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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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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0년대 후반 필자는 화개동천 일대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다시피 했다. 얼핏보면 짙은 수목에 뒤덮여 있을 뿐인 골짜기, 하지만 발을 들여놓으면 들여놓을수록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의신마을 뒤편 골짜기 깊숙이 자리잡은 원통암(圓通庵) 터였다. 마을 뒤 가파른 비탈의 높고 적막한 곳, 정면에 섬진강 너머 백운산 세 봉우리만 틔워놓고 원형의 능선으로 둘러싸인 절묘한 곳이었다.

당시 필자를 이 원통암 터로 안내했던 의신마을의 젊은 산악인 정영훈은 "여기서 보면 원통암 터와 백운산 정상이 똑같은 높이로 보인다. 이것도 명당의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원통암 터가 명당이란 사실은 뜻밖에도 이곳과 멀리 떨어진 덕산의 한 도학자가 들려주었다. "평생을 명당만 찾아다니며 공부했지만, 지리산에선 원통암 터가 최고의 명당이오. 거기서 딱 1주일만 공부해보는 것이 필생의 소원이오."

하지만 당시 그 누구도 원통암 터에 들어가지 못했다. 칠불사 주지 통광(通光) 스님이  이곳 일대의 땅을 사들여 원통사 복원공사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광스님은 사찰 복원의 허가를 얻지 못하자 87년 인부들을 동원하여 석축을 쌓고 200여평의 터를 고르고, 원통암 터로 오르는 입구 돌계단길도 만들어 놓았다. 칠불사 주지 통광스님이 원통암 복원에 남달리 강한 집착을 갖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의신마을 출신인 통광스님은 원통암 터가 저 유명한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수도하여 득도(得道)한 곳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이는 칠불암을 칠불사로 크게 일으킨 자신의 업적보다 원통암 터에 작은 당우를 지어 자신이 '공부 하는 것'을 더 간절하게 바랐던 것이다. 건축 허가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석축과 돌계단길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또한 그 누구도 이곳에 찾아들어 '공부'를 하지 못하게 엄격히 단속했다.

화개동천 깊숙이 자리한 의신마을 뒤편은 얼핏 보면 가파른 산비탈이 급하게 쏟아져내려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다. 산비탈이 어떤 여유도 거부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 가파른 산비탈은 원통사터와 같은 명당을 숨겨두기 위한 담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골짜기를 따라들면 알 수가 있다. 현재 의신마을은 원래 대가람 의신사(義神寺)가 있던 곳으로, 지난날에는 의신사 주변 골짜기 곳곳에 사암(寺庵)과 토굴이 있었다.

현재의 의신마을 주변 골짜기에서 오랜 기간 머물면서 깊은 인연을 맺은 이는 서산대사로, 그의 20년에 걸친 지리산 족적이 응축된 곳이다. 그는 나이 열다섯이던 중종 29년(1534년) 이 골짜기로 들어와 휴정(休靜)이란 법명을 얻기까지 전후 20년을 주로 이 의신마을 주변에서 살았다. 그가 머리를 깎고 처음 3년 동안 수도한 삼철굴(三鐵屈)도 현재의 의신마을 뒤편, 선비샘으로 직등하는 루트 좌우편에 자리하고 있다.

임진란 때 왜적을 무찌르는데 신화적인 업적을 남긴 서산대사, 그이가 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통암 터, 칠불사 주지 통광스님이 원통사 복원을 위해 석축을 쌓아둔 것도 벌써 14년이 흘렀다. 그 원통암 터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지리산 통신'의 '지리산 사랑을 위하여'-두번째 답사팀이 지난 18일 그 현장으로 찾아갔다. 아, 놀랍게도 그곳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당우가 복원돼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필자의 눈에 사찰 당우가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인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백운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정남향만 틔워놓고 지리산 능선이 완전한 원형(圓型)으로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원통사만은 밝고 따뜻한 햇살을 눈부시게 받고 있었다. 새로 복원한 원통암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는 뜻밖에도  비구니스님이었다. 의신마을 출신인 스님의 얼굴은 조각작품처럼 단아하고, 얘기를 할 때 목소리가 옥구슬처럼 맑고 낭랑했다.

원통암 터에 원통사를 복원한 것이 벌써 5년도 더 전의 일이란다. 칠불사 주지 통광스님 대신 그의 수제자 청림스님이 이곳에서 수행했다. 이 스님은 지리산이 좋아 산행을 계속하다 칠불사와 인연을 맺어 입산했는데, 이번에 칠불사 주지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그이의 뒤를 이어 마치 생불(生佛)과도 같은 비구니스님이 원통사에서 수행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명당에 걸맞는 명인'이라며 필자는 몇번이고 감탄했다.
(2001년 11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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