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750미터 장터목(場基頂)은 주능선 가운데 가장 번잡한 곳의 하나이다. 지난날 산청군 시천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 사람들이 이곳까지 올라 물물교환을 했던 장터가 섰다고 하여 '장터목'으로 불리고 있다.
등산객들이 이곳까지 걸어서 오르는 데도 힘들어 하는데, 옛 사람들은 등짐을 가득 지고 장을 보러 올랐다니 삶의 의지가 얼마나 치열했었는지 짐작케 해준다.
그런데 이 장터목은 엉뚱한(?) 기록도 한가지 가지고 있다.
1988년 11월27일, 장터목에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자랑스럽게 입간판 하나를 세우게 됐다.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전화가 있도록 한다는 사업 목적에 따라 이곳 지리산 천왕봉 아래 장터목산장과 세석산장에 전화를 설치했습니다. 장터목산장 전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한 전화입니다...'
당시 예산 1억원, 케이블 19,200미터와 전주 83개 등이 소요됐고, 115일의 난공사 끝에 겨우 완공했다.
휴대폰 소리가 요란한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겨우 10여년 전의 일로 결코 옛날 얘기도 아니다.
어쨌든 당시에는 장터목에 '전화전신업무 취급소'까지 차려져 악천후 등으로 조난객이 갇혀 있을 때 가족과 통화를 하는 등 큰 기여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전화 가설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것은 산장 앞의 '메시지판'이었다.
'김아무개, 속히 귀가할 것, 아버지 별세!'
이런 큼지막한 글씨가 나붙고는 했다.
이 전화가 가설될 무렵 장터목에는 제법 큼지막한 새 산장이 들어섰다. 71년 노고단, 세석산장과 함께 세워졌던 기존 산장은 너무 협소하여 등산객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터목에는 매년 여름 진주의 중고교 학생들이 단체로 올라와 수련행사를 갖는 일이 많았다. 학생들이 야영장을 독점하여 일반 등산객들은 발을 붙이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장터목 산장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현대판 시장바닥'인 장터목의 그 악조건을 무릅쓰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잘 관리하여 산장 운영의 모범을 보인 주인공이 최진경이란 젊은이다.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하여 무역회사에도 근무한 경력이 있는 그는 아주 인상이 좋은 미남자였다.
그가 산장 일을 한 것은 84년부터다. 그는 지성인답게 합리적인 원칙을 세워 산장관리를 해왔다. 등산객이 산장 앞에 도착순으로 배낭을 세워놓게 된 것도 그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터목산장을 오래 전부터 임대받아 운영한 진짜 주인은 그의 아버지 최인섭이었다. 장터목산장의 고달픈 역사는 아버지 최인섭이 고스란히 감수했었다.
천왕봉 일출의 전진기지인 장터목은 언제나 폭발적인 사람들에 묻혔고, 좁은 산장에 그 일부도 수용하기 어렵다보니 갖가지 곤혹스런 일들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그 혼란을 어찌 감당했을까?
최인섭은 노고단의 함태식, 세석산장의 오진우와는 산장 관리 방식이 아주 달랐다.
그이는 산장관리인답지 않다고 오해를 받을 정도로 언제나 조용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쓰레기를 치워라" '노래를 부르지 말라" "기타를 치지 말라"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간섭하고 소리치는 대신 그 스스로 묵묵히 쓰레기를 수거했다.
그는 겨울철에 얼어붙은 분뇨를 곡괭이로 파내다 눈을 다치기도 했다.
틈틈이 책을 읽어 독서량이 많은 그는 지성과 인품으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설득하며 산장관리를 해왔던 것이다.
아버지 최인섭의 이런 산장 관리방식은 아들 최진경에 의해 더욱 세련되고 합리화 됐다. 장터목에 더 큰 산장이 들어서자 최진경은 사회생활을 청산하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 '평생 장터목 사람'이 되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그 꿈도 97년 장터목에 다시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영 새 산장이 들어서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천왕봉의 길목 장터목에서 부자 2대에 걸쳐 장명등에 불을 밝혔던 그 긴 세월이 거센 바람과 함께 날아간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아들 최진경이 장터목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된 그 무렵, 아버지 최인섭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지고 말았다.
덕산에서 술을 마시고 자가운전으로 중산리의 집으로 돌아오던 그이가 임산부를 싣고가던 승용차와 정면충돌, 현장에서 임부와 함께 즉사한 것이다.
'장터목의 지성인' 최인섭의 최후는 너무나 지리산답지 않았다.
어찌 그이가 그런 충격과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중산리 매표소 입구 주차장에 단층의 상가 건물 한 동이 있었다. 그 한쪽 편이 '지리산식당'이었는데, 최인섭의 부인과 딸이 손수 운영했었다.
음식이 맛갈나고 정갈하여 많은 등산객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정성이 듬뿍 담긴 국수 맛이 일품이었다.
최진경의 여동생은 날씬하고 상냥한 미인으로 총각들 속을 끓게도 했다.
지리산을 찾는 우리들에게 여러 각도에서 기쁨을 안겨주던 최진경 일가족,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2001년 9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