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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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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평전에서 변규화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노라니 문득 그의 얼굴에 피아골 함태식님 얼굴이 오버랩됐다. 필자는 묘하게도 이 두 산사람의 어느 한 분을 만나면 다른 한 분이 함께 생각되고는 했다. 두 산악인은 다른 점이 있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 우선 두 분 모두 2세 아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대물림하려는 것부터 공통점이다. 변규화님 2세는 변성호, 함태식님 2세는 함천주이다. 또한 함태식, 변규화님은 산사람의 상징(?)인 털보인 점도 똑같다.

털보를 떠올리니까 불현듯 전국의 털보들이 피아골에 총집결했던 일이 생각났다. 10년 전인 1992년 9월20일이었다. 피아골 입구 직전마을의 마지막 집인 구암산장의 넓은 뜨락이었다. 함태식과 변규화님은 물론이요, 산사진작가 김근원, 설악산 권금성에서 달려온 유창서 등 전국의 유명산악인과 산장지기들이 대거 모였으니 마치 수염 경연장을 방불캐 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모였을까? 함태식의 막내아들 천주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함태식님이 72년 노고단산장에 정착했을 때 천주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였다. 천주는 방학이 되면 노고단에 올라 아버지와 함께 즐겁고 아름다운 산상생활을 체질적으로 익혔다. 변성호가 서울의 어머니와 함께 살았듯이, 함천주 역시 인천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천주는 학교를 마치고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하지만 방학 때마다 노고단에서 뛰놀았던 때문인지, 산을 떠난 도회지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다.

천주는 산사람이 되기로 작심을 하고 노고단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88년 새 노고산장 준공과 함께 함태식 부자는 피아골로 밀려내려왔다. 함태식님은 91년 썰렁한 피아골산장을 아들 천주에게 맡겨놓고 왕시루봉 외국인수양촌 관리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주 저 녀석은 어릴 때부터 산에서 살 운명을 타고 났고, 교실보다 산을 좋아하여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것으로 확신했지. 그런데 장가를 들어 가정을 가져야 산을 지켜도 제대로 지킬 것인데..."

피아골산장에 홀로 남은 32세 노총각 함천주, 그에게도 천생배필이 있었다. 함태식님이 좋아 노고단시절부터 찾아오던 부산의 여성산악인 오문순이 주인공이다. 함태식님이 피아골로 옮기자 그녀는 천왕봉을 거쳐 한 달음에 피아골로 찾아오고는 했다. 아버지가 아들 천주에게 한 살 아래인 그녀를 남자답게 접근해보라고 은근히 부추기기도 했다. 두 산남산녀(山男山女)는 선택의 여지가 없듯이 함태식님의 뜻대로 백년가약 혼례를 올리게 됐다.

전국의 산악인 300여명의 축복 속에 야외 뜨락에서 치른 혼례식의 주례는 광주의 '거시기산악회' 회장 겸 전국 인권변호사회 회장 이돈명 변호사(전 조선대총장)였다. 등산복 차림의 그이의 주례사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대목이 있다. "신랑 신부는 지리산 산상결혼식의 의미를 잊어선 안될 것이오. 그대들은 지리산 자연의 섭리대로 이 세상을 맑게 가꾸고, 밝게 지키는 등불이 되기를 바라오." 함태식의 2세답게 지리산을 잘 지켜달라는 뜻이었다.

오문순이 피아골의 새댁이 된 것도 하늘로부터 받은 운명적인 일이나 같았다. 그녀는 도회지에서 성장했지만, 번잡한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틈만 나면 배낭을 둘러메고 지리산을 찾았다. "그냥 산이 좋아요. 산에 안기면 항상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느낌이 앞서 마음이 편안해져요. 오히려 산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면 그게 더 편하지 못했거던요. 아마 아주 산 속에서 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타고난 산녀(山女)였다.

변성호, 김덕선 부부가 불일평전에서 남매를 낳았듯이 함천주, 오문순 부부는 피아골산장에서 남매를 낳았다. 산상의 이 두 쌍은 산사람 2세답게 아버지를 대물림하여 지리산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었다. 하지만 변성호 부부가 서울로 가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듯이, 함천주 부부도 인천으로 옮겨가서 건강지압원을 운영한다. 불일평전 오두막을 변규화님 혼자 썰렁하게 지키고 있듯이, 피아골산장도 함태식님 혼자서 썰렁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필자가 모처럼 피아골산장을 찾았을 때 천주의 부인 오문순이 자녀들과 함께 산장에 내려와 있었다. 오문순은 직전마을에서 올라온 것이 아니라 어린 딸과 함께 대원사에서 천왕봉을 거쳐 피아골로 왔다고 했다. '지리산 종주산행 챔피언' 이광전님 부부가 그들과 동행했었다. "꼬마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어떻게나 잘 걷는지!"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나보다고 했다. 그렇다. 함천주, 오문순 부부도 언젠가는 다시 피아골로 돌아오지 않을까!
(2001년 12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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