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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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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군 산동 지리산온천 관광지구에선 매년 3월 산수유꽃축제를 벌인다. 지난해 이 축제가 열리는 날, 필자는 그곳 '산수유' 정차선님 댁을 처음 찾게 됐다. 지리산 사진작가 임소혁님이 만나 무슨 의논을 좀 하자고 해서였다. 만나는 장소가 그 사람의 집이었던 것은 때마침 그곳에서 천리안 '지리산사랑동호회'의 띠모임이 열려 그 모임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산수유꽃 축제를 구경하느라 어느 사이 해가 저물었다. 사위가 어두워진 뒤 긴 돌담장 안의 드넓은 뜨락이 인상적인 그의 집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었다.

뜨락 한편의 풀밭에 '산중속인'님 일가족이 텐트를 쳐놓고 고기를 굽고 있었다. 그 직전 왕시루봉 임소혁님의 에이텐트에서 만났던 그와 인사를 나누는데, 집주인이란 사람이 필자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화수 형님, 나를 모르겠능교?" "...?" 알고보니 그는 부산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학번으로 따지니 필자보다 훨씬 후배였다. 부산 사나이가 지구의 건너편은 아니지만, 지리산 건너편 끝인 구례 산동까지 와서 살고 있는 것이 좀은 의외였다. 그는 산청도 하동도 아니고 왜 이 먼 곳에 와서 살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뭘 하고 사는데?" "된장 만들고 있습니더." 소탈한 성격에 수수한 인상의 그는 뜻밖에도 된장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생긴 모습이나 말하는 투도 정말 된장을 닮았다고 여겨졌다. "부산에선 건설업을 했어요. IMF 체제가 닥칠 때 건섭업계가 죽을 쑤었지요. 그 때 낭패를 보고 손을 탈탈 털고 이곳으로 왔다는 군요." 필자보다 먼저 그를 만나 누구보다 친근한 사이로 호형호제하는 한 친구의 설명이었다. 집 짓고 빌딩 건설하던 건설업자가 지리산 귀퉁이에서 된장독을 안고 씨름을 한다?!

정차선님은 산수유마을로 옮겨와 살면서 필명도 '산수유'로 정했다. "어릴 때부터 걱정이란 모르고 살았지요. 찔락(?)거리며 살다보니 세월 가는 줄도 몰랐어요." '산수유'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혹독한 세파 따위는 몰랐다고 했다. 경제성장 시절 그가 하던 건설업도 시쳇말로 잘 나갔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IMF가 들이닥치던 97년 모든 것을 털어먹고 빈털터리가 되어 지리산으로 찾아들었다. 건설업을 할 때 알고 지낸 한 선배가 이곳에 사둔 빈집에 그냥 살아도 좋다고 하여 머물게 됐다고 한다.

그는 구례 산동지방이 산수유 못지않게 콩이 특산물이란 것에 착상, 된장 담그기 일을 시작했다. 또한 이곳 지리산온천이 게르마늄 광천수인 점을 활용, 구례 콩과 게르마늄 광천수로 '게르마늄 된장'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르마늄 된장은 된장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고, 노화와 성인병 예방 등 그 효능이 탁월하다고 한다. 현재 연간 20톤을 생산하지만 곧 생산량을 100톤으로 늘리기 위해 뒷마을에 공장을 확장이전했다. 냄새가 나지 않은 장점을 살려 일본으로 대향 수출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는 때문이다.

"된장을 만드는 특별한 비법은?" "아무 비법도 없는 것이 비법이지요." 그는 된장을 담그는데 어떠한 트릭도 결코 쓰지 않는다고 했다." 구례 산동골 콩과 게르마늄 광천수, 그리고 지리산의 정기 밖에는 어떤 첨가물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지리산의 새소리, 물소리, 댓닢 우는 소리...밤하늘을 장식하는 별빛을 담고 있지요." 그는 지리산 자연의 정(情)을 된장독에 담아 빚어낸다고 하여 "情다믄 게르마늄된장'이란 상품명을 쓰고 있다. 게르마늄 된장은 물론, 콩잎과 무우장아찌, 게르마늄 간장까지 생산한다.

'情다믄 게르마늄 된장'은 이제 산동의 명물이 되어 산수유꽃 축제 때에도 각광을 받는 토산품의 하나가 됐다. '찔락거리다가' 적수공권이 된 '산수유' 정차선님은 지리산의 자연 품성 그대로인 된장으로 다시 일어섰다. 그는 친구의 집인 대지 700여평의 집을 사들였고, 공장의 이전확장 공사도 마무리했다. 새로 옮긴 공장은 된장독에 별빛이 더욱 초롱초롱하게 쏟아지는 곳에 자리한다. 그는 또 이곳의 땅도 사들여 무공해 쌀농사도 짓고 있다. 가족도 없이 혼자 낯선 고장에 들어와 지리산의 기적을 이룩한 것이다.

그러나 '情다믄 게르마늄 된장'을 제대로 알려면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산수유' 정차선이란 사나이가 사업에 실패하고 지리산에 들어와 인생관과 사고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는 새소리, 연무(煙霧), 별빛 이 세가지를 지켜보는 것에서 삶의 행복 그 절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의 뜨락이 넓은 집도 그 자신이 아닌, 지리산이 좋아 찾는 이들에게 휴식의 자리로 제공하려고 한다. 된장처럼 순수하고 정이 넘치는 사나이가 된장을 만든다. 지리산의 또 한 사람 '산수유' 정차선님의 면모가 거기 있다.  
(2002년 4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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