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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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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집의 동쪽 경계인 한수내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왕시루봉 자락에서 흘러든 옥수가 섬진 청류로 합류하는 곳이니 아름다운 자연세계일 것으로 당연히 생각됐다. 두레네집에서 꿈꾸는 '생태학교'에 이 한수내가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었다. 두레네집에 도착한 필자는 '언덕 위의 괴목나무' 다음으로 이 한수내를 찾아보았다. "아니, 이럴수가!" 놀랍게도 이런 탄식부터 흘러나왔다. 한수내의 모습은 정말 뜻밖으로 '언덕 위의 괴목나무'보다 필자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수내에는 왕시루봉 자락의 맑은 물이 넉넉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수내 양쪽에 호안(護岸)공사를 해놓았다. 집중호우 때 물이 넘쳐나 하천 양쪽의 땅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호안공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관청에서 두레네집이나 주변의 전답 보호를 위해 많은 돈을 들여 공사를 한 사실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수내 양쪽을 마치 직강(直江)공사를 하듯이, 직각의 담장처럼 높다랗게 쌓은 것이다. 더구나 돌만 쌓은 것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시멘트를 발라놓기까지 했다.

근래 끝마친 듯한 이 공사로 한수내를 끼고 있는 두레네집과 반대편 전답들이 폭우가 쏟아져도 안전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원래의 개울이 지녔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완전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지리산을 적시는 하천이라면 오랜 세월 계류가 갈고 닦은 석실(石室)과 암석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고, 무엇보다 개울 양쪽에 물풀이나 들풀이 무성하게 자라나야 한다. 그래야 물고기나 하천 생물이 제대로 서식할 수 있다. 하지만 호안공사로 절벽을 만들어 접근할 길까지 막아놓은 것이다.

개인이 호안 공사를 한다면 결코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아름이 넘는 자연석들을 비탈이 심하지 않게, 계단식으로 쌓았을 터이다. 그 자연석 계단으로는 쉽게 개울 바닥으로 오르내리게 되는 것도 물론이다. 이른바 자연친화형이란 것이다. 부산 금정산 대천천(大川川)의 경우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화명동 일원에 '생태계 보호 절대우선'의 호안공사를 했다. 안쪽은 자연석으로 쌓되 바깥쪽은 진흙과 물풀로 장식했다. 물론 공사비와 노력은 엄청난 것이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살려냈다.

아침에 일어나 또 한수내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두레 아빠가 다가와 말했다. "아이들과 생태학교를 하는데 천렵이 가장 재미있더군요. 이 개울에 메기랑 물고기가 꽤 많이 잡혔는데, 호안공사를 한 뒤로 물고기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개울 바닥의 돌도 걷어내고, 시멘트를 발라놓아 물고기들을 쫓아낸 것이지요." 누군가가 시멘트 독(毒)이 지독하여 상당 기간 물고기를 내몰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보다 포크레인이 개울바닥을 온통 뒤집어 놓는 통에 자연생태계가 완전 파괴된 것이 더 문제였다.

하지만 두레 아빠는 우리에게 탄식 대신 희망적인 얘기를 들려주었다. "둑을 쌓느라 물놀이 하기 좋은 소(沼)마저 포크레인이 밀어버렸어요. 포크레인 기사에게 웅덩이를 파달라고 부탁했더니 인위적인 소를 만들어주더군요. 그런데 폭우가 내려 한바탕 물이 쏟아지고나니 그 웅덩이가 금방 메워지고 말았어요. 그 대신 자연의 소가 딴 곳에 저절로 만들어지더군요. 자연의 힘이란 정말 위대한 거지요." 그렇다. 두레 아빠는 자연은 스스로의 힘으로 원상회복한다는 그 '희망'을 벌써 읽고 있었다.

필자는 두레 아빠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정말 잘 생긴 얼굴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도 순수하고 모든 문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지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이는 '언덕 위의 괴목나무'도 '우리 식구들을 끝까지 지켜볼 것'으로 믿고 있었고, 호안공사로 사라진 한수내의 여울목도 자연의 힘으로 원상복원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믿음과 자연에 대한 신뢰는 두레네 가족 모두가 똑같이 갖고 있는 듯했다. 한결같이 맑고 밝은 모습들에서 그것이 입증되고도 남는다고 하겠다.

황량한 개울 바닥에서 희망을 건져올리는 두레 아빠를 보자 '두레네 글방'에 올려진 '흙 한줌과 개구리알'이 저절로 떠올랐다. '해는 일찍 뜨지만 우리집 안마당에 햇살이 비치려면 9시는 넘어야 합니다. 이제는 봄기운이 완연해 골짜기를 넘어온 햇살 한 조각에도 얼었던 땅이 녹아 질펀합니다. 그리고보니 봄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도시 분들에게 땅에 봄볕이 스몄음을 알려드립니다.' 질퍽해진 땅은 짜증스러울 수도 있는데, 두레 아빠는 봄의 행복을 가슴 가득 보듬는다. 자연에 동화된 참모습이 거기 있다.
(2002년 2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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