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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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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18일 일요일 아침, 필자는 '지리산 통신'의 답사팀과 함께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로 오르고 있었다. 최치원이 청학과 노닐었다는 환학대를 눈 앞에 둔 곳에서 미모의 젊은 여성이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한다. 누구일까 하고 필자는 잠시 당황했다. 그녀는 얼굴 가득 웃음을 떠올리며 뭐라고 인삿말을 계속했다. 그녀 뒤로 이쁜 남매와 멋장이 신사가 나타나며 또 인사를 한다.

"아니, 이게 누구야?" 필자는 그제야 상대를 알아보았다. 불일평전 변규화님의 2세 변성호 부부와 3세인 손자와 손녀였다. 변성호의 부인 김덕선은 불일평전에 살 때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아주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이다. 사람은 역시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가보다! 변성호도 '전형적인 서울사람'으로 바뀌었다. 두 꼬마 남매 또한 이쁘고 건강하게 자랐다. 불일평전 2세 가족의 밝은 얼굴에 행복감이 넘쳐난다.

"너무나 오고 싶어 견딜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어젯밤에 내려왔다가 돌아가는 길예요." "아침 시각인데, 벌써?" "길이 막힐까봐서요. 정말 너무 오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어요." 변성호는 "지리산에 오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는 말을 거푸 했다. 그들은 토요일 근무를 끝내고 천리 먼 길을 달려 늦고 캄캄한 밤에 불일평전의 오두막에 도착했다. 그리고 날이 밝기가 무섭게 다시 서둘러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들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한동안 보고 서있으려니 문득 목압마을의 토담집이 생각났다. 국사암 사하촌인 목압마을에는 불일평전 변규화님이 오직 혼자의 힘으로 정성을 다해 지은 아담한 토담집이 있다. 전통 방식 그대로 흙을 한층한층 쌓아올려 튼튼하게 지었다. 불일평전 별채에 사는 아들 내외를 위해 지은 집이다. 손녀가 쌍계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자 학교와 가까운 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변성호 내외가 목압마을로 옮겨오던 날, 필자는 그들을 축하하기 위해 토담집을 찾았다. 일가친지들에 둘러싸여 무척 기뻐하는 그들이었다. "최선생님, 이제는 여관에 주무시지 말고 저희집에 오세요." 변성호의 부인 김덕선은 언제나 맑고 밝은 성품이다. 불일평전 오두막에서 목압마을 토담집으로 옮겨왔지만, 인정이 넘쳐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의 그 토담집은 얼마 가지않아 썰렁한 빈집이 됐다.

"서울로 갔어요. 박범훈교수가 데리고 갔지요. 며늘아이는 기숙사 사감으로, 아들은 같은 학교 서무실에 근무하게 됐어요. 꼬마들도 엄마, 아빠를 따라 가고..." 불일평전 오두막에 혼자 남은 변규화님은 의외로 아주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까지 서울로 떠나갔으면 쓸쓸할 법도 할 텐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 역시 자신보다 아들이 잘 되는 것을 더 기뻐하는 평범한 아버지였던 것이다.

변규화님은 어쩌면 불일평전 오두막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팔자를 타고 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25년 쯤 전 그이가 이곳에 정착한 이후에도 그의 아름다운 부인과 하나뿐인 아들 변성호는 서울에 살았다. 86년 서울에 살던 부인이 숨지자 청년으로 성장한 아들 변성호가 불일평전 오두막으로 왔다. 변성호는 불일평전 야영장을 찾은 광주의 규수 김덕선을 만나 '러브 스토리'를 엮어낸 끝에 89년 혼례식을 올렸다.

변성호와 김덕선의 혼례를 앞두고 변규화는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 그것은 '불일평전 2세'로 불일평전에서 삶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 원앙은 당연히 불일평전 오두막 별채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한해, 두해 해가 바뀌면서 불일평전 3세 남매도 태어났다. 변성호 부부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불일평전 파수꾼'이 되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직장생활을 하느라 서울에서 산다.

변규화님은 아들의 결혼 조건으로 '불일평전 삶'을 내걸었다. 하지만 그이는 아들 가족이 결혼식 주례를 맡았을 만큼 각별한 사이인 박범훈 교수 도움으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된 것을 무척 기뻐했다. 그동안 간간이 불일평전 오두막을 찾으면 그이는 손자손녀가 보고 싶어 서울 다녀온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들려주고는 했었다. 자신은 아무리 외로운들 어떠랴, 자식이 잘 되기만 한다면야 하는 식이었다.

환학대를 지나 불일평전으로 오르는 동안 필자는 변규화님이 또 손주 자랑할 것이 눈에 선했다. 그러다 손님이 감자전이라도 달라면 부엌으로 가서 전을 굽을 것이다. 지리산중 불일평전 오두막, 이곳에도 '아버지와 아들의 그림'은 속세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못 견디게 오고 싶었다"고 거푸 말하던 변성호의 말이 필자의 귀에 맴돌았다. 그렇다. 그대여, 언젠가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오리라!  
(2001년 11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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