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1673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두류산 방장산은 참으로 선계로다.
맑고 기뻐하며 돌문에 새겼으니
돌문 필적은 세상 보배가 되었는데,
신선이 노닌다며 흰 구름이 가로막네.‘
조선시대 이름난 고승 소요선사(逍遙禪師)가 쌍계사로 통하는 자연 암석 석문에 새겨놓은 ‘雙磎石門’(쌍계석문)이란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의 글씨를 보고 찬탄하며 읊었다는 시(詩)다.
더구나 이 글씨는 최치원이 지팡이를 들어 썼다는 말이 전해오기도 한다.

쌍계사로 들자면 큰 바위 한 쌍이 문처럼 서 있는 석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덕산의 입덕문(入德門), 청학동으로 통한다는 전설적인 석문(石門), 지리산 주봉으로 통하는 통천문(通天門), 개천문(開天門)과 그 맥이 통하는 유서 깊고 신비로운 문이다.
처음에 옥천사(玉泉寺)라 불리던 것을 신라 헌강왕이 문전에 흐르는 쌍계에 연유하여 ‘쌍계(雙磎)’라는 호를 하사하고 학사 최치원으로 하여금 ‘雙磎石門’ 4자를 쓰게 하여 좌우편 바위에 두자씩 각자하였다.

‘차가운 시내가 그윽한 푸른 못에 떨어지고
돌에 새긴 붉은 글씨는 길가에 있네.
느린 걸음으로 솔숲을 지나 옛 절에 드니
비단 같은 병풍은 가을에 석양의 다락을 안았네.‘
                                     -趙憲 , 重峰集 권1-

쌍계사로 찾아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오랜 세월 이 석문을 들어서며 ‘속세와의 경계’로 삼았다.
또 언제부터인가 이 쌍계석문을 한 쌍의 장승이 믿음직하게 지키고 서 있었다.
‘雙磎’와 ‘石門’이란 각자(刻字)에 입혀놓은 붉은 색, 그리고 사열을 받듯 계곡을 따라 늘어선 울울창창한 거목들과 함께 이 장승은 사찰에 드는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쌍계석문을 굳건하게 지키고 서있던 장승이 쓰러진 채 내버려져 있다. 장승 하나는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추고 없다.
“시멘트에 박아놓아 뿌리가 썩어 넘어진 거예요.”
“아무나 함부로 손댈 수가 없어요. 화(禍)가 미칠 지도 모르니까.”

석장승이든 목장승이든 그것도 우리의 문화 유산이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팽개쳐 놓기만 하는 것일까.
“관계 당국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고 한 주민이 혀를 찼다.
쌍계석문 앞에는 장승만 버려져 있는 것이 아니다.
쌍계석문 광장의 현실 또한 어둡고 싸늘하다.
쓰러진 장승이 ‘석문광장’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위의 사진은 지난 (2008년) 2월27일에 찍은 것으로 쌍계석문 앞에 쓰러진 채 버려져 있는 장승의 모습이다.]  
  • ?
    moveon 2008.03.14 16:07
    정말 안타깝네요. . . . 관계 당국도 문제지만 사찰에 사는 스님네들의 정신상태에서도 문제가 늘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사는 집 들어설때 마다 조금씩만 관심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있습니다.

  1. 시화집 <세이암에 꽃이 피면>

    지리산 삼신동 세이정(洗耳亭) 아래 화개동천 물소리만 넉넉한 작은 토굴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법화선원이다. 이 토굴에서 낮에는 흰구름, 밤에는 밝은 달과 더불어 수행정진하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삼신산인(三神山人) 법공(法空) 스님이다. 7월 첫째 ...
    Date2008.07.07 By최화수 Reply10 Views1878 file
    Read More
  2. No Image

    200차 종주 김성한 기자 르포

    이광전 님의 200차 지리산 종주를 국제신문 김성한 기자가 동행 취재, 국제신문 6월13일자 '주말&엔'에 3개 면(面)에 걸쳐 와이드 특집보도를 했다. 이 가운데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의 산행 상보를 제외한 소개 기사 부분을 여기에 옮겨본다. 여러 장의 좋은 ...
    Date2008.06.13 By최화수 Reply1 Views1743
    Read More
  3. "지금은 200차 지리산 종주중!"

