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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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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최고의 경승지이자 기도처인 영신대를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널리 알린 사람은 '지리산 박사' 김경렬옹이다.
그이는 만주에서 통신사 기자로 지내다 해방 이후 부산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한학에 밝은 그이는 특히 옛 문헌을 바탕으로 지리산의 인문사적을 규명하는데 남다른 헌신을 했다.
달궁에서의 지리산 개산(開山) 역사, 전구형왕릉의 수수께끼 추적, 칠선계곡 학술 탐사 등에 빛니는 김옹을 필자는 '지리산 박사'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김경렬옹은 지난 87년 10월1일 '다큐멘타리 르포 지리산'을 부산의 일중사란 작은 출판사에서 펴냈다.
김옹은 이 책에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김일손의 '속두류록', 조식의 '지리산 11차', 그리고 이륙의 '두류산 개요'등 조선시대의 주요 지리산 기행록들을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실었다. 뿐만아니라 김옹은 김종직, 김일손, 조식, 이륙 등의 기행록에 적힌 그대로 그들이 지나던 지리산 옛길을 따라갔다.
'유두류록' 등의 '여로 편력'을 시도한 것이다.

지리산 영신대의 창불대, 좌고대, 가섭석상 등의 얘기가 김옹의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소개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여가 지난 89년부터 필자는 지리산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지리산 365일' 신문 연재를 시작했는데, 김옹의 이 책이 참고서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김경렬옹은 영신대를 아주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규환이와 나는 벽소령을 앞둔 상덕평(1,538미터)에서 길도 없는 숲을 헤쳤다. 김종직 일행이 지리산 입산 제4야를 묵었던 옛 영신사를 찾기 위해서다. 영신사로 내려가는 덕평봉우리에서 섬진강이 보이고, 쌍계사 뒤의 불일폭포가 있는 곳을 짐작할 수 있다.'

영신사가 자리했던 영신대는 당연히 영신봉 쪽에 있다.
그런데 김옹은 어째서 영신봉을 지나고 칠선봉을 지나 덕평봉에서 영신대를 찾았을까?
김옹은 동행한 규환이란 이가 옛집터의 돌담 밑에 있는 샘에서 땀을 씻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샘을 영신대의 옥천(玉泉)으로 단정한다.
'나는 너무 기뻐 외쳤다. 북쪽을 보니 두개의 높은 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것은 창불대인 것 같았다. 이륙이 찾아왔고, 김종직 일행과 김일손, 정여창이 500년 전에 여길 찾아와 하룻밤을 지내고 간 영신사는 도토리나무, 단풍나무, 산초나무 떨기 속에 묻혀 있었다.'

'지리산 박사'도 영신대를 찾는 데는 이처럼 큰 착각을 하여 엉뚱한 곳에서 숲속을 뒤지는 해프닝을 벌인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 김옹의 실수라기 보다 영신대가 워낙 신묘한 곳이다 보니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지 않고자 무슨 마법이라도 걸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필자가 나중에 영신대를 다녀온 뒤 김옹을 만나 영신대를 영신봉에서 찾지 않고 어째서 상덕평을 뒤졌는지 여쭈어 봤다.
김옹은 필자에게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에게 무슨 귀신이 씌었는지, 그처럼 멀리 떨어진 엉뚱한 곳에서 찾았던 이유를 모르겠다고 어처구니없어 하는 것이었다.

대성골 입구 능인사 터에서 만난 '지리산 30년 도사' 윤노인도 영신대를 찾는 길이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성계곡 상단부 끝에 있지만, 등산로도 없고 등산객도 찾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도객이며 치성객이 들끓고 있다고 했으니, 그들 나름대로는 은밀하게 접근하는 통로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리산에서 이른바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될 듯했다.

필자는 윤노인의 얘기를 들은 그날 곧장 지리산 주능선의 벽소령으로 올라갔다.
'벽소령의 도사'로 불리는 임종근 청년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풀릴 듯해서였다.
당시 벽소령에는 지금과 같은 산장도 대피소도 없고, 의신마을 조봉문, 봉기 형제가 '상주 천막'을 쳐놓고 등산객들을 상대로 음료며 부침개 등을 팔고 있었다.
조봉문 형제의 상주 텐트에서 잡일을 도와주면서 밥을 얻어먹고 있는 청년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는데, 그의 별명이 '벽소령의 도사'였다.

"영신대요? 거기는 왜요?"
임도사는 필자가 영신대 얘기를 꺼내자 눈이 똥그래지며 오히려 나에게 반문했다.
"거기 아무나 함부로 가는 곳이 아닌데!"
"왜...?"
"여간 담이 큰 사람이 아니면 그곳에서 밤을 못 새웁니다. 저도 그곳에선 워낙 센 기(氣)에 혼이 났다구요."
뜻밖에도 임도사는 꽁무니를 빼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봉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이구, 도사가 시방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 하고 있네. 영신대 가는 길은 내가 안내해부러? 그깐 길은 식은 죽먹기라지우. 큰세개골을 따라가면 정말 기똥차게 좋구만이라. 그란데 최선샘은 용케 고길 우째 알아냈소?"
(2001년 6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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