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139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두레네집'이 2003년 8월25일 지리산을 떠나간다. 왕시루봉 산줄기가 흘러내려 한수내와 더불어 섬진강에 발을 담그는 곳에 자리한 두레네집,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토지초등학교 송정분교가 문을 닫은 뒤 그 자리에 '자연생태학교'의 꿈을 안고 들어섰던 두레네집!

하지만 지리산의 새 명소 '두레네집'은 자연학교의 꿈도 펼치기 전에 그만 지리산을 떠나가게 된 것이다. 물론 두레네 가족의 뜻이 아니라 힘있는 사람의 농간(?)에 떼밀려 떠나는 것이다. 다음은 두레아빠 안윤근님의 '두레네 글방' 글과 칼럼지기에게 보내온 이메일이다. 거기서 전후 사정을 읽을 수 있다.  
...............................................................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2000년 8월5일, 두레네 글방)

옅은 미인의 눈썹처럼 가녀린 달이 걸려있는 섬진강가에 나와 있습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달빛과 그 불빛이 어우러진 강물은 물비늘 반짝이며 흘러가는가 봅니다.
아내와 강변에 나와 앉아있는 이 밤은 나에게 우울한 날이자
어찌보면 새로운 기회에 도전해보리라는 다짐을 갖는 밤입니다.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윤동주 시인의 독백을 가슴속에 벼리며 살고자 했습니다.
간도 용정중학교에 방문했을 때 그의 시비를 읽고 또읽고 그의 체취가 남아있을는지도 모를 재래식 화장실까지 기웃거렸던 애틋함을 가졌었지요.
내 하는 일이 순리에 어그러지지 않게 되기를 늘 소망했었습니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나 이제 큰 강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

제 마음은 늘 이곳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산하에 있고자 했으나
이제 이 산 기슭과 강 언저리를 떠나야하는가 봅니다.
대학시절 그렇게 불렀던 양성우 시인의 싯귀가 오늘처럼 가슴절절한 날도 드믄 것 같습니다
잡고 싶지만 잡히지 않고 떠나는 애인처럼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순리적인 방법으로 있고자 했으나
저의 뜻과는 다른 결과물을 안고 말았답니다.

몇 다리만 건너면 "빽"과 연결되는 한국사회에 왜 저라고 그리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인터넷과 언론에 알려 이슈화하려고 싶은 무리수를 왜 저라고 모를까요?
내 의지대로 하고자하여 제가 그 동안 손가락질해왔던 방법을 하기엔 제 마음이 허락치 않았고. 그렇게 살기 싫어 이 곳에 왔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여기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사정을 들으시고 끊임없이 애를 써준 이장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기자들과 방송PD, 이렇게 저렇게 도와주시려고 연락주신 지인들의 조언에 감사하면서도
그리 안한 고집스런 제 미련에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번만큼은 정말 한번 깨끗한 순리대로 일을 지켜보려고 했습니다.

돈 얼마 하는 푼돈에 자신의 인격을 파는 싸구려 교육청 공무원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만 없는 것은 저도 실상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속내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명절 떡값, 휴가비 심지어 전별금까지도 은근히 요구하거나 자기 직분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겁박하려는 작태에 강력히 항의하고 반발했으면 속이나 시원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약자의 입장에서 당하기만 했으니 기가 찰 따름입니다.

그 분들은 정말 서류상으로 흠없이 깨끗한 분들이시며, 강물에 박은 말뚝처럼 지난날 구두로 한 잘될 것이라는 말을 기억치 못했고, 속절없이 사람만 믿은 저만 치밀하지 못한 사람임이 판명되어 버렸습니다. 때마다 돈 안준다고 자길 무시해서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우리 딸 이레 앞에서도 겁박하던 이는 지금 다른 부서로 갔다는군요?
그래도 저는 저런 공무원은 저러다 말겠지, 조금 특이한 사람이구나 했는데 후임자도 별 다를바없이 거짓말만 하더군요. 저한테는 한번도 찾아온 일도 없으면서 제가 학교 재임대 의사가 없다고 보고했다는 군요.
제가 그 전임자에게 그렇게 재임대 의사를 밝히고 이곳에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제 주민등록이 있고 실제 사는 데도 불구하고 이곳에 살지 않았다고 생각해 연락도 안 하고 말입니다.
아쉽게도 그 두 분들은 모두 제가 좋아하는 구례지역 출신이라는 군요.

