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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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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평전 변규화님의 오두막 앞에는 억새 지붕을 이고 있는 휴게실이 있다. 나무탁자와 의자들이 덤성덤성 놓여 있어 불일폭포를 찾는 탐승객들이 이곳에 앉아 음료를 들거나 식사를 한다.
종래에는 이 휴게소 벽면에 불일폭포 사진이나 변규화님과 관련한 신문기사 등이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벽면이 없다. 기둥 등에 단청작업을 하기 위해 벽면을 아주 걷어낸 것이다.

벽체가 없어 썰렁한 느낌이 앞서는 이 휴게실의 천장으로 시선을 돌리면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천장의 절반은 아무 것도 없이 비워져 있고, 나머지 절반은 한지로 도배를 해 놓았다.
천장으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어쩌다 쳐다보는 이들도 아이들이 낙서한 종이를 붙여놓은 것으로 무심하게 보고 넘기는 것이 일쑤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거기에 1,000마리의 학(鶴)이 놀고 있다.

1,000마리의 학을 그린 천정화인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학만 있는 것도 아니다. 현학, 청학, 봉황까지 있다.
학이 천년을 살면 현학이 되고, 현학이 천년을 살면 청학이 되고, 청학이 천년을 살면 봉황이 된다고 했다. 그 오묘하고 무궁무진한 학의 세계가 우주의 신비처럼 천장에 펼쳐져 있다.
그것도 물감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나무잎과 뿌리 등에서 자연의 염료를 채취하여 정성들여 그렸다.

현재 비워져 있는 천장의 나머지 반은 또다른 작품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기둥 등에 단청작업이 끝나면 이 휴게소 공간은 공예와 미술품들이 살아숨쉬는 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것은 불일평전의 또하나 볼거리이자 명물이 될 것이다.
휴게소를 예술공간으로 꾸미고 있는 주인공은 이동렬이란 젊은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전통미술에 빠져 사찰 단청 등을 하고 있다.

올해 35세의 나이로 총각인 그의 집념이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그의 손으로 빚어낸 '봉명선인(鳳鳴仙人)'의 탄생에서 엿보고도 남음이 있다.
불일휴게소에는 20여년을 사람들이 의자삼아 걸터앉는 통나무가 있었다. 귀목나무로 원래 바둑판을 만들려고 했으나 도끼날이 부러질 만큼 너무 단단하여 그냥 버려두었던 것이다.
그는 끌과 망치로 1년동안 씨름을 하여 기어이 조각품을 완성했다.

그 귀목나무는 무쇠보다 더 단단하여 어떤 연장도 당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동렬은 끌과 물푸레 망치(네개나 망쳐먹었다)로 1년 동안 내려찍기를 거듭, 드디어 봉황을 거느리고 연꽃을 가슴에 안은 실물 크기의 한 도사를 새겨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변규화님이 거처하는 봉명산방(鳳鳴山房, 소설가 정비석님이 지은 이름) 처마 밑에 세워놓았다. 그 도인의 모습이 변규화님을 빼닮은 듯도 하다.

지난 1월 이 작품이 완성되자 변규화님은 보름 동안 고심했다고 한다. 이름 명명을 하고 점안식을 해야 하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이는 보름날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불현듯 그 이름이 떠올랐다. 바로 '봉명선인(鳳鳴仙人)'이었다. '봉명산방'의 '봉명선인'이니 변규화 그 자신이기도 하다.
봉명이란 봉황이 산의 동쪽에서 운다는 뜻으로 천하의 태평, 진귀하고 뛰어남을 일컫는다.

봉명산방의 봉명선인이 탄생했으니 휴게소 천장에 왜 1,000마리의 학이 노닐고 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 남명 조식과 김일손 등은 불일폭포를 청학동으로 믿고 청학을 보러 힘든 행차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변규화님은 청학이 천년을 살아야 봉황이 된다는 그 봉황이 우는 집에서 봉명선인으로 살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
소설가 정비석은 이를 예측하고 '봉명산방'이라 명명을 했을까?

이동렬이란 젊은이가 불일평전에서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계기도 예사롭지가 않다.
변규화님이 무거운 짐을 메고 불일평전으로 오르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나타나 자기가 대신 메고 가겠다고 했다. 젊은이의 호의가 고마웠고, 그 인연으로 젊은이는 불일평전에 묵게 된 것이다.
그 젊은이는 쇳덩어리보다 더 단단한 귀목나무 통나무에 매달려 1년 동안 혼신을 다한 끝에 '봉명선인'을 탄생시켰다.

국사암의 사하촌 목압마을에 변규화님이 손수 지어놓은 토담집이 있다. 아들 변성호 가족을 위해 지었지만, 그들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비워져 있는 그 집을 이동렬 혼자 사용하며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동렬은 현재 밀양 표충사에서 단청작업중이란다.
그 일이 끝나면 다시 목압마을로 돌아와 불일평전 예술공간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그의 작업이 완성되는 날이 기다려진다.
(2001년 11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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