    사진 위는 200차 지리산 종주산행 200차의 금자탑을 이룩한 '자이언트' 이광전 님의 최근 모습이다. 이광전 님은 불일폭포 변규화 옹과 각별한 사이였는데, 지난 5월17일 친구와 함께 먼저 떠난 그이의 오두막을 찾아 추억을 되살려보기도 했다.(아래 사진 오...
    Date2008.06.03 By최화수 Reply0 Views1565 file
    Read More
  4. '봉명산방 신화' 영원히...(3)

    ............................................................................... 사진 위는 '鳳鳴山房(봉명산방)'이란 판액이 걸려 있는 불일오두막 앞 모습이다. '봉명산방'이란 이름은 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이곳에 와서 직접 명명했다. 사진 아래는 봉...
    Date2008.05.19 By최화수 Reply2 Views1754 file
    Read More
  5. '봉명산방 신화' 영원히...(2)

    사진은 불일평전 오두막 '봉명산방' 뒤쪽에 새로 지은 토담집 토방. 변규화 옹은 이 토방에서 신선과도 같이 초극의 시간을 갖고자 했다. 그렇지만 이 토방이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비극을 불러들이게 될 줄이야... ........................................
    Date2008.05.04 By최화수 Reply4 Views1550 file
    Read More
  6. '봉명산방 신화' 영원히...(1)

    사진 위는 불일평전으로 오르는 오솔길의 나무 다리. 아래는 지난 4월19일 철늦은 벚꽃이 만개한 불일평전 불일오두막(봉명산방) 모습이다. ........................................................................... 지리산 사람들도 세월이 흘러가는 ...
    Date2008.04.23 By최화수 Reply6 Views1778 file
    Read More
  7. '쌍계석문'과 '석문광장'(4)

    석문광장의 백운장과 지리산여관, 쌍계사와 바짝 가까이 자리한 쌍계별장과 청운장은 쌍계사의 또다른 사랑방과 같았다. 백운장은 구월순 여사, 쌍계별장의 윤석천 내외 분 등 이들 숙소를 운영하는 이들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마치 친척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
    Date2008.04.14 By최화수 Reply2 Views1757 file
    Read More
  8. '쌍계석문'과 '석문광장'(3)

    사진 위는 화개천 위에 육중하게 들어선 '쌍계 2교'. 이 교량 가설과 함께 진입도로 등 '쌍계사 지도'가 달라졌다. 아래 사진은 석문광장의 상징과도 같은 '백운장'. 오랜 세월 화개동천과 쌍계사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
    Date2008.04.04 By최화수 Reply3 Views1626 file
    Read More
  9. '쌍계석문'과 '석문광장'(2)

    [사진 위쪽은 적막감이 감도는 석문광장, 아래쪽은 새로 만든 쌍계사 진입도로 모습이다. 석문광장 입구에 있던 토산품 난전도 새 도로 쪽으로 옮겨갔다.] .................................................................... 쌍계석문 앞에 타원형 공간...
    Date2008.03.21 By최화수 Reply2 Views1386 file
    Read More
  10. '쌍계석문'과 '석문광장'(1)

    ‘두류산 방장산은 참으로 선계로다. 맑고 기뻐하며 돌문에 새겼으니 돌문 필적은 세상 보배가 되었는데, 신선이 노닌다며 흰 구름이 가로막네.‘ 조선시대 이름난 고승 소요선사(逍遙禪師)가 쌍계사로 통하는 자연 암석 석문에 새겨놓은 ‘雙磎石門’(쌍계석문)...
    Date2008.03.10 By최화수 Reply1 Views1673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0 Next
/ 3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