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사람도 별로 없어 썰렁한 피아골대피소에서 함태식님이 왜 "조용히, 그리고 깨끗이!"를 강조하겠는가? 큰소리로 떠들지 말며,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뜻의 "조용히, 그리고 깨끗이"는 이미 30년 전 노고단 야영장의 북새통에서 써먹었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피아골대피소 주변의 나무둥치 여기저기에는 "조용히"와 "깨끗이"란 간판들이 매달려 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 정신세계에 대한 당부일 것이다. 산에 들 때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조용하게 가다듬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불일폭포를 찾는 이들은 이제 대개 스스로 배낭을 불일오두막에 벗어두고 다녀온다. 처음 찾는 이들은 왜 배낭을 벗어놓고 가야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할 법하다. 하지만 그들도 배낭을 벗어두고 가라면 두 말 않고 벗어두고 간다. "배낭을 벗어두고 가라!" 는 말 역시 이제는 폭포 주변 쓰레기를 막기 위한 것만은 아닐 터이다. 배낭을 벗어두는 것은 소유로부터의 이탈이다. 물욕으로부터의 자유, 육신으로부터의 자유까지 얻을 수 있다. 변규화님이 달빛 아래 나신(裸身)일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 말뜻을 짐작할 만하다.
지리산 산중에서 30여년을 상주(常住)해온 함태식님과 변규화님의 눈에는 어쩌다 지리산을 찾아오는 이들이 어떻게 보일까? 함태식님이나 변규화님에게 인삿말을 건네오는 산꾼이라면 스스로 "지리산을 사랑하고 어쩌고..."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두 산중 어른은 한눈으로 상대의 사람됨됨을 꿰뚫어보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한 도사 지망생은 변규화님이 사람을 꿰뚫어보는 눈은 9단쯤 된다고 말했다. 아무리 교언영색으로 가장을 한다해도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과 같잖은 허세(虛勢)는 금세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산을 찾을 때 유별나게 많은 음식을 한 배낭 가득 메고 오는 이들이 있다. 별미라거나 특식이란 이름으로 음식을 한 짐 메고와선 불을 피워 조리까지 하여 주위사람들에게 베푼다. 제 먹을 것도 제대로 챙겨오지 않은 이들이 많은 현실과 비춰본다면 한 짐 메고온 이들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함태식님이 왕시루봉과 피아골대피소에 머무는 동안 먹을 것 등을 한 짐 가득 메고 찾아와선 한껏 인정을 베풀고 가는 몇몇 산꾼들이 있었다. 고기와 양주는 기본이고, 갖은 양념을 가져와 요리를 하여 한바탕 잔치를 벌이곤 했다.
그러면 함태식님은 그들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그 인정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이는 1972년 8월2일 마흔다섯 나이에 노고단으로 올라와 30년을 지리산 산중생활을 하며 겪었던 일들을 <단 한번이라도 이곳을 거쳐간 사람은>이란 수기 형식의 책을 몇 해 전 펴냈다. 그 책을 읽어본 필자는 아주 의외의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왕시루봉과 피아골에 지극정성으로 음식을 져다나른 산꾼들의 이름은 그 책에 거의 실려 있지 않았다. 음식을 들며 떠든 이들을 그이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을까?
필자가 아는 산꾼 가운데서도 함태식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신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누구도 그 책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좀 이상하게 생각됐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이 왜 빠졌는지를 알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음식을 가득 장만해 와선 그 음식의 가치 이상 떠들거나 으시대는 등 허세를 떠는 이들이 있다. 지리산의 청정한 세계와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일인가. 함태식님이 책을 펴내며 그들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어 지리산을 찾는 일이 늘고 있다. 지리산 이해와 사랑의 길을 넓혀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리산을 사랑한다며 전국 각지에서 지리산에 몰려들어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경우는 없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이 지나치다보면 '지리산 사랑'이 '지리산 학대'가 될 수도 있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모임의 일원이라면 함태식님의 "조용히, 그리고 깨끗이!", 변규화님의 "배낭 벗어두고 가시오!"는 말을 한번쯤 새겨볼 만하지 않을까.
(2002년 11월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