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1754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사진 위는 '鳳鳴山房(봉명산방)'이란 판액이 걸려 있는 불일오두막 앞 모습이다. '봉명산방'이란 이름은 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이곳에 와서 직접 명명했다.
사진 아래는 봉명산방 오두막 앞의 휴게소 모습.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
...........................................................................................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3년 8월, 필자는 봉명산방 뜨락의 돌탁자에 변규화 옹과 마주앉아 오두막 뒤에 새로 짓고 있는 토담집 얘기를 나누었다.
필자는 그 이야기를 그대로 ‘지리산 일기’에 썼었다.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 그 일기를 다시 읽어보고 있다. 그이는 그 때 이미 생사의 문을 초월하는 의미심장한 말을 필자에게 들려주었던 것이다. 이제 보니 그렇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그렇지 아니한다.
  
["이 토담집에는 어떤 가구도 집기도 들여놓지 않을 거요. 오직 나 한 몸 들어와서 명상도 하고 시간도 보내고…."

그렇다. 새로 짓는 이 토담집은 변규화 옹의 마지막 토굴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그이만의 순수 자연의 세계!
변규화 옹이 지리산 생활 30수년, 아니 자신의 한평생 전부를 결산하고 마무리하는 공간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어떤 문명의 도구도, 문화의 이기(利器)도 들여놓지 않겠다고 하지 않는가.

황토 토담과 자연의 숲, 공기와 물, 그이의 맑은 영혼이 서로 어울려 노니는 공간, 아, 얼마나 맑고 깨끗하고 신성한 곳인가!
시공을 초월하여 현세와 내세를 넘나드는 문(門)과 같은 곳이 아닐까!]

필자가 이곳에 그날의 두 번째 일기를 여기에 계속 옯겨놓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다음은 그 글이다.
................................................................................
        
          오두막집 안쪽의 토담집(2)
                                (2003년 8월29일)

"나는 밤이 되면 홀랑 알몸이 되어 이 산중을 거닙니다. 달빛이 숲에 부서져 내리면 더욱 좋지. 거추장스런 옷가지를 벗어던진 알몸, 완전한 자유, 그것은 자연과의 교감으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지요!"

변규화 옹은 달빛이 너무 밝아 혼자 있는 자신을 '못살게 굴 때'는 옷을 홀랑 벗어던진다고 한다.
완전한 알몸이 되어 불일평전을 거닌단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숲속 자연의 삶인가.

"자연과 어울리다 보니 독사와 마주쳐도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연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식, 그런 감정이 앞서니까 두려움도 미움도 없어지더라구요."

그이는 만인이 그 아름다움을 찬탄하던 부인이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간 이후에도 변함없이 이 불일평전 오두막을 지키고 있다.
'불일평전 2세'로 아버지에 이어 이곳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던 하나뿐인 아들, 그 아들이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떠나간 뒤에도 그이는 변함없이 이 불일 오두막을 지켜오고 있다.

무엇이 그이를 이처럼 불일평전에 붙들어 두게 하는 것일까?
지리산의 자연이다.
그이는 불일오두막에 정착하기 이전에 불일폭포 상류인 상불(上佛)에서 토굴생활을 했고, 스님이 되어 탈속을 하기도 했었다. 그 또한 자연에의 귀의였다.

변규화 옹은 불일 오두막을 25년째 지켜오고 있다. 그 사이 불일폭포가 내려다보이는 불일암(佛日庵) 스님은 화재 소동을 일으키고 사라졌지만, 그이만은 도대체 달라지는 것이 없다.
다른 산중사람들처럼 술고래가 되거나 담배를 피거나 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순수한 '봉명선인(鳳鳴仙人)'이다.

변규화 옹은 그 옛날 토굴생활을 할 때 득도를 했거나, 그와 유사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사실을 나는 벌써 십수년 전 <지리산 365일>(전 4권, 신문연재 225회)을 쓸 때 알 수 있었고, '예언자' 등의 얘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새삼스럽게 이 말을 왜 또 꺼집어내는가? 지금 불일평전 오두막 뒤편에 또 하나의 토담집을 짓고 있는 진정한 뜻을 이해하려면 변규화 옹의 지난 내력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때문이다.

"이 토담집에는 어떤 가구도 집기도 들여놓지 않을 거요. 오직 나 한 몸 들어와서 명상도 하고 시간도 보내고…."

그렇다. 새로 짓는 이 토담집은 변규화 옹의 마지막 토굴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그이만의 순수 자연의 세계!
변규화 옹이 지리산 생활 30수년, 아니 자신의 한평생 전부를 결산하고 마무리하는 공간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어떤 문명의 도구도, 문화의 이기(利器)도 들여놓지 않겠다고 하지 않는가.

황토 토담과 자연의 숲, 공기와 물, 그이의 맑은 영혼이 서로 어울려 노니는 공간, 아, 얼마나 맑고 깨끗하고 신성한 곳인가!
시공을 초월하여 현세와 내세를 넘나드는 문(門)과 같은 곳이 아닐까!

