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1618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지리산에 대한 기행록은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등 옛날의 관리나 선비들에 의해 상당수 전해온다.
그런데 6.25를 전후하여 동족상쟁의 처절한 상채기를 남긴 이후의 지리산 이야기는 누가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집중적으로 기록했을까?
그 주인공은 부산에서 활동한 언론인 김경렬(金敬烈)이다. 전란 후 지리산 주능선을 가장 먼저 답파한 것은 우종수의 구례 연하반산악회지만, 주능선 100리를 가장 먼저 글로 담아낸 이는 김경렬이다.

김경렬은 경남 고성에서 소년시절 먼 인척 관계인 산청의 할아버지로부터 지리산 이야기를 듣고 도보로 지리산을 찾아가본 것이 계기가 되어 지리산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그는 청년시절 만주로 건너가 통신사 특파원을 했고, 귀국한 뒤에도 매일신문, 대한신문, 부산일보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느라 58년부터 지리산을 찾게 됐다.
그는 일제 때인 1938년 기자로서 금강산 탐승대원을 인솔하고 두 차례나 금강산 산행을 한 적도 있다.

김경렬이 지리산을 본격적으로 찾은 것은 부산일보에 근무할 때였다. 그는 1958년부터 66년 사이 한국산악회 부산지부 회원들과 부산일보사 공동으로 지리산 인문사적 조사활동을 집중적으로 벌였다.
1964년 그가 부산의 산악인들을 이끌고 처음 시도한 '칠선계곡 동계 등반로 개척 및 학술조사'는 특별한 업적으로 꼽힌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칠선계곡의 선녀탕, 대륙폭포, 칠선폭포 등 명당 이름들은 바로 그가 등산로 개척 때 명명한 것이다.

김경렬은 한학에 밝아 일선기자 시절에 김일손의 '속두류록' 등을 빼놓지 않고 읽어냈다.
그의 지리산 답사도 옛 선비들의 기행록과 사찰 소유 문헌 등을 참고하여 학구적으로 추적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지리산의 문화를 규명하는 일에 정열을 바쳤는데, 그것이 등산로 개척에 치중하는 산악인들과 다른 점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의 지리산 탐승은 반드시 그 결과가 글로써 남았다.
그의 지리산 기록은 아주 방대하여 엄청난 양에 이른다.

김경렬은 1962년부터 64년까지 부산일보에 지리산 이야기들을 연재했다. 당시 국내 일간지에는 지리산의 도벌이나 양민 희생자 등에 대한 단편적인 사건기사들만 실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김경렬은 자신의 발로 직접 답사한 지리산에 대한 본격적인 르포 기사를 시리즈로 실었으니, 이 부문에선 단연 선구자였던 셈이다.
그가 연재한 글은 '지리산 7주야', '산막 주변', '지리산 자락의 민화와 토요(土謠), '지리산 개발 숨결' 등등  다양하다.

특히 그가 직접 주관하여 이끌었던 경험을 토대로 생생하게 작성한 '지리산 학술조사 및 칠선계곡 등반로 개척 보고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전인미답의 칠선계곡에서 아름드리 나무들이 목기 제작용으로 무차별 남벌되고 있는 도벌현장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는 칠선계곡 뿐만아니라 지리산 주능선을 답파하고 '능선길 110리'란 글을 '부산상공'지에 연재했다. 주능선의 모든 것을 글과 사진에 담아 흥미로운 사연들과 함께 소개했다.

김경렬은 1970년부터 15년 동안 8밀리 소형영화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지리산 단편영화들을 만들었다. '지리산 1~4' 시리즈도 있는데, 주능선의 신비로움만 담아낸 작품도 있다.
이들 단편영화는 사라져가는 지리산의 문화유산과 자연생태계를 수록한 소중한 자료로 보존가치가 높다.
당시에는 누구나 지리산을 허겁지겁 찾는 것만도 정신이 없었는데, 그는 아무도 생각지도 못한 지리산 기록을 글과 사진, 영화작품으로 입체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김경렬의 지리산 답사와 기록은 7순 노구를 이끌고도 이어졌다.
그의 지리산 열정 결정판이 87년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1권으로 펴내졌다. 88년에는 그 2권이 햇빛을 보았다.
1권에는 김종직의 '유두류록' 등의 기행록을 따라가며 당시와 지금의 모습들을 비교분석하며 기록한 것이다.
2권에는 지리산 개산 역사와 비밀을 안고 있는 '달의 궁전 마한도성', '지리산 문화의 연원지 운상원', '지리산 가락국기', '서산의 지리산 20년' 등을 실었다.

김경렬은 지리산 주능선은 물론, 지리산 골짜기와 산자락 깊숙이 묻혀 있던 찬란한 문화의 베일을 하나하나 벗겨냈다.
오직 그 홀로 문헌을 들고 발로 찾아낸 지리산 문화는 정말 방대하다.
그 가운데는 그가 아니면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을 문화유산도 수두룩하다.
필자가 그를 따라 지리산을 답사할 때 그이는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3권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결실을 거두지 못한 채 노환으로 타계했으니, 정녕 안타까운 일이다.
(2001년 9월22일)
  • ?
    부도옹 2004.05.15 20:22
    '주능선의 그리운 얼굴들'은 최화수님의 '智異山 千人頌'입니다.
    잘읽었습니다.
  • ?
    섬호정 2004.05.16 16:12
    지리산을 오랫만에 찾아와 그리운 얼굴들, 모습, 글을 잘 읽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여산선생님!

