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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138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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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건님의 집 앞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푸른 숲이다. 동쪽의 고운동, 서쪽의 청학동, 남쪽의 악양벌, 북쪽의 거림골을 지리산 지맥들이 가로막고 있다. 그 능선의 푸른 숲들이 해거름의 서늘한 바람에 실려 마치 눈앞으로 쏟아져내리는 듯한 느낌이다. 지리산 자락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기보다, 푸른 숲을 이불처럼 덮어쓰고 있는 셈이었다. 그이가 이곳에 둥지를 튼 이유를 알 듯했다. 지리산을 그토록 줄기차게 찾아다닌 그이가 이제는 아주 그 지리산 자락에 포근하게 안긴 것이다.

하루의 해가 저물 무렵 우리들은 성락건님과 작별하고 귀로에 올랐다. 자동차가 묵계리를 벗어나자 문득 그이가 우리 일행에게 일일이 차를 대접하며 건네주던 쪽지가 생각났다. 필자는 주머니에서 황급히 그 쪽지를 꺼내 보았다. [지리산 오두막---나무 달마 살래] 라는 제목 글자가 필자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A4 용지에 그이가 손수 작성한 그 쪽지에는 자신이 지리산 오두막에서의 "나무 닮아 살래" 의지를 시처럼 적어놓았다. 한줄 한줄 읽어내려가던 필자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청학동 비껴 고운동 오름길에 / 진흙 오두막을 바람하고 지었네요. / 안이 궁금한지 산새도 뻐꾹뻐꾹 기웃하고 / 소쩍소쩍 훔쳐보는 전시공간을 두었네요. / 나무 다듬고 천 물들이고 종이에 먹칠하고 글 흘려쓰고 / 그릇 손으로 빚고 풀꽃 옮겨 담고 조선종이 찢어 붙이고 / 뒹굴던 몽돌 주워 보듬고 사는 멋진 고집쟁이가 수두룩이네요. / 그들을 지리산 속 여기 오두막으로 불러 / 꾸밈없는 작품을 달마다 바꾸어 가며 선 보이려 하네요. / 지나치는 길이라면 그대도 안을 빼꼼이 엿보고 가세요.'

이 글의 끝에 '나무 달마 살래 성락건'이라고 써놓았다. 그러니까 그의 지리산 오두막 이름이 '나무 달마 살래(나무 닮아 살래)'인 것이다. 그가 자신의 진흙 오두막을 왜 바람하고 지었으며, 그 집안에 무엇이 있는지 산새도 궁금하여 기웃거리게 되는지 알 만하다. 도회지에서 지리산으로 옮겨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음식점 겸 민박집을 차리거나, 자신만의 아방궁을 짓는다. 하지만 성락건님은 음식점도 아방궁도 아닌, '나무 달마 살래' 오두막을 지었다. '나무 달마 살래' 오두막은 어떤 집인가?

성락건님은 쪽지 아래쪽에 ['나무 달마 살래'는 이런 곳입니다] 하고 다음과 같이 썼다.
1, 지리산 속에 황토로 지은 20평 오두막입니다.
2, 15평은 그대의 전시실로 비워두었습니다.
3, 대여료는 무료입니다.
4, 전시할 동안 그대는 우리집 손님이자 주인입니다.
5, 전시 기간은 자유지만 7일에서 21일 사이면 적당하겠습니다.
6, 잠자리는 무료이며 먹거리는 준비해와 함께면 좋겠습니다.
7, 올 9월부터 전시실 문을 열려 합니다.
8, 전시하고픈 사람의 자격 제한은 없지만, 아마추어로 창작의 재미에 빠진 분이면 더욱입니다.
9, 위치는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998-11 전나무마을입니다.(중략)
10, 올 전시계획은 9월 다탁자 전시, 10월 한지공예 전시, 11월 지팡이와 표주박전시, 12월 서양화 전시.
11, 전시를 원하시면 소식 주세요.
055-883-8618, 016-777-8679, sanegaja@hanmir.com

우리가 탄 자동차가 횡천으로 빠져나올 때 사위는 이미 어둠으로 뒤덮였다. 첩첩산중의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필자의 눈에는 차창 밖으로 한 그루의 청정한 지리산 나무가 바라보였다. '나무 달마 살래'는 성락건님의 지리산 오두막 이름이지만, 그이는 벌써 지리산의 한 그루 큰 나무로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술도 고기도 먹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는 그이의 영육은 이미 순수 식물성(?)이 아니겠는가. 그이는 '손으로 그릇 빚고, 풀꽃 옮겨 담고, 몽돌 보듬고 산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지리산을 찾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지리산 어디인들 못갈 곳이 없다. 지리산이 좋아 거푸 지리산을 오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리산을 찾는다고 다 같은 생각을 하며, 다 같은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다. 아니, 지리산을 찾을  때 무엇 한 가지라도 깨우치고자 마음을 가다듬어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의문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필자는 진정한 지리산 사람을 만난 것이다. 지리산 오두막 '나무 달마 살래'를 일으킨 한 그루의 청정한 나무 성락건님을!

어둠을 가르며 달리는 자동차가 점차 속력을 높였다. 그 속력에 비례하여 필자는 입속에서 '나무 달마 살래'를 되뇌었다. 그리고는 문득 "나무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 탐욕하지 않는다, 변명하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나무의 실체에 대한 생각이 마구 떠올랐다. 아아, 필자는 '나무 달마 살래' 오두막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성락건님이 왜 "나무 닮아 살래"라고 했는지 절절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와 너무나 동떨어진 스스로를 한없이 부끄러워했다.
(2001년 8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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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04.02.15 20:43
    집착을 버리고 그리 살았으면 하는 마음 오래되었건만 왜 이리 다음에 다음에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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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2004.02.16 12:30
    나를 닮은 바위를 찾으라는 성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나무와 바위처럼 한 자리를 지키며 한 줌 재와 흙이 될 때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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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04.02.16 13:11
    희망님 남도기행의 성락건님의 다오실 사진을 보며 상상하면서 읽었습니다 ^^* "산에 온 그대가 신선이 안된 이유는 술 마신 이유 말고 절대 아무 것도 없다" [지리산 허풍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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