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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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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4월5일 <우리들의 산> 통권 제3호(사진 위쪽)를 펴낸데 이어 한달만인 5월15일에는 <우리들의 산> 통권 제4호를 펴냈다. 이 4호에는 '지리산의 이상향 목통마을'을 현지 취재 특집기사로 싣고 있다.
..................................................................................
<우리들의 산>이란 책을 앞세워 출범한 ‘우리들의 산 가족 모임’.
올곧은 산악문화가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은 좋았지만,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만만치가 않았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상상을 하거나 말을 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들의 산>이란 책을 내는 것부터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앉아서 책을 받아보는 사람은 내용이 부실하다느니, 편집 레이아웃이 촌스럽다느니 하고 마치 무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하듯이 마구잡이 비판이나 험담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은 언제나 현실(現實)과 여건(與件)에 발목을 잡히기 마련이다.

사실 잡지를, 그것도 거의 달마다 펴내는 것은 잡지사나 출판사가 해야 할 일이다.
두께가 얇은 사보(사내보, 사외보)도 기업체 차원에서 전담직원을 두어 만들거나 편집회사에 제작의뢰를 한다.
취재비나 원고료를 포함한 제작비는 회사에서 넉넉하게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이다.
조직이 탄탄한 취미단체의 회지도 일년에 한 번 정도 펴내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산>은 도대체 무엇으로 거의 달마다 펴내겠다고 큰소리쳤던가?
잡지사도 출판사도 아니요, 무슨 회사는 더구나 아니었다.
책을 앞세워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것이니까 무슨 조직이 있을 수도 없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문제는 나 혼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이상(理想)과 현실(現實)의 거리는 우리들의 상상을 엄청나게 초월하는 것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다.
사실 나는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였다. 뭘 몰랐으니까 그렇게 덤벼들었지, 알고서는 그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때는 “미쳤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미치지 않고는 어떻게 그런 만용을 감히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모든 것은 철저히 무(無)였다.
그 무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한다”고 말하기는 쉬워도 어느 것 하나 저절로 되는 일이 있기나 하던가.
당시의 나는 그야말로 무일푼의 한심한 처지였다.
돈 많은 부자도 하기 어려운 일을 가난한 월급장이가 겁도 없이 뛰어들었으니….

자, 첫걸음이라도 내딛고자 하니 당장 사무실이 필요했다.
전화기도 필요했고, 하다못해 책걸상과 같은 집기들도 사들여야 했다.
사무실을 열었으니 자리를 지키는 사람(직원)도 있어야 했다.
어느 것 하나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출발선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그래도 제대로 된, 유익하고 의미 있는 글을 싣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했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원고 부탁을 해야 했다.
기획취재의 경우 그 경비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발만 떼면 돈이 드는 것이었다.

사무실을 빌리고 집기를 들여놓는 그것부터 나는 집사람을 들볶아 돈을 차용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들의 산>은 무가지(無價誌)로 펴냈지만, 우리에게 인쇄소도 공짜로 책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들의 산>지의 한 번 제작비가 200만~300만 원 선이었다.

책만 찍어내면 그것으로 그만인가? 그렇지가 않다.
1천부 정도 우송을 한다고 해도 우송비가 만만치가 않았다. 우송용 봉투를 따로 제작해야 했고, 부산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책자 배부처에 책을 날라주는 데도 용달비가 들어갔다.
날짜가 월말로 다가오면 적은 액수였지만 직원 급료에다 이런저런 공과금도 내야 했다.
간섭을 받지 않고 책을 만들고 싶었던 욕심이 몰고 온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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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09.08.20 18:42
    그동안 이런저런 일에 쫓겨 글 올리는 것이 너무 늦어졌습니다. 더구나 지난 주에는 왼손 새끼손가락을 다쳐 자판 두드리기가 힘드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괜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내일(21일)부터 닷새 동안 일본에 다녀올 일이 기다리고 있어 그 이전에 한 꼭지라도 써놓고 가자고 좀 무리를 했습니다. 8월도 어느새 하순으로 접어들었네요. 여름 마무리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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