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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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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신마을에서 바로 올려다보이는 고개는 명선봉 선비샘으로 곧장 오르는 길이다. 이 마을 '솟대'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마을끝까지 올라 바른쪽으로 약간 돌아 만나는 골짜기가 우남골이다. 우남골 입구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활처럼 휘어진 농로를 따라 한동안 감돌아오르면 또 하나의 골짜기가 나타난다. 그 골짜기를 따라 30분 가량 오르면 원통암에 닿는다. 요즘은 전주가 세워져 있어 찾아가기 쉽다.

원통암(圓通庵), 한 채의 당우만 자리한 작은 암자일 뿐으로, 더 정확하게는 토굴(土窟)이라고 해야 맞다. 일반 신도들을 두어 그들도 드나드는 암자가 아니라, 오직 공부하는 스님만 기거하며 수행정진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토굴을 안내하는 안내판이나 표지 따위는 아예 없다.

원통암 토굴이 복원된 사실은 필자도 이번 '지리산 통신'의 '지리산 사랑을 위하여'-두번째 답사길에 비로소 알게 됐다. 의신마을 산악인 정영훈이 89년 필자를 빈터로 남아있던 그곳에 안내한데 이어 12년만에 또 이번 답사팀을 이끌었다.
"오늘 내가 군기(軍紀)를 잡아야 쓰겄소!"
원통골로 접어들며 정영훈 대장(지리산 화개 산악구조대장)이 한마디 불쑥 내뱉었다.
(이 사람이 난데없이 군기는 무슨 군기?!)

암자에 닿자마자 정 대장이 현관문을 드르럭 열고는 "차 좀 끓여주시오!" 하고 명령하듯이 말하고는 다시 문을 드르럭 닫아버린다. 그의 무례한 짓에 필자는 깜짝 놀랐다. 아니, 방안의 스님이 더 놀랐을 것이다. 비구니스님이 수행중인 토굴에 시커먼 수염이 얼굴을 뒤덮은, 임꺽정보다 더 험상궂은 사내가 불쑥 나타나 드르럭 문을 열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더구나 맡겨놓은 것처럼 차대접까지 하란다.

밖으로 나온 스님은 등산복 차림의 일행 10명이 이곳저곳을 거침없이 기웃거리는 것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일행 중 오직 두 사람, 사찰 법도를 잘 아는 '초암'과 '마야'님이 법당에 들러 예를 갖추었다. "이 사람아, 차는 무슨 차, 그냥 내려가자!" 필자는 정 대장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차 한잔은 마셔야지요." 그는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은 물론, 기어이 우리들을 스님이 차를 끓이는 방으로 불러들였다.

"군기를 잡아야 쓰겄소!"라고 했던 정 대장이 비구니스님에게 또 무슨 황당한 말을 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정대장은 뜻밖에도 자신의 집안에서 비구니 스님이 네명이나 나왔다고 말했다.
"불교방송의 진명스님도 사촌누이요."
"아, 노래 잘 하는 진명스님!"
스님의 얼굴이 밝아졌다.
"청림스님이 계실 때는 매일 아침 운동삼아 이곳에 올랐어요."
"앞으로도 매일 아침 올라오세요."
스님이 화답했다.

"발효차로군요!"
우리 답사팀 가운데 차(茶)에 정통한 '취정'님이 향기만 맡고도 알아맞혔다.
"발효차는 정성이지요."
스님은 칠불사 통광스님이 발효차를 만드는 과정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점차 가족적인 분위기가 된다.
"나도 의신마을 출신이오."
스님은 문득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빨치산이 노래를 가르쳐주었지요."
빨치산에게 노래를 배웠다면 적어도 50대 후반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나이가 없다.

원통암 비구니스님은 10살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고 한다. 불가에 귀의하여 구도의 길을 걸어온 세월이 거의 반세기에 이르렀다. 멀고 고독한 길을 걷고 걸어온 끝에 자신이 태어난 고향마을 뒷산 토굴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는 지친 다리를 좀 쉬게 함직도 한데, 스님은 정 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결재(潔齋)에 들면 아침에 찾아와도 차 대접을 못하는데..."
스님은 곧 동안거, 무념무상의 참선에 들 모양이었다.

지리산에서 태어난 스님, 어릴 때 뛰놀던 고향 의신마을이 너무 아름답고 좋았다는 스님이다. 하지만 10세 어린 나이로 출가, 반세기 가까운 수행의 머나먼 길을 걷고 걸어 지쳤을 법도 한 발을 이끌고 돌아온 곳이 고향마을 뒷산이다. 그이는 또 참선에 든다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그것이 곧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엊그제 김장 담그느라..."
김장을 담글 때의 나의 누이처럼 스님의 손등도 발갛게 익어 있었다.
(2001년 11월25일)


  • ?
    허허바다 2004.02.24 20:55
    머나먼 여정 끝에 돌아온 고향... "고향으로 돌아온 그것이 곧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이 구절을 몇 번이고 되뇌이고 있습니다. 예.. 그 스님의 얼굴에서 그 해답을 얻어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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