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1384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01년 1월4일 'Daum 칼럼'에 썼던 글을 옮겨 왔습니다. 연말연시 천왕 일출과 반야 낙조를 생각하는 분들과 마음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글을 올려 송구합니다. 해량 바랍니다.]
............................................

"낙조도 쥐기게 좋았습니다. 일출도 좋지만, 그 낙조는 영글대로 영근 홍시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퍽사발난 것처럼 아주 맛나게 보였습니다."
2001년 새해 아침 천왕봉 일출을 맞기 위해 2000년 12월31일 오후 지리산 하봉 능선을 오르던 '지리산 별동대'의 A님이 반야봉의 해넘이를 지켜본 감격을 '지리산 통신' 1호 감상글란에 올렸다.
천왕봉 일출도 좋았지만, 반야봉 낙조도 뜻밖의 보너스로 "쥐기게(죽이게) 좋았다"고 천왕 일출을 지켜보고 돌아온 이들은 A님처럼 한결같이 찬탄했다.

반야봉에서 황홀한 낙조를 지켜보는 반야낙조가 지리산 8경의 하나지만,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반야봉 해넘이는 불꽃보다 더 휘황찬란하다.
개울에서 빨래를 하는 여자의 반쯤 구부린 엉덩이 모습과 아주 흡사한 반야봉의 스카이라인이 산사나이들의 가슴을 '쥐기게' 달구었을 법도 하다. 천왕봉에 오른 이에게 안겨주는 것은 어찌 일출이나 일몰에만 그치겠는가.
사방 팔방에서 파도가 몰려오는 듯한 능파(陵波), 시시각각 신출귀몰하는 안개, 변화무쌍한 구름까지 신의 작품인양 신비롭고 거룩하기만 하다.

천왕봉이 어떤 곳인가? 남한 육지에서 가장 높으니 적어도 이 땅에선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아니, 천왕봉의 거대한 암괴는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그래서 천왕봉을 하늘을 받들고 있는 기둥이란 뜻의 천주(天柱)라고 하고, 실제 서쪽 암괴에 '天柱'란 두 글자를 음각해 놓았다.
1561년 '우 남명 좌 퇴계'의 남명 조식(南冥 曺植)은 '천왕봉이 하늘에 가까우니 자랑스럽다'며 61세의 고령에 천왕봉이 바로 올려다 보이는 양당촌(지금의 덕산)에 들어와 산천재(山天齋)를 열고 지리산에 아주 귀의했다.

그는 산천재에서 수양의 척도로 경(敬)과 의(義)를 내세웠다. 나라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한결같이 사양하고 왕을 '아비 없는 자식'으로, 대비를 '궁중의 한 과부'로 칭한 유명한 상소문을 올렸다.
날마다 산천재에서 천왕봉을 올려다본 그는 '천 석의 큰 종은 / 크게 치지 않으면 울리지 않듯 / 두류산 기상인 천왕봉은 / 하늘이 울어도 울리지 않는다(請看千石鐘 非大구[손手변 입口]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이라는 시를 썼다.
천왕봉 표지석에 그의 이 '天鳴猶不鳴'이 새겨지기도 했다.

천왕봉은 그냥 함부로 오르는 곳이 아니다. 깎아지른 벼랑 사이로 암굴통문이 있어 그곳을 지나야 한다.
바위에는 하늘로 통하는 문이어서 부정한 사람은 오르지 못한다는 '通天門(통천문)'이란 글자가 음각돼 있어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지난날에는 '영원한 지리산 사람' 우천 허만수가 걸쳐놓은 원목 사다리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올랐는데, 지금은 쇠사다리로 연결해 놓았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남쪽 루트에도 암굴통문이 있다. 속칭 '개선문'인 이 통문의 한쪽 바위가 10년쯤 전에 망가져 아쉽게도 옛모습을 잃었다.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이나 암굴문을 거쳐야 천왕봉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인 고은은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선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늘에 오르지 못 한다"고 했다.
신선조차 통천문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올라야 하는 곳, 그런 뒤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천주인 그 천왕봉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선이 그렇거늘, 하물며 우리 인간은 마음을 말끔히 비우고 찾아야 할 천왕봉이 아니겠는가. 정녕 거룩하고 신령스러운 영봉이다.

하늘이 울어도 울리지 않는 천왕봉이라고 했다. 일출 일몰만이 아니라 천왕봉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신비로움은 너무나 엄청나다.
그 높은 천왕봉을 얼마나 빨리 올랐다거나, 몇 번째 올랐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마음을 비우지 못한 사람이라면 천왕봉은 흐릿한 안개를 풀어놓거나, 아니면 물감을 마구 엎질러놓은 듯한 능선과 골짜기의 외양만 보여줄 것이다.
천왕봉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를 기대하면 안 된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천왕봉을 찾아야 하는지를 먼저 깨닫는 것이 순서다.

  • ?
    오 해 봉 2007.12.27 18:39
    다시 읽어도 좋은글 입니다,
    여산선생님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글을 부탁 드립니다.