불일오두막 안쪽의 토담집, 변규화 옹이 그 큰 바위를 혼자 힘으로 치워내고 손수 한뼘한뼘 토담을 쌓아 거의 마무리를 했다.
구조라면 황토방 하나에 덧문이 달린 것이 전부이다.
더구나 방안에는 아무런 가구나 집기도 들여놓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 작은 흙방에는 '지리산의 자연'으로 가득 채워지리라.
그 무엇보다 변규화 옹의 맑은 영혼이 시공을 초월하여 영생(永生)할 것이 분명하다.
  • ?
    김현거사 2008.05.20 06:55
    청년시절 아무도 없는 남해 송정의 호수에서 발가벗고 목욕한 기억 납니다.훈훈한 바람과 물결은 비단처럼 부드럽고,달빛에 반짝이던 이슬...
  • ?
    야생마 2008.05.23 15:50
    그런 의미에서 토담집을 애써 지으셨군요.
    문명을 단절하고 황토와 자연의 순수와의 교감으로
    영혼을 맑게 하고 그렇게 마지막을 지리산의 자연속에서
    환생을 꿈꾸셨던 것이군요. 그것도 참 멋지고 부럽습니다.

  1. 시화집 <세이암에 꽃이 피면>

    지리산 삼신동 세이정(洗耳亭) 아래 화개동천 물소리만 넉넉한 작은 토굴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법화선원이다. 이 토굴에서 낮에는 흰구름, 밤에는 밝은 달과 더불어 수행정진하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삼신산인(三神山人) 법공(法空) 스님이다. 7월 첫째 ...
    Date2008.07.07 By최화수 Reply10 Views1878 file
    Read More
  2. No Image

    200차 종주 김성한 기자 르포

    이광전 님의 200차 지리산 종주를 국제신문 김성한 기자가 동행 취재, 국제신문 6월13일자 '주말&엔'에 3개 면(面)에 걸쳐 와이드 특집보도를 했다. 이 가운데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의 산행 상보를 제외한 소개 기사 부분을 여기에 옮겨본다. 여러 장의 좋은 ...
    Date2008.06.13 By최화수 Reply1 Views1743
    Read More
  3. "지금은 200차 지리산 종주중!"

    사진 위는 200차 지리산 종주산행 200차의 금자탑을 이룩한 '자이언트' 이광전 님의 최근 모습이다. 이광전 님은 불일폭포 변규화 옹과 각별한 사이였는데, 지난 5월17일 친구와 함께 먼저 떠난 그이의 오두막을 찾아 추억을 되살려보기도 했다.(아래 사진 오...
    Date2008.06.03 By최화수 Reply0 Views1565 file
    Read More
  4. '봉명산방 신화' 영원히...(3)

    ............................................................................... 사진 위는 '鳳鳴山房(봉명산방)'이란 판액이 걸려 있는 불일오두막 앞 모습이다. '봉명산방'이란 이름은 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이곳에 와서 직접 명명했다. 사진 아래는 봉...
    Date2008.05.19 By최화수 Reply2 Views1754 file
    Read More
  5. '봉명산방 신화' 영원히...(2)

    사진은 불일평전 오두막 '봉명산방' 뒤쪽에 새로 지은 토담집 토방. 변규화 옹은 이 토방에서 신선과도 같이 초극의 시간을 갖고자 했다. 그렇지만 이 토방이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비극을 불러들이게 될 줄이야... ........................................
    Date2008.05.04 By최화수 Reply4 Views1550 file
    Read More
  6. '봉명산방 신화' 영원히...(1)

    사진 위는 불일평전으로 오르는 오솔길의 나무 다리. 아래는 지난 4월19일 철늦은 벚꽃이 만개한 불일평전 불일오두막(봉명산방) 모습이다. ........................................................................... 지리산 사람들도 세월이 흘러가는 ...
    Date2008.04.23 By최화수 Reply6 Views1778 file
    Read More
  7. '쌍계석문'과 '석문광장'(4)

    석문광장의 백운장과 지리산여관, 쌍계사와 바짝 가까이 자리한 쌍계별장과 청운장은 쌍계사의 또다른 사랑방과 같았다. 백운장은 구월순 여사, 쌍계별장의 윤석천 내외 분 등 이들 숙소를 운영하는 이들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마치 친척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
    Date2008.04.14 By최화수 Reply2 Views1757 file
    Read More
  8. '쌍계석문'과 '석문광장'(3)

    사진 위는 화개천 위에 육중하게 들어선 '쌍계 2교'. 이 교량 가설과 함께 진입도로 등 '쌍계사 지도'가 달라졌다. 아래 사진은 석문광장의 상징과도 같은 '백운장'. 오랜 세월 화개동천과 쌍계사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
    Date2008.04.04 By최화수 Reply3 Views1626 file
    Read More
  9. '쌍계석문'과 '석문광장'(2)

    [사진 위쪽은 적막감이 감도는 석문광장, 아래쪽은 새로 만든 쌍계사 진입도로 모습이다. 석문광장 입구에 있던 토산품 난전도 새 도로 쪽으로 옮겨갔다.] .................................................................... 쌍계석문 앞에 타원형 공간...
    Date2008.03.21 By최화수 Reply2 Views1386 file
    Read More
  10. '쌍계석문'과 '석문광장'(1)

    ‘두류산 방장산은 참으로 선계로다. 맑고 기뻐하며 돌문에 새겼으니 돌문 필적은 세상 보배가 되었는데, 신선이 노닌다며 흰 구름이 가로막네.‘ 조선시대 이름난 고승 소요선사(逍遙禪師)가 쌍계사로 통하는 자연 암석 석문에 새겨놓은 ‘雙磎石門’(쌍계석문)...
    Date2008.03.10 By최화수 Reply1 Views1673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0 Next
/ 3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