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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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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입구에 큰 자연 암석이 일주문을 연상시키듯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서있는데, 왼쪽 바위에 '雙磎'(쌍계), 바른쪽 바위에 '石門'(석문)이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다. 쌍계사 대웅전 앞의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의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고운 최치원의 솜씨다. 이 석문 앞의 작은 광장을 이곳 사람들은 '석문광장'이라고 부른다. 광장 둘레에 음식점과 여관집, 기념품 가게 등이 자리한다.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필자는 이 석문광장을 사흘이 멀다하고 들락거리고는 했다. 화개장터에서 그냥 의신마을이나 벽소령으로 바로 가야 할 때도 일부러 쌍계사 앞 화개천에 걸린 좁은 다리를 건너 이 석문광장을 다녀가고는 했다. 이곳 한 음식점의 산채비빔밥 맛이 탄복할 만큼 좋았다. 인정 많은 주인아주머니는 '행동식 도시락'이라도 부탁할라치면 밥 따로, 산채 따로 식으로 푸짐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필자가 석문광장을 자주 찾았던 진짜 이유는 산채비빔밥에 있지는 않았다. 이 음식점에 너무너무 이쁘고 착한 한 소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소녀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처음 만났는데, 부지런하고 영리하게 식당일을 돕고는 했다. 얼굴도 정말 이쁜 이 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음식점 내부는 물론, 석문광장의 빗질을 했다. 학교를 마치면 식당일을 도왔는데, 잠시 틈이 날 때는 책을 읽고는 하였다.

그 소녀는 중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똑같이 부지런하게 일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한창 투정이나 부릴 나이에 예절바르고 부지런하게 일하니까 더욱 이쁘게 보이고 대견하게 생각됐다. 석문광장을 찾아 차 한잔을 시켜놓고 그 아이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저 즐겁고 행복했다. 이쁘고 착한 소녀가 부지런하게 일하고 또 공부하는 모습, 너무나 예절 바른 언행, 정녕 흐뭇한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이쁜 소녀도 그렇지만, 그 아이 부모의 자식 사랑도 각별했다. 어머니는 식당일을, 아버지는 여관일을 보았다. 아버지는 포항에서 회사원으로 일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석문광장에서 여관과 식당을 사들여 성업을 이루고 있었으니 지리산으로 옮겨오기를 잘한 셈이었다. 이들 부부는 오직 한가지 딸아이가 이쁘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이 희망이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그 소녀와 부모의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이었다. 늦게, 어렵게 자식을 낳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소녀의 모습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부모를 닮은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역시 알고보니 그 소녀는 입양한 아이였다. 입양인들 어떠랴.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깊다고 하지 않는가. 입양한 아이를 자신이 낳은 것 이상으로 각별한 사랑으로 키우는 그들 부부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그 소녀도 이제는 으젓한 처녀로 성장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해 필자는 오랜만에 석문광장의 그 음식점을 찾았다. "딸이 대학생이겠네요. 어디 서울에 유학이라도 갔나요?" "예, 유학갔어요." 그렇게 대꾸하는 주인아주머니의 표정이 쓸쓸했다. 건강을 염려했던 부군이 저 세상으로 먼저 간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이의 아픔은 남편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그간의 사정을 듣게 됐다. 애지중지 이쁘게 키운 그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남자 친구를 따라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그 어머니는 집을 떠나려는 딸아이를 잡고 눈물로 호소했다고 한다. "가더라도 대학을 졸업하고 따나가거라!" 또한 "결혼하면 어차피 떠날 것인데, 내가 한 살림 차려줄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애걸복걸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떠났다.

지난 달 우리 답사팀 일행은 석문광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날 밤에도, 그 이튿날 낮에도 필자는 식당의 그 아주머니에게 갈 수 없었다. 필자의 얼굴만 보아도 그이는 또 집 떠난 딸 생각을 떠올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혼자 남은 이 어머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불가에 의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찌 그 딸아이를 잊을 수가 있겠는가. 언젠가 딸이 다시 돌아올 것으로 믿고 있으리라.  
(2001년 12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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