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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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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평봉(1521미터) 정상 조금 아래편에 사철 달고 시원한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 옛날에 선비들이 이 샘물을 마시면서 공부를 했다고 하여 '선비샘'으로 불린다.
이 샘에는 거짓말 같은 전설도 있다.
샘 아래편의 상덕평(上德平)마을에서 평생 가난에 눌려 천대받아온 한 노인이 "죽은 뒤에라도 사람 대접 받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자식들이 궁리 끝에 선비샘 위에 아버지의 묘를 썼다.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뜰 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므로 노인의 무덤에 절을 하는 셈이 되는 때문이었다.

주능선 종주 코스가 이 선비샘을 경유한다. 샘이 있어 종주 코스의 주요 지점이다.
'표고 1,500미터, 벽소령 4킬로미터, 연하천산장 10킬로미터, 세석산장 6킬로미터'-지난 90년대 초까지 서있던 이곳 이정표의 표시다.
물론 그 수치는 엉터리로 판명돼 지금은 지워지고 없다.
1989년 10월1일 이곳에 새 간판 하나가 세워졌다. '지정취사지역'이란 희고 산뜻한 모양의 입간판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국립공원에 '지정취사지역'이란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부터 주요 야영장으로서 자리해 왔다.

당시 지리산 관리사무소는 등산객 폭증에 따른 자연파괴 가속화 현상에 골머리를 싸맸다.
이 때 등산객 사이에 갑자기 떠돈 것이 '지리산 폐쇄설'이었다. 5년 동안 등산객 출입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 구역 또는 일부 등산로의 자연휴식년제를 오해한 루머였다. 헛소문이 아니라 실제 시행된 것이 '지정취사지역'이었다.
지리산내 취사행위는 27개 지정취사지역으로 제한,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하였다.

주능선 가운데 산장이 위치하지 않는 곳이면서도 '지정취사지역'으로 선정된 곳은 임걸령, 벽소령, 선비샘 세 곳이었다.
이 곳들은 지리산 주능선에서 쓰레기와 악취 등으로 가장 더러운 곳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샘터를 끼고 있어 취사와 야영이 이뤄지는 한편, 산장이 없어 관리가 안 됐다.
특히 선비샘은 오물이 옹달샘으로 역류, 샘물을 마셨다가 배탈을 일으키는 이들도 많았다. 그 옛날 선비들이 맑고 깨끗한 샘물을 마시며 심신을 가다듬고 학문에 정진했던 샘터가 오물 천국이 된 것이다.

그런데 벽소령에 조봉문, 봉기 형제가 상주천막을 열고 범뱀샘 관리와 주변 청소를 했듯이 이 선비샘도 88년 6월부터 면모를 일신하게 됐다.
벽소령 북쪽 마을인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양정마을의 최인환이 이곳에 상주하고부터다. 그는 같은 마을 박모와 선비샘에 올라 천막을 쳐놓고 간이매점을 열었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벽소령과 마찬가지로 최인환에게 샘터 관리와 주변 청소를 조건으로 상주천막과 간이매점을 허용했다. 그 대신 박모에게는 마천벽소령에 간이매점을 열게 해주었다.

40대의 중년으로 용모가 준수한 최인환은 간이매점에서 더덕술과 오미자술 등 지리산 토산품들을 팔았다.
하지만 그 자신은 술을 입에 대지도 못 했고, 입이 아주 무거웠다. 길을 물을 때만 대답을 할 뿐, 다른 질문에는 그냥 한번 씨익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평소 등산을 하지도 않는다는 그가 선비샘 야영장에 간이매점을 열게 된 것이 어쩌면 불가사의하게 생각됐다.
그의 집이 있는 삼정리 양정동은 지리산 마을들에 거의 빠짐없이 있는 '민박' 간판조차 없는 순수한 농촌마을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인환은 89년 봄 아주 중요한 일 한 가지를 해냈다. 야영장 한편에 웅덩이처럼 노출돼 있어 불순물이 흘러들던 선비샘의 모양을 바꿔놓은 것이다.
옹달샘을 돌과 시멘트로 완벽하게 덮고 파이프를 남쪽 야영장 끝으로 길게 뽑아 거기서 물을 받게 했다. 쪽박으로 옹달샘물을 떠 마시던 것을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게 함으로써 사용 편의는 물론, 샘물을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추가로 보완작업을 벌여 현재와 같은 편리한 취수 시설이 완료됐다.

이제 등산객들은 편안하게 선 채로 샘물을 받아 마신다. 옹달샘에 무릎 꿇고 고개 숙여 물을 퍼낼 일도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죽어서라도 사람 대접을 받고 싶다"던 전설 속의 그 노인의 소망도 부질없이 되고 말았다.
그 때문일까? 최인환은 몇 해 가지 않아 선비샘 야영장에서 강제하산 조처를 당했다. 또한 선비샘도 더 이상 야영장으로 인정되지 않게 됐다.
지금은 야영은 커녕 취사도 하지 못 한다.
사람 하나 있고 없고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난다.
빈자리로 남은 선비샘이 쓸쓸하기만 하다.
(2001년 9월6일)
  • ?
    허허바다 2004.05.12 13:42
    맞습니다... 87년부터 2002년까지 병으로 지리를 찾지 못하다가 다시 내딛은 지리... 한마디로 너무 쓸쓸하였습니다...
    뭐 그 이전에도 발끝과 먼 능선의 흘러내림 이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주변의 사람냄새가 모두 없어지니...
  • ?
    부도옹 2004.05.15 19:47
    선비샘에서 야영을 하고 아침을 맞이했는데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에 팩을 설치하지 않은 텐트가 날리는 바람에 지금의 아내가 깜짝놀라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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