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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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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량 4] 목기막의 불청객들
                                      2002년 07월 28일  

지리산 골짜기 속의 골짜기로 '절터골'이 있다.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이현상(李鉉相)이 미스터리의 죽음을 맞이했던 '빗점골 합수내 흐른바위'가 이 절터골의 시작이다.
의신마을에서 벽소령을 넘어가는 군사작전도로를 따라 삼정마을을 지나고, 다시 지금은 사라진 빗점마을을 지나, 도로가 오른쪽으로 크게 꺾어지는 곳에서 절터골, 산태골, 왼골의 이른바 화개천 상류 세 골짜기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나 있다.
요즘은 '남부군 최후의 아지트' 등 '우스운 시설물'(?)들이 있어 찾아들기가 쉽다.

하지만 이 길은 관청에서 소위 '빨치산 시설물'을 설치해놓기 전에 의신마을 주민들이 고로쇠수액 채취를 하느라 뻔질나게 드나들어 그 진입로는 물론, 계곡길과 능선길이 빤질빤질하게 나 있다.
지리산의 고로쇠수액 채취를 위해 파이프라인을 거미줄처럼 쳐놓은 것에서 그 삶의 치열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곳의 고로쇠수액이 유명해진 것은 지난 1980년대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산나물 또는 수석을 채취하거나, 목기(木器) 등을 다듬고자 산밑 주민들이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던 것이다.

산태골, 절터골, 또 그 사이의 능선을 따라서 명선봉으로 오르는 길은 요즘 등산객들도 찾고 있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는 주민들만 다녔을 뿐이다.
1994년 필자는 <사람과 산> 심병우기자와 함께 처음으로 절터골을 따라 연하천산장에 닿은 뒤 총각샘에서 산태골을 따라 내려왔었다. '최화수의 지리산 어쩌구...' 하는 특집기사를 만들기 위해 이 골짜기를 찾게 됐는데, 부산의 이광전, 여승익 님과 의신마을 조봉문, 정근수 두 청년이 동행을 했다. 의신마을의 청년들은 길 안내를 위해 동행한 것이다.

절터골은 깊이 거슬러 오를수록 깊고 고요한 적막의 두께가 지리산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깊은 골짜기에 지난날 집터였을 법한 제법 편편한 공간이 있었다.
"이곳이 목기막(木器幕)'이 있던 자리요. 울 아버지, 근수 아버지가 여기서 목기를 깎았다니께요."
조봉문이 나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이 높은 곳에서 무슨 목기를?"
"밥주걱이나 제기 등 돈 되는 것은 뭐든 깎았지요. 한번 올라오면 며칠씩 이곳 움막에 묵으면서 그 일을 했는데, 어따, 밤이면 밤마다...!"

"...밤이면 밤마다!?"
밤마다 무엇을 어찌 했다는 것일까? 조봉문은 필자가 호기심을 보이자 앞서 가는 정근수를 불러세웠다.
"근수야, 니가 말해보거라!"
"뭘?"
"니네 아버지 주술(呪術) 외웠던 얘기 말이다."
"울 아버지만 했냐? 니네 아버지는 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투가 아주 퉁명스러웠다. 두 청년의 아버지는 불과 10수년 전까지 이곳의 움막에 기거하면서 함께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밤이면 밤마다 정말 정신없이 주술을 외워야만 했다. 왜 그랬을까?

"비가 창대같이 마구 쏟아지는 밤이었다우. 날도 캄캄해진 깊은 밤중이기도 해서 두 분은 움막에 자리를 펴고 잠을 청했다는디... 움막 앞에 비를 흠뻑 맞은 남루한 차림의 거한들이 불쑥 나타나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고 애걸하더라구먼요.
울 아버지는 빨치산을 익히 보와왔기 때문에 그들이 빨치신 귀신이란 것을 단번에 알아냈지요. 움막 문고리를 잡고 죽으라고 주술을 외는 겁니다.
'밥 달라'는 소리와 주술이 뒤엉켜 씨름을 벌인 거요. 결국 '지독한 놈들' 하며 귀신들이 겨우 물러가더라네요."

목기막의 빨치산 귀신 소동, 그것이 밤마다 되풀이 됐고, 밤마다 주술로써 귀신을 물리쳤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 이야기였다.
필자가 대꾸 대신 피식 웃어넘기자 조봉문이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지리산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 이 절터골이라구요. 비가 내릴 때는 대낮에도 귀신소리가 요란해서 우리도 감히 이곳에는 들어오지 못 한다구. 귀신소리...그렇당께요, 온갖 절규 소리가 귀가 멍멍할 만큼 요란하여 너무너무 겁이 난다구요. 근수야, 내 말이 맞는지 아닌지, 니가 한번 말해봐라!"

조봉문은 같은 마을의 친구인 정근수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은 사실이야!"
정근수는 일단 동의는 했지만, 그러나 뜻밖의 주장을 했다.
"귀신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비가 내릴 때 주능선상의 등산객 소리가 공명을 일으켜 이 골짜기에서 와글와글 시끄럽게 들리는 것이라구... 우하하하!"
의신마을 두 청년은 "귀신 소리가 맞다" "아니다" 하고 한동안 입씨름을 벌였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그것이 궁금하면 비오는 날에 혼자 절터골로 찾아가보면 알 수 있을 것이리라...!

  • ?
    김용규 2007.08.18 12:48
    지리산 깊숙히 길이 뚫어지고 구석진 곳까지 등산객들의 발길이 넘쳐나는 요즘과는 달리 60년대에는 지리산 아래의 사람들만 산엘 들락거릴때의 지리산은 묘령의 산으로 여겼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과학의 개념이 적었던 당시에 지리산은 귀신의 산으로 저는 여겼었습니다. 지금도 깊은 산엘 잘 가지 못하는 공포가 있습니다. 소를 먹이러 가다가 내려올때에 맨 뒤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머리카락이 항상 쭈뼛해짐을 느꼈는데 지리산 아래의 사람들은 아직도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귀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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