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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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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삼장면 면소재지 대포리는 지난 60년대까지 천왕봉 등정의 산행 기점이었다. 필자의 '우리들의 산' 산악회도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이 대포리를 산행 기점으로 삼았던 적이 많았다.
당시 산행은 한결같이 대절버스를 이용했는데, 이 버스는 마을로 들어가는 좁은 다리를 건널 수가 없어 대포초등학교 앞에 멈춰서야 했다.
그 때문에 우리들은 대포리에서부터 걷지 않으면 안됐던 것이다.

하지만 대포리에서 걷기 시작하는 것은 산행이라기보다 도보여행과 같았다. 장당골로 가든, 내원골로 가든 대포리에서 좁다란 산판도로가 연결돼 있고, 그 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하는 때문이었다.
장당골을 따라 경상대연습림에 가는 것은 100% 도로를 따라 걷고, 황금능선과 연결되는 국사봉에 오를 때도 90% 가까이 도로를 따라갔다.
숲속 오솔길을 기대했던 이들은 황당한 느낌이 앞설 만도 했다.

지금은 대포리의 그 교량을 2차선으로 고쳐놓았고, 3킬로미터 안쪽 내원사까지 2차선 도로 확장 공사중인데, 내원사 쪽은 이미 포장까지 마쳤다.
내원사 앞에서 산판도로가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는데, 왼편이 내원골, 바른편이 장당골로 들어가는 도로이다.
수십리에 걸친 도로를 걷는 이상한(?) 도보여행을 할 때의 기억으로 아직 잊지 못하는 것이 있다.
두 골짜기의 '감나무와 염소'가 그것이다.

장당골 20여리 가운데 내원사에서 10리 쯤 들어가면 이 골짜기의 유일한 민가가 한 채 있었다. 지리산 최후의 화전민 김형수, 장복남 노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90년 당시 김형수 할아버지는 85세, 장복남 할머니는 76세였다.
한때 50가구에 이르던 장당골 화전민들은 국립공원법 발효와 함께 모두 철거가 되었지만, 양철지붕인 이 한 집만은 남겨놓아 노부부가 그대로 눌러앉아 살고 있었다.

덕산에서 살았던 김 할아버지는 소년시절 때 장당골 일원이 큐슈대(九州大) 연습림이 되면서 하루 50전을 받고 잣나무를 심는 일을 하기 위해 이 골짜기로 들어왔다.
장 할머니는 장당골 화전민의 딸로 두 사람이 결혼하면서 영원한 장당골 사람이 된 것이다.
노부부 집 주변에는 키 큰 감나무들이 많았다. 그리고 풀밭이 된 묵혀놓은 논밭에는 염소들이 떼를 지어 다니면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는 하였다.

감나무와 염소, 그리고 노부부가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장당골의 적요한 세계에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우리가 손수 심은 감나무며 유실수들이오. 처음에는 저 나무들 때문에 이곳을 못 떠났는데, 근래는 염소를 키우다보니 그놈들 때문에 이곳을 또 떠날 수 없게 돼 이렇게 살고 있구만."
김 할아버지 말이었다. 감나무와 70여 마리의 염소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노부부 심성이 정녕 감동적이었다.

내원사에서 내원골을 따라 2킬로미터 가량 올라가면 바깥내원으로 불리는 마을이 있었다.
마을이라지만 세 가구밖에 살지 않았는데, 그 가운데 유독 감나무가 많은 집이 있었다.
진주에서 살다가 82년 지리산이 좋아 별다른 생각없이 들어와 산다는 우성구씨 집이었다.
상냥한 말씨에 친절한 그의 부인 말이 걸작이었다.
"우리는 농사를 짓지 않아요. 여기저기 서있는 감나무가 농사를 대신 지어줍니다."

감나무가 농사를 대신 지어준다니, 무슨 뜻인가?
"저절로 열리는 감을 따서 내다팔면 1년 먹고도 남을 양식을 구하니까요. 그냥 놀고 지내기도 뭣하여 염소나 기르고 있지요."
그러고보니 이곳에도 키 큰 감나무 아래 염소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장당골의 김형수 노부부, 내원골의 우성구 부부의 여유와 소탈한 성품에서 지리산에서의 자연생활에 대한 진정한 찬가를 듣고도 남음이 있는 듯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장당골을 지키던 김형수 할아버지는 운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또 초라한 땅집들만 띄엄띄엄 있던 저 깊은 내원골에도 엄청나게 좋은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안내원 마을에 아주 멋지게 지은 집이 있어요. 3억원에 팔겠다고 집을 내놓았지요."
필자는 2주 전 내원사 답사 때 입구 마을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이 귀띔해주는 말을 들었다.

내원골 뿐이겠는가. 10년 전 장마철에는 승용차가 진입하기 어렵던 목통골 등에도 대궐같은 집들이 속속 들어섰다.
제 돈으로 궁궐같은 집을 짓든, 성곽같은 집을 짓든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작고 허름한 토담집이지만, 감나무와 염소와 함께 지리산 자연세계에 동화되어 진정한 '지리산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정녕 보고싶어진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그림이 정녕 아름답기 때문이다.
(2001년 10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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