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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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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산동 '지리산 온천랜드'의 신관 호텔 정문에서 동남쪽으로 쳐다보면 유난스레 큰 간판이 눈길을 끈다. '꿈의 궁전'이란 모텔이다. '꿈의 궁전'이란 모텔 간판과 별도로 빨간 바탕에 '황제처럼 섬기겠습니다'라고 쓴 또 하나의 부대간판(?)까지 걸려 있다. 그런데 러브 모텔의 대명사 격인 '꿈의 궁전' 그 바로 남쪽에 '구례 청소년수련관'의 큼지막한 건물이 서 있다. '꿈의 궁전'과 '청소년수련관'이 어울리지 않아 그 사이를 끊어놓기라도 하려는 듯이 두 건물 가운데로 동서로 뻗은 2차선 포장도로가 말끔하게 뚫려 있다.

그 도로의 입구 왼쪽편이 '꿈의 궁전' 모텔이고, 그 모텔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돌담장이 길게 이어져 있다. 길이가 100미터가 훨씬 넘는 돌담은 이곳 '지리산 온천' 개발 훨씬 이전인 옛날의 자연부락 때 쌓았던 것이다. 근년에 조성된 온천지구의 시멘트 건물들과는 아주 판이한 정취가 거무티티한 세월의 덕지를 안고 있는 그 돌담에서 느껴진다. 돌담 안으로 키 큰 산수유와 감나무 들이 서 있고, 낡은 기와의 지붕이 한가롭게 보인다. 그 담장 동쪽 끝은 대나무숲이고, 다시 건너편 골목 쪽으로 같은 돌담이 이어진다.

대나무숲 앞에 지붕이 푹 꺼져 내려앉은 기와집 한 채가 있다. 700여평의 드넓은 뜨락에 견준다면 이상할 정도로 수더분한 기와집이다. 집 안에는 아주 순한 포인트 개 한 마리가 무료함을 달래고 있고, 들리는 것은 새소리와 바람소리 뿐이다. '산수유' 정차선님이 1997년 친구가 사둔 채 빈집으로 있던 이 집에 머물게 됐다. 그 때나 지금이나 긴 돌담장 안은 달라진 모습이란 없다. 하지만 그 사이에 '산수유'님이 일편단심으로 '情다믄 게르마늄 된장'을 만들고, 친지의 도움도 받아 이 집을 사들였다.

이 집은 지리산 온천랜드 정문에선 200미터 거리에 불과하고 온천 상가 건물들과는 100미터 거리도 떨어져 있지 않다. 모텔과 청소년수련관과는 앞 뒷집이거나 옆집이다. 구례 산동의 지리산 온천지구가 휴양촌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고, 그 한가운데와 다를 바 없는 곳에 위치한 그의 집은 누가 보아도 상업시설물이 들어설 곳이다. 모텔도 좋고, 노래방 등의 오락이나 환락시설이 들어서도 좋을 곳이다. 더구나 그는 현재의 부지 700여평에 앞집 수백평도 사들일 계획이다. 그렇다면 새 건물이라도 세울 것인가?

"천만에요. 그냥 지리산이 좋아 찾아오는 좋은 분들이 마음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나의 꿈이지요." '산수유' 정차선님은 자신의 집을 누가 찾아오든 손님의 마음대로 쓰도록 맡겨놓고 자신은 된장공장 숙소로 옮겨가서 잠잔다. 앞으로 앞집을 사들이고 여유가 생기는대로 누군가 찾아오면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황토방이나 원두막 등을 짓겠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는 '情다믄 게르마늄 된장' 하나에만 혼과 열성을 심을 뿐, 다른 것에는 눈과 마음을 조금도 팔지 않는다.

"아침에 새소리에 눈을 뜨고 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연무가 스쳐가고, 그리고 댓잎을 흔들고 가는 바람소리가 좋을 뿐이요. 밤에는 별빛을 보고요! 아, 여기보다 지대가 높은 된장공장 자리가 별빛이 더 좋지요. 그래서 밤에는 공장에 가서 지낼 때가 더 많아요." 혼자 사는 남자의 독특한 자연 사랑법이다. 그는 문명사회의 물질과 환락은 누릴대로 누린 때문에 이제는 추호의 미련도 없다고 했다. 일하다 땀을 식히며 지리산 자락을 둘러보면 눈과 마음이 맑아진다는 것이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은 이유다.

"이번 주말에 우리 답사 팀이 좀 신세져야 하겠는데!" 필자가 전화를 내자 그는 "환영합니다. 언제든 오십쇼" 했다. "혹시 인원이 넘치면 여관을 이용할께." 그러자 그는 "무시기 말씀이요! 포개서 자더라도 다 잘 수 있으니 여관 생각일랑 말고 저희 집에서 주무세요" 한다.
그는 우리 답사팀이 밤새도록 모닥불을 피울 나무를 준비해 놓았다. 밥을 지으려고 하자 "우리 쌀로 하세요. 내가 농사지은 청정쌀입니다" 했다. 그는 쌀 뿐만아니라 주방 안방 건넛방, 그리고 수도 가스 전기며 집안의 모든 것을 우리 답사팀에 내주었다.

'산수유' 정차선님의 자연주의와 답사 팀의 지리산 사랑이 그의 집 뜨락 모닥불과 함께 활활 피어올랐다. '전라도 솔메거사'님은 영광 굴비와 선운산 복분자술을 한 아름씩 안고 와선 특유의 재담으로 좌중을 이끌었다. 정말 뜨겁고 넉넉하고 아름다운 지리산의 밤이다. 먼저 잠자리에 든 이들도 있었지만, 모닥불 정담은 새벽 4시를 넘기도록 계속 이어졌다. "얼마나 좋습니까. 먼 길 마다않고 좋은 분들이 찾아와서 즐겁게 얘기 나누는 이 밤이 얼마나 아름답나요!" '된장 사나이'도 아름다운 밤에 한껏 젖어들었다.
(2002년 4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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