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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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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의 일로 기억된다. '지리산 365일'을 국제신문에 연재하고 있을 때였다. 내원골 입구 한 농가 주인인 우성구님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너무 신선하여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진주에 살던 그는 8년 전 지리산이 좋아 별다른 생각도 없이 바람처럼 이 골짜기로 훌쩍 이사왔다고 했다. 부인과 두 자녀를 둔 그이가 무턱대고 지리산으로 찾아들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에는 전기나 전화도 들어오지 않는 첩첩산중 오지였다.

우성구님이 필자에게 들려준 말은 더욱 놀라웠다. "우리는 전혀 농사를 짓지 않아요. 여기 저기 서 있는 저 감나무가 농사를 대신 지어줍니다. 저절로 열리는 감을 따다 내다팔면 1년을 먹고도 남을 양식을 구하니까요. 그냥 놀고 지내기도 무엇하여 염소 몇 마리를 기르고 있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이는 이 골짜기로 옮겨오면서 땅 1만여평을 평당 3천원에 사들였는데, 그 땅에 옛 주인이 심어놓은 많은 감나무에서 감이 많이 열린다고 했다.

지리산은 예부터 곶감의 명산지로 유명하다. 오랜 세월 지리산 사람들에게 애창되던 민요에도 "등구 마천 큰애기들은 곶감깎기로 다 나간다"고 했다. 지리산 곶감은 시천과 마천이 유명하다. 지금도 시천(덕산)에서의 곶감 수매 때는 도로가 다 막힐 정도로 전국에서 수매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리산 골짜기는 낮과 밤의 한서 차이가 격심한 데다 맑은 물과 공기의 천혜 자연조건으로 곶감으로 깎는 감의 당도가 뛰어나고 맛도 좋은 것이다.

장당계곡은 지난날 화전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일구었던 곳이다. 그들이 모두 바깥 세상으로 옮겨갔지만, 감나무는 그 골짜기에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은 입산통제 구역으로 묶여 있지만, 늦가을철 몰래 지나가는 등산객은 졸깃졸깃 맛좋은 독특한 이곳의 감맛을 맛보고 감탄도 한다. 도회지에서 살다가 대책없이 지리산으로 낙향한 사람 가운데는 한 해 곶감만 1억원어치를 생산하여 생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된 억세게 운 좋은 경우도 있다.

공수님이 귀농한 쌍재의 경우 원래 15가구가 마을을 이루고 있던 곳이다. 여기에도 집집마다 당연히 감나무가 지붕을 가리고 있었을 것이다. 옛 농가들은 사라졌지만, 그 때의 키 큰 감나무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물론 그 모든 감나무는 공수님의 몫이다. 고산지대에서 생장한 이 감들은 곶감으로 만들면 특상급품이 된다. 그런데 공수님의 곶감농사는 어떠했는가? 감을 따는 시기를 놓쳐 한파에 모든 감이 얼고 말았다. 한 순간에 실기한 것이다.

농사에서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파종과 수확의 시기다. 감나무에서 저절로 열려 성장한 열매도 한파에는 감당이 불감당인 것이다. 가을철은 수확의 계절로 다른 작물의 수확에도 일손이 달린다. 감 수확은 바쁘지 않을 것 같아 잠시 미루어둔다는 게 한파에 얼려 망치고 말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농사는 사실 협동과 협업이 절대적이다. 일꾼이 달려 곶감용 감을 홍시가 되도록 방치한 것은 큰 실수였다. 농사도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공수님은 올해 얼마간의 고구마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고구마 한 가마니를 파종하여 한 가마니 반을 수확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알고 보니 그는 고구마 줄기를 두 마디씩 잘라 심은 것이 아니라 고구마 자체를 파종했다는 것이다. 헛농사가 따로 없다. 농사를 짓는 일은 학교 문 앞에 가본 적이 없는 문맹자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농사를 함부로 지어도 좋은 것은 아니다. 공수님에게 보다 치열한 농사공부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아주 사소한 이런 문제들은 그냥 한번의 시행착오로 지나가는 삽화에 불과하다. 두 번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면 된다. 쌍재의 드넓은 땅은 공수님 일가족의 삶과 꿈이 걸려 있는 천혜의 공간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공수님 가족은 이곳을 자신들의 파라다이스로 만드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공수님 2세로 초등학생인 상현군도 아버지를 따라 훗날 쌍재에 정착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쌍재에 쌍무지개가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공수님은 친구들에게 넉넉하게 베푼 만큼 도움도 얻고 있다. 염소막과 물레방아 등을 고향친구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주었다. 공수님에게는 고향 친구뿐만 아니라 지리산 영농에 밝은 이들과의 실리적인 교류관계도 필요하다. 어떤 특작목을 재배해야 할는지, 그 판로와 수익을 보장받는 것에 이르기까지 함께 힘을 모으는 것도 요청된다. 지리산 이웃과의 협동 생산에서 도회지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상부상조의 관계 설정도 절실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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