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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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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2월 22일 <우리들의 산> 창간호가 펴내졌다. PEN산악회의 회지 <山에 山에>4권을 낸 뒤 거의 1년만의 일이었다(사진 위). <우리들의 산> 통권 2호는 1987년 3월1일 판형을 신국판으로 바꾸어 펴냈다(사진 아래).
.....................................................................
PEN산악회에서 발을 뺀 것은 1985년 12월이었다.
1986년에는 산악회와 회지의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나 가볍게 산에 안기는 자유와 여유를 즐겼다.
원래 나는 혼자 산을 찾는 체질이었다.
혼자만의 사유(思惟)와 자유가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산악회에서 빠져나와 혼자 산을 찾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이 하나 둘 동행을 요청해 왔다.
서너 명, 네댓 명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그룹산행을 하게 되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다보니 불편할 일이 없었다.
우리들은 단체산행으로는 하기 어려운 코스 개척도 잇달아 해냈다.

그룹산행을 하던 우리는 자연히 ‘산악문화’ 정착을 위한 책자 발행에 뜻을 모으게 됐다.
PEN산악회 때 펴낸 회지 <山에 山에>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따랐던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산악회를 만들어 산악회지를 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PEN산악회에서의 쓴 경험이 교훈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산악회 대신 책을 앞세운 ‘우리들의 산 가족’, 곧 후원회원 방식을 선택했다.

사실 무슨 산악회 ‘회원’이라거나, ‘동호인 그룹’, 또는 ‘가족’이라는 말은 같은 뜻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가족이라는 말 뒤에 ‘후원회원’이란 단서를 달았다.
‘우리들의 산 가족’은 후원회원만으로 구성했다.
“책을 왜 펴내느냐?”와 같은 말을 두 번 다시 듣지 않기 위한 ‘독재(獨裁)’였다.
가족으로서 자유롭게 참여는 하되, 일절 간섭은 하지 못하게 한 것.  

1986년 12월, <우리들의 산> 창간호가 펴내졌다.
산악회가 탄생하여 활동을 하다가 회지를 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나는 거꾸로 갔다. 책자를 먼저 펴내고, 가족(후원회원)을 모집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산’은 산악회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른 어느 산악회 못지않은 산행과 산악문화 정착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우리들의 산>은 산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자그마한 길잡이가 되고자 하는 뜻으로 만들어집니다.
오늘날처럼 자연이 그립고 소중할 때가 일찍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찾아가는 우리들의 산은 자연의 모든 것을 지닌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입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산을 사랑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산을 자연 그대로 보존해야 할 의무도 지니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들의 산>은 또한 굳이 함께 만나서 어울리지 않더라도 시민 누구에게나 참다운 산행과 자연보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또한 산악운동에 앞장서 오고 있는 여러 산악인과 우리 지역의 각계 인사들과도 이웃 관계의 정을 나누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글들도 싣게 됩니다.’

<우리들의 산> 창간호에 실린 발기문의 일부이다.
창간호에는 원효, 천성, 정족산의 황금루트들에 대한 기획 취재와 그룹산행기를 특집으로 실었다.
산악문화 관계 글로는 ‘오대산과 월정사의 만다라적 요소’, ‘절의 삼문(三門) 해설’ 등을 게재했다.
또한 지리산 종주산행기 등의 흥미로운 글도 함께 실었다.

<우리들의 산>은 이 책을 발간한 것을 앞세워 적설기 특별산행 시리즈를 마련했다.
신정연휴의 주흘산~치악산~월악산의 2박3일 산행을 시작으로 매주 산행에 나섰다.
이들 산행에는 부산의 신진 성악가들이 동행, 노래를 함께 부르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이 때 참여했던 김성은, 김보경, 김진숙, 김상곤, 배성신, 신진범, 신용희, 양미옥 등은 국내외에서 크게 활약하는 성악가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우리들의 산> 창간호는 판형이 PEN산악회 때의 <山에 山에>와 같은 4×6 배판이었다.
하지만 87년 3월에 펴낸 통권 2호부터 휴대가 용이한 신국판으로 바꾸었다.
아동문학가 강기홍님이 ‘우리들의 산 가족’ 대표가 되었다.
‘우리들의 산 가족’ 대표란 곧 후원회 대표라는 뜻이었다.
다만 산행집행부는 일반 산악회와 같이 제대로 구성했다.  
  • ?
    선경 2009.07.29 10:33
    산악문화의 새로운 출발점~~(우리들의산)은
    먼저 책을 발간하고 가족회원들을 모집했군요
    신진성악가들도 참가를 같이한 멋진산행문화였네요
    다음편을 기다려봅니다^^*
    시원한지리계곡물처럼 상쾌한여름되세요~~~
  • ?
    최화수 2009.07.29 11:03
    선경 님, 올 여름 즐겁게 보내고 계시지요?
    나는 8월 1~3일 쓰시마, 22~25일 시모노세키를 다녀옵니다.
    부산과 가장 가까운 일본의 두 곳에 들러 선조들의 발자취를
    다시 더듬어보려고요.
    8월 중에는 지리산 천왕봉도 한번 찾아보고자 마음먹고 있습
    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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