  1. No Image

    최상의 기호품 덕산 곶감(1)

    "시천 마천 큰애기 곶감깎기로 다 나간다"는 지리산 민요의 그 시천(矢川)과 마천(馬川)은 일찍부터 곶감으로 유명하다. 지리산 농가들이 늦가을부터 곶감을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 함양군 마천면과 산청군 시천면 일대는 집집마...
    Date2007.10.22 By최화수 Reply2 Views1924
    Read More
  2. No Image

    '정순덕 마을' 정씨 할머니

    정순덕이 태어나고 13년 동안 빨치산 활동을 하다 총을 맞고 사로잡힌 안내원 부락. 수십년 동안 귀틀집들이 죽은 듯이 자리했는데, 지금은 고래등처럼 큰 양옥이 들어서 있다. 지리산 어느 마을이든 건축허가를 받고 새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탓할 수 없다. ...
    Date2007.10.12 By최화수 Reply5 Views1810
    Read More
  3. No Image

    '정순덕 고향' 안내원마을

    내원사 앞에서 장당골과 내원골의 두 계곡물이 합쳐진다. 사찰 바른쪽이 장당골이고, 왼편이 내원골이다. 장당골은 아주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길게 이어지지만, 내원골은 이른바 '황금능선'을 향해 가파르게 치닫는다. 내원골에도 광산 개발을 위한 산판도로...
    Date2007.10.03 By최화수 Reply3 Views1988
    Read More
  4. No Image

    섬진강 기적-오영희 출판회

    다음은 지난 2002년 10월21일자 Daum 칼럼 '최화수의 지리산 통신'에 올렸던 글입니다. 섬호정님의 <섬진강 소견> 출판기념회가 섬진강변 두레네집에서 열렸었지요. 섬호정 선생님과 여러분에게 그리운 마음을 전하면서 추석 인사를 대신하여 그 때의 글을 다...
    Date2007.09.23 By최화수 Reply7 Views1765
    Read More
  5. No Image

    석주관 어찌 그냥 지나치랴!

    왕시루봉 능선이 흘러내린 그 지맥이 섬진강 청류에 잠겨들며 잠시 휴식하는 곳! 강 건너 백운산 자락의 무성한 숲이 쏟아져 내릴 듯하니, 섬진강 하류에서 거슬러 오르다보면 최고의 협곡을 이루는 곳이다. 섬진강 양안을 줄나룻배라도 오고갈 듯 하지만, 그...
    Date2007.09.07 By최화수 Reply2 Views1526
    Read More
  6. No Image

    연곡사의 부도와 순절비(2)

    연곡사의 부도와 순절비를 뒤늦게 찾아본 필자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 사찰을 드나들거나 지나친 것이 도대체 몇 번이었던가. 하지만 필자는 ×눈에 ×만 보인다는 속담처럼 엉뚱한 것에만 시선을 주었을 뿐이었다. 연곡사는 필자에게 지리산을 어...
    Date2007.08.29 By최화수 Reply4 Views1956
    Read More
  7. No Image

    연곡사의 부도와 순절비(1)

    ['다음 칼럼' 재록입니다] 필자의 대학 선배 박아무개님은 학교에 나오는 것보다 전국을 떠도는 날이 많았고, 등교를 해도 강의실보다 술집에 있을 때가 더 많은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이는 필자가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는 나타나 부조할 돈이 없다며 그 대신 ...
    Date2007.08.27 By최화수 Reply0 Views1637
    Read More
  8. No Image

    [납량 6] 종녀촌의 '성축제'

    [납량 6] 종녀촌의 '성(性)축제' 2002년 08월 02일 오래 전에 '전설따라 삼천리'란 라디오 방송 프로가 있었다. 용이 못 된 이무기며, 사람으로 변신한 백여우, 뱀과 까치의 싸움하며 으시시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전설따라...'보다 더 뇌리에 깊이 ...
    Date2007.08.17 By최화수 Reply1 Views2102
    Read More
  9. No Image

    [납량 5] 곤두선 머리카락...

    [납량 5] 곤두선 머리카락... 2002년 07월 31일 꼭 10년 전 가을철이었다. 부산의 산악인 이광전 님은 내원골로 올라 이른바 '황금능선'을 따라 단독산행을 했다. 지독한 산죽과 잡목을 헤치고 써래봉으로 오르는 능선으로 올라서느라 땀을 한 바탕 흘린 그이...
    Date2007.08.17 By최화수 Reply1 Views1746
    Read More
  10. No Image

    [납량 4] 목기막의 불청객들

    [납량 4] 목기막의 불청객들 2002년 07월 28일 지리산 골짜기 속의 골짜기로 '절터골'이 있다.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이현상(李鉉相)이 미스터리의 죽음을 맞이했던 '빗점골 합수내 흐른바위'가 이 절터골의 시작이다. 의신마을에서 벽소령을 넘어가는 군사작...
    Date2007.08.17 By최화수 Reply1 Views197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0 Next
/ 3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