  1. No Image

    영신대(靈神臺)는 어디에?(2)

    지리산 최고의 경승지이자 기도처인 영신대를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널리 알린 사람은 '지리산 박사' 김경렬옹이다. 그이는 만주에서 통신사 기자로 지내다 해방 이후 부산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한학에 밝은 그이는 특히 옛 문헌을 바탕으로 지리산의 인...
    Date2004.05.19 By최화수 Reply0 Views1905
    Read More
  2. No Image

    영신대(靈神臺)는 어디에?(1)

    대성계곡 등산로의 산행 기점은 의신마을과 그 2킬로미터 아래 있는 대성교(大成橋) 두 곳이다. 따로 시작된 두 길이 얼마 뒤 하나로 마주치는데, 바로 그곳에 옛 능인사(能仁寺) 터가 있다. 당장이라도 집을 세울 수 있을 만큼 넓고 편편한 터에 샘도 있다. ...
    Date2004.05.19 By최화수 Reply0 Views1940
    Read More
  3. No Image

    주능선의 그리운 얼굴들(10)

    지리산에 대한 기행록은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등 옛날의 관리나 선비들에 의해 상당수 전해온다. 그런데 6.25를 전후하여 동족상쟁의 처절한 상채기를 남긴 이후의 지리산 이야기는 누가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집중적으로 기록했을까? 그 주인공은 ...
    Date2004.05.12 By최화수 Reply2 Views1618
    Read More
  4. No Image

    주능선의 그리운 얼굴들(9)

    남한 육지에서 가장 높은 곳은 지리산 천왕봉이다. 그럼 남한 육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샘터는? 당연히 천왕샘이다. 천왕봉 남쪽을 지탱하는 거대한 암괴 아래 이 천왕샘이 있다.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이들에게 정상 등...
    Date2004.05.12 By최화수 Reply0 Views1503
    Read More
  5. No Image

    주능선의 그리운 얼굴들(8)

    해발 1,750미터 장터목(場基頂)은 주능선 가운데 가장 번잡한 곳의 하나이다. 지난날 산청군 시천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 사람들이 이곳까지 올라 물물교환을 했던 장터가 섰다고 하여 '장터목'으로 불리고 있다. 등산객들이 이곳까지 걸어서 오르는 데도 힘들...
    Date2004.05.12 By최화수 Reply1 Views1304
    Read More
  6. No Image

    주능선의 그리운 얼굴들(7)

    우천 허만수가 지리산에 입산한 것은 전란 직후인 1950년대 중반으로 짐작된다. 빨치산과 군경토벌대의 격전이 벌어졌던 시기에 그는 경남 의령의 자굴산에서 보냈다. 산정 가까운 곳에 땅굴을 파고 풀을 바닥에 깔고 원시인(?)처럼 살았다. 그가 세석고원에 ...
    Date2004.05.12 By최화수 Reply0 Views1314
    Read More
  7. No Image

    주능선의 그리운 얼굴들(6)

    지난 8월31일 필자는 'parksk2017'이란 아이디만을 밝힌 한 '산악선배'로부터 아주 반가운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지난 70년대 지리산 주능선을 답파했던 이 분은 당시의 산행 상황을 알려주는 글을 보내온 것이다. 그 때의 등산장비와 산꾼들의 편모가 여간 ...
    Date2004.05.12 By최화수 Reply0 Views1436
    Read More
  8. No Image

    주능선의 그리운 얼굴들(5)

    덕평봉(1521미터) 정상 조금 아래편에 사철 달고 시원한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 옛날에 선비들이 이 샘물을 마시면서 공부를 했다고 하여 '선비샘'으로 불린다. 이 샘에는 거짓말 같은 전설도 있다. 샘 아래편의 상덕평(上德平)마을에서 평생 가난에 눌려 ...
    Date2004.05.12 By최화수 Reply2 Views1273
    Read More
  9. No Image

    주능선의 그리운 얼굴들(4)

    9월2일 의신마을에서 빗점골~명선봉~벽소령을 돌아오는 '지리산 통신' 9월 정기산행이 있었다. 8월 정기산행 때 발목을 접질렀던 필자는 '탐승조'로 산행에는 참가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 산행팀을 끝까지 따라가게 됐다. 벽소령에 도착했...
    Date2004.05.12 By최화수 Reply0 Views1196
    Read More
  10. No Image

    주능선의 그리운 얼굴들(3)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주능선상의 노점은 1424봉, 노루목, 토끼봉, 화개벽소령, 마천벽소령, 선비샘, 천왕봉에 있었다. 이 가운데 천왕봉은 등정 기념메달에 이름을 새겨주는 것만 했고, 나머지는 커피와 약차 등 음료를 팔았다. 이들 노점상은 일...
    Date2004.05.12 By최화수 Reply1 Views148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 30 Next
/ 3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