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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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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평전에서 30년 산중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변규화님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그것은 꽤 오랜 세월이 흘러도 20여년 전 처음 만났을 때와 조금도 그 모습이 변하지 않는데 있지 않은가 한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신통하기만 하다. 신선의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라면 설명이 될 수 없는 일이다.
변규화님은 필자와 단 둘이 대화를 할 때는 신비한 얘기도 곧잘 들려준다. 자신의 일상사에 대한 진솔한 얘기들을 거리낌없이 털어놓는 것이다.

그가 들려준 많은 얘기들 가운데는 자연에 귀의하는 독특한(?) 방법도 있다. 달밤에 옷을 홀랑 벗고 달빛과 함께 뜨락을 거닐며 자연에 동화된다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가 좋아. 홀로 휘영청 쏟아지는 달빛에 실컷 취하는 것이지. 아무도 없으니 무슨 거리낌이 있기나 하겠소. 나는 홀랑 벗고 이 뜨락을 거닙니다. 자연과의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 거요. 그 완벽한 자유가 나에게는 소중한 보물과 같지오."

30년 산중생활의 경지를 속세의 속물이 어찌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불일평전에서의 이런 삽화만으로도 그이의 낙시유거(樂是幽居), 곧 그윽하고 궁벽한 곳에 사는 즐거움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이는 매처학자(梅妻鶴子), 곧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아 지내는 선비와도 같다.
그이의 천진한 웃음에서 상마지교(桑麻之交), 곧 뽕나무와 삼나무를 벗삼아 지내는 경지를 보는 듯하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1487년 지리산을 찾았던 남효온(南孝溫)은 기행록 '지리산일과'에 특이한 한 스님의 얘기를 썼다.
산길 40리를 걸어 어렵게 도착한, 감나무 대나무에 둘러싸인 보암(普庵)의 주지승 도순(道淳)이 그 주인공이다.
'도순은 문자를 배우지 않고 도를 닦아 불법을 깨쳤다는데, 그는 "나밖에 아무도 없다"고 스스로 말하며, 불경을 외거나 염불하는 것을 그만두고 늘 음경(陰莖)을 내놓고 생활했다.'

지리산에는 많은 승려들이 수도정진하여 도를 깨쳤다. 서산대사와 벽송대사 진각선사 등 그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다.
지리산에서 생활한 스님 가운데 아주 특이한 인물이 있다.
무기(無己)라는 이름의 이 스님 행적을 보면 참으로 완벽한 자유인이다. 집도 절도 없었지만, "어떤 자가 집을 세웠건 내가 들랑거리기에 거리낌이 없노라"고 큰소리쳤다.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 그 기록이 있다.

'중 무기(無己)는 호를 스스로 지어 대혼자(大昏子)라 하였다. 그는 지리산에 은신하여 30년을 살면서 장삼 하나를 벗지 않았다.
해마다 겨울과 여름이면 산(절)에서 나오지 않고 뱃가죽을 띠로 졸라맸다. 봄과 가을에는 배를 두드리며 산을 유람했는데, 하루에 서너 말의 밥을 먹어치웠다.
한 자리에 앉으면 열흘이 넘고, 일어나서 갈 때는 선시(禪詩)를 소리 높여 불렀다. 한 절에 유숙할 때마다 선시 한수씩을 남겼다.'

중 무기가 남긴 선시 가운데 그의 면모를 능히 짐작케 하는 '무주암' 시가 전해온다.
'이즈음 본래 머물 데가 없었는데 / 그 누구가 이 집을 세웠네 / 지금은 오직 무기(無己)가 있어서 / 가기도 머물기도 거리낌이 없어라.'
이 무기란 인물은 누구였을까?
'지리산 박사' 김경렬옹은 진각(眞覺)선사가 아니었을까고 추측했다. 진각은 보조국사가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려 하자 사양하고 지리산에 들어와 꽁꽁 숨어버렸다.

진각선사 혜심(慧諶)은 스승 보조국사 지눌(知訥)과 같이 지리산에 들어와 삼정봉 무주암에서 오랫동안 머물었다.
오늘의 송광사 전신인 수선사의 제1 세조사가 지눌이고, 제2 세조사가 진각이었다.
보조국사는 상무주에서 '선은 고요한데도 있지 않고,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 해와 달이 고른 곳에도 있지 않고, 생각을 깊이 갖고 분별을 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는 글을 읽는 동안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지리산에 숨어든 진각은 '산중길'이란 이런 선시를 남겼다.
'산길은 끝도 없으나 / 맑은 바람 걸음마다 일어나고 / 천봉 만봉을 두루 밟고 다니는데 / 상수리 나무만 이리저리 얽혀 있네 / 시내에서 발을 씻고 / 산을 보면서 눈을 밝히네 / 부질없는 영욕 꿈꾸지 않으니 / 이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랴.'
그렇다. 맑은 바람 걸음마다 일어난다면 홀로 지리산을 아무리 걸어간들 어찌 피로하거나 외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2002년 1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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