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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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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노트에서 찢어낸 한 장의 종이.
그 앞 뒷면은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하다.

왼팔 하나뿐인 장애자가 어떻게 밀가루 반죽을 하여 손수 면을 뽑아 자장면을 만드는가?
더구나 그이는 전국을 떠돌면서 행상 등 온갖 일을 다했다고 하지 않은가.
그런 그이가 어찌어찌 하여 자장면집 주인이 되어 지리산 기슭에 정착하게 됐을까?

나는 처음에 그 이야기를 그이의 입을 통해 듣고자 했었다.
하지만 '지리산 세 선녀' 환영 등으로 그이와 따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이에게 자신의 얘기를 메모 형식으로 좀 적어달라고 당부를 했던 것이다.

'소문난 짜장면'집 강 사장이 나에게 내민 대학 노트 한 장에는 작은 글씨들이 그야말로 새카맣게 뒤덮고 있었다.
그이는 자신의 삶을 압축하여 메모식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다.
무슨 장편소설을 시작하듯 본격적으로 글을 써내려 간 것이다.

그것을 얼핏 들여다본 나는 꽤나 놀랐다.  
하지만 그 글을 죄다 읽을 필요는 없었다.
앞면 3분의 1만 읽어도 헤아릴 수 있었다.

마천(馬川) '소문난 짜장면'집 강상길 사장.
자장면집 이름처럼 그이 글도 뭔가 달랐다.
나는 강 사장에게 꼭 한 마디만 물어보았다.

"이 글, 강 사장이 직접 쓴 거요?"
"예, 그렇습니다."

강 사장에게 한 가지만 물었지만, 나는 그이가 보여준 세 가지 사실에 놀라고 감탄했다.

첫째, 달필(達筆)인 그이의 글씨다. 어쩌면 한 손으로 그토록 능숙하게 글씨를 써낸 것일까? 더구나 강 사장은 오른팔이 없어, 자연히 왼 손으로 글씨를 쓸 수밖에 없다.
둘째, 잘 읽히는 그이의 문장력이다. 마치 얘기를 들려주듯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문장력이 상당한 수준이다.
셋째, 그이의 소년같은 감성(感性)이다. 6순에 접어든 그이, 하지만 사물을 보는 시각과 생각하는 마음은 10대 소년 못지 않게 신선하고 순수하기만 하다.

"됐소! 됐습니다!"
"예? 되다니요!?"

"됐습니다. 이렇게 쓰면 됩니다. 거짓없이 진실하게 자신이 세상을 살아온 삶을 차분하게 기록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제 이야기를 한번 써볼까 하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정말 이렇게 쓰도 되는 것일까요?"

강상길 사장은 그러니까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글로 풀어놓을 나름대로의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대학 노트의 그의 글 일부를 보고 그이의 그 능력을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그이의 그 글에 대해 격려를 해주었던 것이다.

"앞으로 내가 쓰는 글 좀 보시고 지도를 해주세요."
"지도는 무슨 지돕니까. 나로선 여기에 뭐 더하고 뺄 말도 없습니다."
"앞으로 나의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원, 별말씀을!"

그날 저녁에는 그 정도에서 얘기를 끝냈다.
그로부터 1년의 세월이 어느 사이 흘러갔다.
새봄이 되어 봄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지난 4월 초순이었다.
회사 사무실에 '소문난 짜장면'집 강 사장이 불쑥 들어섰다.
그이는 두툼한 대학 노트철을 나에게 내밀었다.

"내 손으로 내 이야기 여기에 다 썼습니다."
"...!?"

그이가 내민 것은 지난해의 대학노트에서 찢어낸 그 한 장이 아니었다.
아주 두툼한 두께로 무려 200쪽에 이르는 '산더미 같은 원고뭉치'였다.
(2003년 6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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