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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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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칼럼' 재록입니다]

필자의 대학 선배 박아무개님은 학교에 나오는 것보다 전국을 떠도는 날이 많았고, 등교를 해도 강의실보다 술집에 있을 때가 더 많은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이는 필자가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는 나타나 부조할 돈이 없다며 그 대신 신혼여행지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이가 낡은 지도를 꺼내놓고 점을 찍은 곳이 쌍계사(쌍계별장)와 연곡사, 천은사였다.
하지만 당시는 워낙 교통편이 불편하여 첫날은 겨우 진주에 닿았고, 다음날은 쌍계별장에 닿아 짐을 풀었고, 셋째날 쌍계사 경내만 돌아보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연곡사(燕谷寺)란 이름은 이처럼 일찍 천은사와 함께 뇌리 속에 각인이 됐다. 하지만 신혼여행 때 가지 못 했던 연곡사행은 그 이후에도 좀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박경리님의 대하소설 <토지> 1부를 읽게 됐다. 그 소설에 악양의 최참판댁 며느리가 연곡사를 찾아 불공을 드리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는가. 그것이 또 연곡사를 찾는 일을 숙제로 안겼다.
그로부터 또 몇 년의 세월이 흘러 1981년에야 마침내 연곡사에 처음 가게 됐다. 부산에서 피아골 당일산행을 하는 팀에 합류, 산행이 끝난 뒤 연곡사를 찾았다.

연곡사의 첫 인상은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작은 법당 하나에 역시 초라한 요사채 하나만 헹뎅그레 남아있고, 지난날의 사찰터는 잡초에 묻혀 있을 따름이었다.
박아무개 선배가 이 볼품없는 사찰로 신혼여행을 권유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연곡사는 구례 화엄사와 함께 신라 사찰의 지리산 입산 제1호로 오랜 역사와 연륜을 지녔다.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연기조사가 화엄사와 함께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사찰은 유난스럽게도 자주 병화(兵火) 등으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고는 하였다.

필자가 처음 찾았을 때는 복원 불사를 겨우 시작한 단계였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연곡사에서 고작 황량하게 버려둔 풀밭만 보고 돌아서 나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곧 박아무개 선배의 뜻을 달리 받아들였다. 연곡사라고 하여 사찰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연곡사로부터 시작되는 아름다운 피아골계곡을 찾아가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로부터 몇년 동안 한 해에도 여러 차례씩 필자는 피아골을 찾아가게 됐지만, 연곡사는 아예 들어가보지도 않았다. 새 당우가 들어서곤 했지만 전혀 관심사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박아무개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대뜸 연곡사 얘기부터 꺼냈다.
"연곡사 정말 황홀하지? 정녕 환상적이잖아!"
"아니, 연곡사가 환상적이라구요? 피아골계곡을 말씀하는 건가요?"
"이 친구가 무슨 엉뚱한 소리는! 연곡사 부도(浮屠) 말이야, 정말 아름다운 조각미의 극치가 아니던가! 석공의 숨결이 들리는 듯 하잖아? 돌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명체 같애!"
"....."
필자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연곡사에 들렀지만, 필자의 눈을 끄는 것이 결코 없었는데, 부도 따위를 주목했을 까닭이 없지 않았겠는가.

"자네는 북부도(北浮屠)를 보고 울지 않았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아무개는 그럴 줄 알았는데! 연기조사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심의 결정체거든.
그이는 노모가 별세하자 생전에 못다한 효도를 한탄하며 어머니 명복을 빌고자 화엄사 효대(孝臺)에는 4사자3층석탑을, 연곡사에는 이 북부도를 세웠다구.
화엄사 4사자 3층석탑은 자장율사가 연기조사의 효성을 추앙하여 건립한 일종의 불사리공양탑이란 설도 있지. 기단을 사자 네마리가 받치고 있지만, 중앙에 승상이 머리로 떠받들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지."

박아무개 선배 말에 필자는 아무 대꾸도 못 했다. 부도가 뭔지 관심도 없던 필자에게 어떤 부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 필자는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귀를 열고도 듣지 못한 채 지리산을 찾았다는 부끄러움을 깊이 깨달았다. 그래서 관계 문헌을 비로소 찾아보게 된 것이다.
연곡사 동부도와 북부도는 국보(國寶) 제53, 54호이고, 3층석탑과 현각선사탑, 동부도비, 서부도는 보물로 지정돼 있었다.
부도도 그렇지만, 연곡사 경내에 서있는 의병장 '고광순(高光純) 순절비'가 또다른 관심을 끌게 했다.

왜 사찰에 의병장 순절비가 서 있지? 그 의문으로 연곡사를 다시 찾아 여러 부도들과 함께 경내에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비와 석탑 등을 살펴보았다. 연곡사가 왜 자주 병화를 입었는지, 의병장 순절비가 연곡사 경내에 있는 까닭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연곡사를 찾을 때는 섬진강변 고전장(古戰場)인 '석주관(石柱關)부터 함께 찾아야 한다는 것도 깨우치게 됐다.
피아골의 연곡사와 섬진강변의 석주관, 그리고 의병순절비와 부도 등은 절묘한 하머니를 이루고 있는 것이 경탄할 만하다.
연곡사와 석주관은 무슨 관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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