그냥 남들처럼 그렇고 그렇게 적당히 어울려 살 걸 하는 후회가 들 때도 있습니다. 그냥 돈 몇푼 주고 잘 지냈으면 될 걸 가지고 쓸데없이 그런 요구를 받을 때마다 "너같은 놈들 돈 줄 바엔 불우이웃이나 돕지"하는 오기로 무시해 쓸데없이 소인배들에게 밉살맞은 놈으로 낙인찍힌 것도 어찌보면 참 지혜롭지 못한 처사인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고 한푼도 안준 것도 아닙니다. 첫해에 화장실도 없는 학교에 살 수가 없어 나무로 된 화장실이라도 지어야겠다며 돈 20만원이나 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때 담당자는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화장실도 못짓게 하고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돈 20만원에 똥간이라! 참 자조적인 기억으로 오랫동안 제가 씁슬해했던 뇌물입니다.
그런 뇌물을 제가 주었으니 저도 나쁜놈이지요?(ㅎㅎ)

예수님도 세상에서는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데
저는 세상에 살면서 지혜자들을 경멸한 죄값을 치르고 있다고 여겨지는군요.

지리산과
백운산은
섬진깅으로 나뉘고 다만
나루가 있어 사랑을 잇는다

저는 내가 살던 송정리 나루터를 '지섬백'이라 스스로 이름짓고 부르던 그 터에
자리잡은 바위로 내려앉아 한없이 손을 씻었습니다.
제가 몇 년동안 알았던 더러운 이들의 이름을 씻고 청정하게 살지못하고 늘 조바심냈던 여리고 못난 마음을 씻고자 했습니다.

한편으론 걸맞지 않는 터를 욕심부렸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 시절 저희 가족을 품어주고
그 동안 상처받았던 마음을 부드럽게 치유시킨 이 터를 사랑합니다.
사는 곳이 어디든 이제 삶의 여유를 알게 해준 이 산하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제껏 조용히 옆에 있던 아내가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내가 어디 가서 힘들고 우울할 때 꼭 이곳을 찾아올꺼야"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고마운 땅이여!
......................................................................

                    <지리산 작별인사 편지>
                                   2003년 8월6일 두레아빠의 메일

선생님 무더운 계절에 평안하시지요?
(중략)

...지나간 일은 그리되었지만 앞으로 되어질 일은 순탄할 것 같습니다.
여름행사가 20일 전후로 마무리 되면 짐정리하고 아이들 2학기 전학도 해야함으로
25일에는 이사할 예정입니다.

이주할 곳은 추풍령면에 있는 신안분교입니다.
제가 4년 전에 염두에 두었었던 곳이었는데 그곳보다 이곳 한수내의 학교가 먼저 결정되어
이곳에 왔는데 추후에 그곳도 가능하다고 해서 그 전에 공동체에서 같이 생활하던 친구에게 그곳을 알려주어 이미 친구가 자리잡고 있는 곳입니다.

백두대간의 국수봉 아래에 있는 곳이어서 역시 경치가 수려한 곳이며, 금강 상류 계곡도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이곳처럼 관광지로 잘 알려진 지역이 아니어서 학교를 노리는 투자자들의 외압이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추풍령(갈바람고개) 톨게이트에서 북쪽으로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어서 교통도 좋습니다. 주변에 모두 포도밭과 사과 과수원으로 되어 일손이 바쁜 곳입니다.
행정구역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신안리입니다만 지역정서는 김천이 가깝고 상주가 가까워서인지 경북말씨를 씁니다.
다만 오지처럼 대중교통으로는 연결이 안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대전, 대구는 1시간내의 거리이고 서울, 부산에서도 2시간 40분대의 거리에 있어 저희가 계획하고 있는 자연프로그램 학교를 진행하는 데에 장소적 난점은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것보다는 늘 프로그램 학교를 열려고 해도 저희 부부가 하기에는 엄두가 안 나는 일이라 그리 못해 아쉬었던 문제가 해결된 것이 무엇보다 흡족한 것 같습니다. 그곳에 있는 친구도 자기들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 우리처럼 늘 외부 손님들만 대하다가 우리들이 능동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이미 공동체에서 6년여간 함께 살면서 계절학교를 같이 진행해 왔었기에 서로를 잘 알고 이해의 폭도 크다 할 수 있지요. 함께 사는 어려운 문제를 이미 잘 알고 있고 서로가 떨어져 3년을 살았으니 그 부분에 있어 고민하고 기도하다 결정한 일이므로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친구는 '묵가'라는 사이트도 만들어 운영하는 컴퓨터에 재능이 있어 제가 부족한 부문을 보완해주어 더욱 고마운 사람인 셈이지요. 저보다는 6년 후배이지만 마음이 더 넓은 편입니다. 더욱이 술을 잘 못해 손님대접을 잘 못하는 저와 달리 건강해서 변죽도 잘 맞춥니다. 제겐 큰 짐이 해결된 셈이지요(ㅎㅎㅎ)

선생님 이제 지리산 아래는 아니지만 오다가다 들를 수 있는 고개 마루턱에 있으니 나들이 하실 때나 언제든지 들러주셔요.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두레아빠 안윤근 올림
(2003년 8월23일)

