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이른바 '태극종주'의 한 구간인 왕등재 능선에 올라서면 북쪽편으로 지척의 거리에 서있는 왕산과 필봉산이 가슴에 안겨오는 듯하다. 반대로 왕산에 오르면 남쪽의 왕등재가 와락 달려들 것처럼 생각된다. 왕등재와 왕산은 높이가 비슷한데다 그 둘은 실제 거리 이상 가깝게 보인다. 왜냐면 두 산을 잇는 능선이 아주 잘룩하게 꺼져 있는 때문이다. 왕등재에서는 왕산과 필봉산을 건너다보고, 왕산에선 왕등재를 자연스럽게 건너본다. 하지만 두 산을 잇는 산길이 없고, 전문산꾼도 잘 다니지 않는 곳이다.
필자는 일찌기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 가운데 왕산(王山)과 왕등재(王登峙)라는 '왕(王)' 이름을 달고 있는 이 두 곳을 주목했고, 특히 아주 가까운 거리로 잇대어 있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왕산은 그 북쪽 기슭의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이라는 돌무덤(한국식 피라미드?)이 있고, 구형왕이 살았다는 옛 왕궁터인 수정궁과 류의태 약수터 등이 있다. 왕등재는 산상 습지로 귀중한 자연자원으로 보존되고 있지만, 토성과 왕궁터란 주장이 제기될 만한 여러 유적과 유물, 지명과 전설 등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왕산과 왕등재의 밀접한 연관을 찾자면 두 곳을 직선거리로 찾아보아야 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실천에 옮기려고 한 적도 없었다. 지리산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는 '철화'와 '산하' 두 산꾼이 지난해 봄 그 두 봉우리를 직선으로 답파했는데, 역시 길이 없었다고 했다. 왕산과 왕등재를 잇는 잘룩한 고갯길 능선은 지리산꾼들에게도 잊혀진 구간이자 공간임에 분명하다. 대개의 경우 왕산에서 남쪽으로 하산하려는 등산객들은 바로 동쪽 필봉산을 거쳐 향양리로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지리산 산꾼들도 눈여겨보지 않는 블랙홀과 같은 공간인 왕산과 왕등재 사이의 고개, 그러나 그곳이 햇빛 사각지대는 결코 아니다. '쌍재'라는 분명한 이름이 달려 있고, 고령토 토취장으로 오르내리는 산판도로까지 뚫려 있다. 철따라 아름다운 꽃이 피고 푸르른 녹음이 뒤덮는 울창한 숲이 있고, 놀라울 만큼 아주 수량이 풍부한 계곡을 흘러내리고 있다. 더구나 쌍재 일원의 수십만평 땅은 '오지를 꿈꾸는 부부' 손에 의해 아주 새로운 면모를 찾고 있다. 2003년 새해 아침해가 이 쌍재에서 가장 밝게 빛났으리라.
쌍재는 산청읍에서 금서면 향양리에 닿은 뒤 다시 산판도로를 따라 오를 수 있고, 구형왕릉에서도 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연결된다. 하지만 차량이 거의 다니지 않은 비포장도로 구간이 한동안 이어진다. 왕릉에선 걸어서 가더라도 한 사긴 남짓이면 쌍재에 닿는다. 쌍재에는 옛날 산골집 한 채가 있다. 이곳 일대 수만평의 땅을 일구고 있는 '공수' 석재규님 집이다. 원래 이곳에는 15가구의 농가가 살았다고 한다. 모두 대처 등지로 떠나갔는데, 몇 해 전 부산에서 살고 있던 공수님이 옛집으로 다시 귀농을 했다.
공수님은 이곳 쌍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이곳에서 다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떠나갈 때 그들도 부산으로 옮겨 도시사람이 되었다. 산중 절해고도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의 혈관에는 산의 정기가 흘렀으리라. 그는 '오지를 꿈꾸는 사람들' 사이트를 만들었고, 그는 또한 지리산의 최고 오지이자 자신의 고향인 쌍재로 옮겨온 것이다. 공수님은 상당 기간 부산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쌍재로 들어와 수십년 동안 제멋대로 자란 무성한 잡초며 잡목들과 힘든 씨름을 벌인 끝에 농장과 길과 뜨락을 찾아냈다.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는 산중 절해고도였지만 그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별과 달과 태양, 꽃과 벌과 숲이 언제나 그의 곁에 있었다. 산아랫 마을의 옛 친구들도 찾아와 그의 귀농을 축하하며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공수님은 적정 규모의 논밭을 정비하고 옛 가옥을 수리하고 새롭게 단장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부산의 부인도 불러들였다. 부인은 은행에 다니는 미모의 전문직여성으로 자녀의 학교교육을 뒷바라지 하는 등 부산을 떠나오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지리산중의 남편 뜻을 따랐다.
왕산은 원래 태왕산으로 불렸고, 왕이 살던 태왕궁(수정궁)이 자리했던 유서깊은 산이다. 이 왕산의 남쪽 자락에 자리한 쌍재는 지리산 자락이 절묘하게 360도를 둘러싸고 있다. 지리산을 울타리처럼 두른 드넓은 분지에 자리한 쌍재의 공수님 농장에는 염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아랫마을 친구들이 만들어준 물레방아도 돌고 있다. 공수님 내외는 지리산 자연을 빼닮아 마음이 넉넉하면서도 너무나 순진무구하다. 이들은 쌍재를 귀농의 왕국으로 일구어 쌍무지개가 뜨오르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2003년 1월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