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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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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사찰과 만난다. 사찰은 명당에 자리잡고 주변 경치림이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기에 종교와 관계없이 드나들게 된다. 또한 등산로도 이들 사암과 연결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등산객들은 자연히 사찰을 지나치게 된다.
지리산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등산객 가운데는 때로 "다만 사찰 앞을 통과할 뿐인데 왜 입장료를 징수하느냐."며 불쾌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큰 사찰이든 작은 암자든 거기에는 우리들이 눈여겨 볼 만하거나 깨우침의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지리산 주능선 북쪽 산자락 속에 묻혀 있는 사찰로 벽송사와 영원사가 있다. 남쪽의 쌍계사나 화엄사보다 규모가 작고 덜 알려진 사찰이다.
두 사찰 모두 빨치산과 군경토벌군의 격전 와중에 불타버리는 비운을 겪었다. 그 이후 오랜 기간 버려져 있다가 어렵게 복구 불사를 벌여 근년에야 겨우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이런 사찰은 눈에 들어오는 유형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보아야 할 소중한 보석이 있다. 그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는 남쪽 전망대가 삼신봉이라면, 북쪽 전망대는 삼정산(삼정봉)이다. 전북과 경남의 경계를 이룬 이 지리산 속의 또 하나의 산에는 7개의 사암으로 연결되는 사찰 순례 등산 코스가 유명하다.
실상사~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영원사~도솔암을 거쳐 삼각봉에 이르거나 그 역코스로 산행하기도 한다.
실상사는 부속 사암과 문화재가 많고, 증각대사가 선종(禪宗)을 크게 일으킨 곳으로 이름난 대사찰이다. 실상사(實相寺)와 영원사(靈源寺)는 그 이름처럼 모든 점에서 대조적이다.

영원사는 들판에 터잡은 실상사와는 반대로 삼정봉을 사이에 두고 해발 900미터의 첩첩산중에 자리한다. 실상사는 세 차례나 불탔지만, 현재의 당우는 고종 21년(1884년)에 세워진 것으로 6.25 때 병화를 면했다.
하지만 영원사는 100간이 넘는 아홉 채의 건물이 있었던 대가람이었으나 공비 토벌 때 전소, 지난 1970년대 후반까지 겨우 몇개의 주춧돌만 남아 있었다. 현재는 정면 7간, 측면 3간의 대웅전을 비롯한 법당과 요사채가 있다.
하지만 영원대사가 영원사를 창건하게 된 일화에는 보다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영원스님은 입산한 지 얼마 안돼 현재의 영원사 부근 토굴에서 8년 동안 참선 정진을 했지만 깨우침을 얻지 못 했다. 실망한 그는 수도처를 옮기고자 산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한 노인이 물도 없는 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영원스님이 어이가 없어 가까이 다가가자 노인이 혼잣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8년을 살며 낚시질을 했는데, 2년만 더 있으면 큰 고기가 낚일 것이다."
그런 뒤 노인은 표연히 사라졌다. 젊은 영원스님은 다시 토굴로 돌아가 2년을 더 수도 정진, 마침내 깨우침을 얻어 영원사를 세웠다.

벽송사를 세운 벽송 지엄스님에게도 남다른 일화가 있다. 칠선계곡 들머리 광주리마을(현재의 광점동)에 정심스님이 변복에 머리를 기르고 은거하면서 싸리로 광주리를 만들어 장에 내다파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에게 젊은 벽송이 제자가 되겠다며 찾아들었다. 정심스님은 벽송을 머슴처럼 싸리 채집과 광주리 만드는 일만 시킬 뿐, 불법은 단 한 차례도 가르치지 않았다.
벽송은 그렇게 3년 세월을 허송하자 화가 치밀어 떠나겠다며 바랑을 메고 나섰다. 마침 장에서 돌아오던 정심스님과 마주쳤다.

정심스님은 "가고 오는 것은 그대의 자유이니 마음대로 하라."는 말만 했다. 벽송은 새 스님을 찾아가겠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길을 재촉했다.
그가 의탄리의 살바탕에 이르렀을 때 등 뒤에서 갑자기 정심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벽송아, 너는 도를 받아라!" 벽송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정심스님이 억새풀 하나를 꺾어 들고 흔들면서 "벽송아, 너는 왜 그냥 가느냐? 어서 이 법(法)을 받아 가거라."고 했다.
벽송은 순간 깨달음의 문이 활짝 열려 온갖 욕망이 사라졌고, 만물과 사물의 원리를 알게 됐다고 한다.

벽송은 다시 광주리마을로 되돌아갔다. 3개월 뒤 정심대사가 열반하자 벽송은 지금의 벽송사 위에 조그만 절을 짓고 불법을 펴니 이것이 오늘의 벽송사가 된 것이다.
벽송과 영원 같은 대고승들도 한 곳에 머물며 3년이나 8년을 수도 정진하기 어려워 했다.
그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늘, 삼정봉 문수암의 도봉(道峰)스님은 지금까지 20수년의 세월을 오직 홀로 문수암 토굴을 지키며 수도정진을 계속하고 있다.
"좀 더 있으면 큰 고기가 낚인다."거나, "도봉아, 너 왜 그냥 가느냐?" 라고 문수보살이 부르기라도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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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8.01.09 22:05
    벽송사 실상사 문수암 영원사
    모두 정다운 이름들 이네요,
    재작년 12월에 도봉스님이 팔이 아프다고 하셔서
    문수암 눈을 쓸어준일이 생각납니다,
    소일거리를 찾아본다고 생소한일에 도전하고보니
    가고싶은 지리산도 못가고 그러네요,
    여산선생님 건강 하세요.
  • ?
    김용규 2008.01.09 23:15
    벽송사와 영원사 관련 이야기들을 아주 새롭게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1686년 정시한선생이 쓴 산중일기에 의하면 영원사 주변엔 수없이 많은 사찰들이 있었던것 같은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지리산 동부자락엔 온통 사찰의 천국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뚜렷하고 구체적인 기록도 없지만 함양독바위 아래 노장대 근처에 지장사가 있었다는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에 기록이 되어 있고 직접 그 흔적을 확인해 보기도 했으며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모두 함양독바위 주변) 암자도 있었고 현장에 가 보면 옛날 기와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더군요. 해발 1200m 고지대인데도 말입니다.
    휴천면 운암 마을 가는 인근에도 절터 흔적이 있는 것으로 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사찰들이 존재했던것도 신비하게 느껴져 옵니다.
  • ?
    방희원 2008.01.11 17:00
    영원사에 다녀오셨나요?
    말은 많이 들었는데, 가보고 싶군요.
    국장님!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눈 볼수 있는 산에 가시면 따라가고 싶어요.
    눈오던 남덕유산아래에서 구워먹던 삼겹살 기억나시나요?
    지금도 삼겹살먹을때마다 그때 이야기 하곤 한답니다.
    새해엔 좋은 일만 생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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