속에서 나무와 풀과 물과 돌팍들에 둘러싸여 종녀들은 씨받이 생명의 운명을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져 갔다.

종녀들은 비참했지만, 그들을 지배하는 성신어머니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불태우는 놀랍도록 적나라한 '성(性)의 축제'를 펼쳤다.
지리산 피아골 깊은 골짜기의 성의 축제라니, 상상이 되는가?
종녀촌을 지배하는 성신어머니는 성신굴(性神窟)에서 성의 제전을 마음 내키는대로 펼쳤다. 성신굴에는 성신상을 거대하게 세워놓았고, 그 옆에는 남근(男根)을 새겨놓은 제단이 차려져 있었다.
종녀들에게는 인내와 체념만을 강요하는 성신어머니였지만, 그녀 자신은 어떠했던가?

성신어머니의 잔임함이라니! 그녀는 종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적 욕망을 시동들과 함께 짐승처럼 불태웠다. 성신어머니는 그 짓을 종녀들의 무궁한 생산 능력을 빈다는 기원제로 핑계를 삼았다.
성신어머니는 제단에 온갖 음식을 올려놓고 그 앞에서 주문을 외다가 다시 한바탕 춤을 추고, 마침내 시동들과 욕정을 불태우는 향락을 씨받이 여인들에게 적나라하게 모범적으로 시범(?)을 보여주는 것으로 클래이맥스를 치렀다.
종녀들에겐 너무나 잔인하고 가혹한 성의 축제였다.

씨받이 여인들에 대한 슬픈 사연이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지리산 피아골 종녀촌 전설은 성신어머니가 성신굴에서 시동들과 농염한 정사를 벌이는 것을 씨받이 여인들에게 보여준다는 점이 아주 색다르다.
씨받이 여인들의 숙명적인 운명도 기막히지만, 거기에 성신어머니의 광란이 잔인의 극치로 합쳐지는 것에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종녀촌 전설은 어쩌면 어떤 귀신 이야기보다 더 무섭고 기괴하고 혐오스럽다. 인간으로서 어찌 이럴 수도 있다는 것일까?

피아골은 단풍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계곡미도 빼어나다. 원시수해와 청정계류, 유난히 많은 돌이 특징적이다.
하지만 피아골계곡도 삼거리를 지나 용수암으로 들어서면 아주 부드러운 육산으로 특유의 평화로운 적요함이 가득하다. 용수암 골짜기를 혼자 걸어가면 '한없이 높고 깊은 지리산 세계'에 대한 사색에 저절로 안겨든다.
이 세상의 온갖 시끄러움과 번잡을 완벽하게 차단한 그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종녀촌 전설을 떠올리면 한 줄기 냉기가 엄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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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경 2007.08.24 09:01
    납량특집이야기 잘보고 갑니다
    이제 올여름도 서서히 가는길을 재촉하는군요
    멀리서 미소짓는 가을의 문턱에서
    여산선생님께서도 늘 건강하시고 캠퍼스강의도
    사랑스런제자들에게 멋진강의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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