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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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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피아골산장 관리인 함태식은 한 여성 산악인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했다. '피아골산장 평생 이용권'(?)이 그것이다. 함태식이 피아골산장 평생 이용권을 산악인에게 제공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여성 산악인의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특혜를 베풀게 했을까? 그 여성은 머리카락 염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빨강, 노랑물을 들이지 않은, 원래의 검은색 머리 그대로인 것이 바로 그 이유의 전부였다.

함태식은 수많은 여성 내방객들을 맞이했지만, 그는 이번 여름에 모처럼 전혀 머리 염색을 하지 않은 한 여성을 만난 것이다. 그이는 참으로 큰 기쁨을 느꼈다. 지리산 자연세계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그이는 가식과 허식이 없는 자연미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대로의 머리카락, 울긋불긋한 유행의 물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정색 머리칼의 그녀가 그이에겐 이쁘게 보였을 법하다.

함태식은 오랜만에 피아골산장을 찾은 필자에게 '검은 머리 여성'을 만났을 때의 엄청난 기쁨을 장황하게 자랑했다. 그이는 '검은 머리'에 기쁨을 넘어 감동하는 것 같았다. 피아골산장의 넉넉한 자연세계, 때로는 절해고도처럼 적막한 고요속에서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이는 나무와 숲과 물과 바위와 대화하는 법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 그이가 검은 머리에 그처럼 기쁨과 감동을 느끼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렇다. 자연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자연을 닮은 사람을 갈구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피아골산장 평생 이용권'이 웅변해주는 셈이었다. 산과 들판에 있는 나무와 풀과 물과 돌과 바람만이 자연이 아니다. 우리들 사람에게도 '자연'이 있다. 자연미의 얼굴이 있고, 검은 머리카락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자연의 섭리를 좇고 따르는 한 그루의 나무와 같은 자연인도 있을 것이다.

아무런 꾸밈이 없는 순수 그대로의 '지리산 자연인'이라면 쌍계사 입구 석문광장의 '백운장' 안주인을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 화장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고, 맵시있는 옷이라고는 구경도 못한 듯한, 언제나 소탈한 모습이 지리산의 한 그루 나무와 같다. 백운장은 건물은 좀 허름하지만 뜨락은 넓고 넉넉한 자연세계로 마치 '작은 지리산'을 이루고 있다. 거기다 매일 아침 국악 가락이 백운장의 뜨락에 넘쳐 흐른다.

'낮에는 차 한잔 / 밤에는 잠 한숨 / 푸른 산과 흰구름 / 함께 무생사(無生死)를 말하세' 지리산 화개동천을 찾아 머리를 깎았고, 이 골짜기에서 공부하여 득도했던 서산대사가 화개차를 마시며 지은 시의 일부이다. 백운장 뜨락 한편에 자리한 별당의 차실에서 구월순 부인으로부터 차 대접을 받으며 잠시 대화를 나누면 그녀야말로 서산대사의 시 그대로인 듯하다. 푸른 산, 흰구름같은 자연인이 바로 그녀이다.

구월순 부인은 백운장을 내버려둔 채 지리산속으로 곧잘 찾아든다. 그녀의 지리산행 관록이 별당 차실을 가득 메운 난초(蘭草)들이 대변해준다. 첩첩산중 여기저기 숨어있던 수많은 야생 난초만이 아니라, 깊은 계곡의 습기마저 함께 옮겨다 놓았다. 짚과 나무와 흙으로만 지은 별당 차실은 지리산의 깊은 산중의 정취가 그득하다. 그 모든 것들은 그녀가 이 별당 차실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였는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지난해 구월순 부인은 차실 속의 모든 난들을 죄다 원래의 산속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자연을 집안으로 옮겨왔던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그보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느날 누군가가 난분 하나를 훔쳐간 것이다. 그녀는 백운장을 찾는 손님에게 지리산의 자연을 가까이서 느끼도록 난실겸 차실을 만들었었다. 그런데 치사한 인간의 흑심을 보게 된 현실에 너무나 실망, 난을 원래의 제자리로 돌려보낸 것이다.

피아골산장의 함태식과 백운장의 구월순 부인, 그들은 똑같이 오랜 기간 지리산 자연세계에 동화되어 온 으뜸 자연인들이다. 함태식은 검정 머리카락 그대로의 자연미 여성에게 상(賞)을 내렸고, 구월순 부인은 자연세계에서도 흑심을 발동하는 '비자연인'(?)에게 벌(罰)을 내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필자는 지금까지도 상을 내린 이의 흐뭇한 얼굴과, 벌을 내린 이의 참담한 표정, 그 대조적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2001년 11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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