  1. No Image

    '겨울 속의 봄', 왕산 쌍재

    2004년 겨울은 유난히 길 듯하다. 올해는 윤년이다. 그것도 윤2월이 들어 있어 겨울이 길 수밖에 없다. 음력 2월은 영동할미가 바람을 몰고온다. 영동할미는 시기심이 많아 딸을 데리고 올 때는 바람을 불게 하고,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는 비를 내리게 한다....
    Date2004.02.08 By최화수 Reply0 Views1038
    Read More
  2. No Image

    2002년 2월 '두레네집'(5)

    오용민의 지리산 포털사이트에 입주해 있는 '두레네집 이야기'의 '두레네 글방'이나 '두레네 사랑방'을 들여다보면 '절제의 미덕'과 '여백의 미학'이 특징적으로 느껴진다. 두레 아빠, 엄마의 글은 시시콜콜 이런저런 말을 다 하지는 않는다. 낱말 하나도 아...
    Date2004.02.06 By최화수 Reply0 Views1204
    Read More
  3. No Image

    2002년 2월 '두레네집'(4)

    두레네집에서 아침식사를 끝낸 우리 일행은 2차선 확장 공사를 하고 있는 도로를 따라갔다. 한수내 골짜기며 주변의 모습들을 지켜보기 위해 자동차는 두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두레네집 바로 뒤편에 몇 가구의 작은 동네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도에 신촌으...
    Date2004.02.06 By최화수 Reply0 Views1343
    Read More
  4. No Image

    2002년 2월 '두레네집'(3)

    두레네집의 동쪽 경계인 한수내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왕시루봉 자락에서 흘러든 옥수가 섬진 청류로 합류하는 곳이니 아름다운 자연세계일 것으로 당연히 생각됐다. 두레네집에서 꿈꾸는 '생태학교'에 이 한수내가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었...
    Date2004.02.06 By최화수 Reply0 Views1294
    Read More
  5. No Image

    2002년 2월 '두레네집'(2)

    '지리산 자락에 붙은 섬진강변의 아름다운 학교입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운동장 옆으로는 지리산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개울이 섬진강으로 합류하고, 강변 바위에선 간간이 참게가 기어다니기도 합니다. 과거 송정분교인 이곳은 폐교된 후 지금은 생태교육장...
    Date2004.02.06 By최화수 Reply0 Views1115
    Read More
  6. No Image

    2002년 2월 '두레네집'(1)

    필자가 오용민의 지리산 포털사이트에서 '두레네집 이야기'를 접한 것은 지난해 가을이다. 밝고 천진한 웃음을 활짝 터뜨리고 있는 일가족의 칼러 사진이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다. 아빠와 엄마, 아들과 딸이 서로 끌어안고 서있는 포즈가 어떤 회화(繪畵)작품...
    Date2004.02.06 By최화수 Reply0 Views1480
    Read More
  7. No Image

    '두레네집' 지리산 떠나다

    '두레네집'이 2003년 8월25일 지리산을 떠나간다. 왕시루봉 산줄기가 흘러내려 한수내와 더불어 섬진강에 발을 담그는 곳에 자리한 두레네집,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토지초등학교 송정분교가 문을 닫은 뒤 그 자리에 '자연생태학교'의 꿈을 안고 들어섰...
    Date2004.02.06 By최화수 Reply0 Views1392
    Read More
  8. No Image

    수달은 효녀를 알아본다?

    지난 1월6일 지리산에서 새해 들어 첫 기쁜 소식이 있었다. 대성계곡 등에서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이 서식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지난해 11월21일과 12월4일 2회에 걸쳐 무인센스카메라에 의해 촬영이 됐다고 지리산 관리사무소측이 밝혔다. 지...
    Date2004.02.02 By최화수 Reply0 Views1143
    Read More
  9. No Image

    노고단이 산골 명소라니!

    나는 TV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TV 드라마가 그려내는 극중 이야기도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TV 드라마는 보지 않지만, TV 드라마로 하여 지리산의 어디가 어쩌고 하는 얘기는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지리산 소식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
    Date2004.02.02 By최화수 Reply0 Views1580
    Read More
  10. No Image

    수정궁과 류의태 약수터(3)

    산청(山淸)은 한의학의 성지(聖地)로 불린다. 1,000여종의 약초가 자생하는 지리산을 끼고 있어 천연적인 한의학 고장이란다. 그 무엇보다 산청(山陰)에선 특출한 명의들을 배출한 것이 돋보인다. 조선 명종 때 신안면에서 명의 류의태(柳義泰) 선생이 나서 ...
    Date2004.01.30 By최화수 Reply0 Views162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ext
/ 3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