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태식님이 노고단을 지킬 때 "조용히, 그리고 깨끗이!"라고 외쳤던 데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 떠들지 말라고 당부한 것이 분명하다. 지난 70년, 80년대에는 등산객들이 야영과 취사를 주로 하며 환경훼손은 물론, 엄청난 소음 공해를 일으켰다. 지리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젊은이들은 통기타에 커다란 카세트테이프 라디오를 함께 메고 왔었다. 통기타와 카세트의 시대였다. "산에 오른 놈들이 바람소리 풀벌레소리를 들을 것이지, 요란한 기계음이나 쏟아내고 있다니!" 기가 막힌다는 것이 그이의 탄식이었다.
우리나라에 일반인의 산행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그것이 80년대 들어 급속히 확산되었고, 지금은 인터넷의 대중화로 기존 산악회 못지않게 인터넷동호회들도 활발한 산행활동을 펴고 있다. 산악레저 붐이 급속히 몰아닥친 한편으로 우리의 산악문화는 제대로 정립이 되지 않은 듯하다. 정통산악인이나 순수산악인들이 나름대로 산악운동의 체계화에 이바지하고는 있지만, 일부 산꾼들은 산을 '해방공간'으로 여기거나, 산행을 '자유의 구가'와 동의어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산상의 쉼터에서 우리는 익히 경험한다. 주변 수십미터 안에 있는 사람은 다 들으라는 듯이 고래고래 고함치듯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의 혓바닥을 타고 쏟아져나오는 말치고 말같은 소리가 과연 있던가!?...자기자랑인지, 자기과시인지, 이상심리의 표출인지 이해 못할 말들을 늘어놓는 것이다. 문제는 주위 사람은 제멋대로 쏟아내는 그 소리를 듣기 싫어도 듣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역겹고 구역질나고 짜증나고는 하여. 모처럼 산을 찾은 상쾌한 기분마저 망쳐버리기도 한다.
찾는 이들이 적어 썰렁할 때가 더 많은 피아골대피소 주변 곳곳에 함태식님이 지금도 "조용히!"란 경고판을 매달아놓은 이유를 알아야 한다. 임걸령 삼거리나 삼도봉에서 내려왔든, 직전마을에서 삼홍소를 거쳐 올라왔든, 적어도 피아골대피소를 한번이라도 지나치는 이들은 "깨끗이, 그리고 조용히!"란 경고판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깨끗이, 그리고 조용히"! 그렇다. 산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경건한 정신자세로 심신을 올바르게 가다듬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지난 70년대 이래 30여년 동안 이런 저런 산악회 활동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 오랜 세월이 필자에게 아주 기본적이고 분명한, 상식 아닌 상식 하나를 안겨주었다. 산악회든 테니스회든 또 무슨 모임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가운데는 반드시 등을 돌리는 친구가 나오게 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렇게 등을 돌리는 친구는 그러기 이전까지는 가장 적극적으로 알랑살랑거리며 친근한척 온갖 주접을 다 떨기까지 한다. 무슨 모임이든 대체로 가장 떠드는 친구를 '트러블 메이커'로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어떤 친목회 모임에 20명이 모였다면 스무개의 입이 있다. 그런데 한 개의 입이 나머지 19개의 입을 무시한 채 별나게 떠든다고 하자. 19개의 입은 침묵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비뚤어지고 있을 터이다. 꼭 무슨 모임이 열렸을 때만이 아니다. 유치찬란하게 떠들거나 무엇을 떠벌이는 친구는 곳곳에 있다. 필자는 솔직이 이제 그런 사람들이 무섭다. 주접을 떨거나 떠드는 친구를 보면 아예 10리 밖으로 도망간다. 맑고 아름다운 산을 찾는데 그런 사람과 어울려야 할 이유란 정말 있을 수 없겠기 때문이다.
"조용히, 그리고 깨끗이!"는 30년 이상 사명의식으로 지리산을 지켜온 함태식님의 신념이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불일폭포에는 배낭을 메고 가지 못하게 하는 변규화님의 철학이기도 하다. 요즘은 산상에서 떠들고 분탕질을 하는 이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어떤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들도 있다. "조용히, 그리고 깨끗이!"는 꼭 산중 활동에서만 적용되는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조용히, 그리고 깨끗이!"의 그 정신이나 바탕이 이제 우리 사회 구석구석으로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2002년 11월11일)
변규화님 함태식님 최선생님의 붓끝에 생생히 살아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