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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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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으로 오르는 가장 빠른 등산구는 중산리(中山里)다. 이곳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3분의 2 지점에 로타리산장이 자리한다.
해발 1,350미터,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번지이다.
2000년 7월, 국제로타리 3,360지구는 그동안 관리해오던 로타리산장을 국가에 기부체납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낡고 볼품 없는 이 산장을 헐고 그 자리에 1억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통나무로 된 파고다(불탑) 모양의 쉼터 공간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23년 전에 지어진 로타리산장은 좁고 낡고 허름한 것이 사실이다.
노고단, 세석공원, 장터목산장을 현대식 건물로 고쳐 지은 것과 견주면 더욱 초라해진다.
산장 규모가 26평에 수용인원이 60명에 불과한 것도 문제다.
그보다 지금은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당일로 오르내리는 데다, 야간산행이 금지되면서 로타리산장의 기능과 역할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산장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근사한 쉼터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로타리클럽 회원들의 성금으로 세운 '로타리의 집'은 단순한 산장의 의미 이상의 상징성이 있다.
지리산의 유일한 민간인 산장은 곧 지리산의 산악운동사의 한 기념비로 보아야 한다.
법계사 초막의 산정(山情)을 꽃피운 결실인 '로타리의 집'은 천왕봉 등정사의 생생한 맥과 얼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천왕봉 등정의 역사나 초기 산악운동의 발자취는 이곳에 영원히 보존돼야 한다.
낡은 건물을 헐고 현대식 공간을 만드는 것만이 능사일 수는 없다.

로타리산장 건립의 모든 문제를 도맡아 헌신한 인물은 산악인 조재영이다.
지리산 들머리 마을인 덕산에서 남명 조식의 13대손으로 태어나 덕산에서만 살아온 순수 '지리산 사람'이다.
그는 10대 소년 시절부터 지리산을 누비고 다녔는데, 67년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자 경남관리사무소(당시엔 도별로 관리를 했다)에서 도벌 적발과 단속이란 힘든 업무를 맡았다. 그는 71년 세석산장이 세워지자 3년 동안 그곳에서 근무를 하기도 했다.

조재영은 지난 72년 출범한 덕산 두류산악회의 창립 부회장으로 이 산악회가 73년부터 천왕봉에서 열고 있는 '천왕제(天王祭)'를 주도해 왔다.
그가 지리산에서 해낸 일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천왕샘을 만든 것은 기록에 남을 일이다.
천왕봉 암괴 바로 아래 자리하여 한국에서 가장 높은 이 샘은 천왕봉으로 오르는 목마른 이들에게는 감로수와 같다. 77년 7월31일 조재영이 석공을 동원하여 사흘 작업 끝에 만드는데 성공했다.

조재영은 등산 인구가 늘어나면서 법계사 초막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산악인들과 산장 건립에 뜻을 모았다.
그는 이 일을 위해 부산을 다녀온 것 만도 16 차례나 됐다.
산장 건립 위치도 문제가 됐다. 당국은 망바위 위의 문창대(文昌臺)에 세우라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문창대가 아닌 집선대였다.
조재영은 진짜 문창대가 법계사 바로 서쪽 바위임을 문헌으로 고증하여 현재 위치에 산장을 건립하겠다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

산장 건립 기금이 모였지만, 문제는 그 높은 곳까지 자재를 운송하는 일이었다.
경남도는 미군 헬기 지원을 받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조재영은 순두류까지 산간도로 개설을 건의했다. 로타리클럽 회원들이 측면 지원을 하는 등으로 결국 그의 뜻이 관철되어 경남도는 순두류 도로 개설비 5,000만원과 법계교 가설비 2.000만원을 책정해 주었다.
법계교 가설로 우기에도 천왕봉 등정이 가능해졌고, 순두류 도로는 훗날 경남자연학습원 탄생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조재영의 노력과 로타리클럽 회원들의 정성으로 '로타리의 집', 곧 로타리산장은 78년 마침내 문을 열었다. 그와 함께 법계사 초막의 전설적인 시대도 막을 내렸다.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은 로타리산장을 효율적으로 이용했다.
필자는 82년 초여름 천왕봉 일출을 지켜보기 위해 로타리산장에서 머물다 새벽 3시에 천왕봉으로 출발한 일이 있다.
그보다 천왕봉을 오르내리며 커피 한 잔씩을 마시던 기쁨을 더욱 잊을 수가 없다.

로타리산장이 너무 낡아 헐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자.
또 그 자리에 새로이 만드는 통나무 쉼터가 많은 등산객에게 더 유익한 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왕봉을 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코스의 산장을 꼭 없애야만 하는가?
또 법계사 초막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리산 산악운동에 헌신한 이들을 기리는 조형물이나 기념관이라도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닌가?
작은 산장의 쓸쓸한 퇴역(?) 앞에 착잡해지는 마음을 가누기가 어려워진다.  
(2001년 2월12일)

[후기]
로타리클럽이 기부체납한 로타리산장을 헐고 쉼터를 만들겠다던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계획은 그 뒤에 산장을 그대로 보존하는 쪽으로 수정이 됐습니다.
산장 내외부를 다시 손질하여 천왕봉을 오르는 이들에게 대피소로서 계속 기여하게 되었으니, 아주 다행스럽다 하겠습니다.
로타리산장은 지리산을 사랑했던 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아름다운 산정이 담겨 있는 만큼, 앞으로도 잘 보존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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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04.05.07 13:37
    우리 주변 곳곳에는 정열과 헌신으로 꽉 채워진 조 선생과 같으신 분들이 계시죠... 사리사욕과는 멀리 떨어진 그 어떠한 목적과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시는 분들... 진정한 인간애의 본 모습들이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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