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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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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1년 남명 조식은 회갑 나이에 집과 전답도 버리고 맨몸으로 고향을 등진다. 그가 생애 마지막 거주지로 정하고 찾아든 곳이 양당촌(덕산, 산청군 시천면 사리)이었다.
그는 지리산을 17차례나 탐승한 끝에 천왕봉이 올려다 보이는 이곳에 정착, 그 소회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봄산 어디엔들 방초야 없으련만 / 천왕봉이 하늘에 가까우니 자랑스럽다 / 빈손으로 왔으니 무엇을 먹으리오만 / 맑은 물 10리에 흐르니 먹고도 남겠다.'

남명선생과 비교할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지만, 필자도 10여년 전에 지리산을 수백번 둘러본 끝에 직장을 그만두면 마지막 거주지로 몸을 의탁할 수 있는 이상향을 찾아냈다.
남명의 덕산에서 겨우 2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대포리(大浦里)였다.
남명의 덕산은 산청군 시천면 면소재지로 동부 지리산의 관문이다. 그곳에서 겨우 5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대포리 또한 산청군 삼장면 면소재지인 때문에 '삼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남명은 지리산 최초의 유학 강학도장인 산천재(山天齋)를 열고 후학을 길렀다.
산천재가 자리한 곳은 중산리 쪽에서 흘러온 신천(新川) 물과 대원사 쪽에서 흘러온 삼장천이 한데 모여 덕천(德川)이란 큰 강을 이루는 명당이다.
두 끝의 물이 한데 모인다고 하여 양단(兩端)이라고도 하고, 두 시내가 큰 못(潭)을 이루면서 한 줄기로 합쳐진다고 하여 양당(兩塘)이라고도 한다.
사륜동 마을을 '양당촌'으로 부른 것도 그 때문이다.

두 끝의 물이 흘러드는 곳에 자리한 것은 대포리도 마찬가지다. 대원사계곡과 내원사계곡(장당골)이 합류하는 곳에 마을이 섰으니 이곳 역시 '양당촌'인 것이다.
남명은 양당촌에 살게 된 기쁨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 아희야 무릉도원이 어디오 나는 옌가 하노라.'
지리산 산릉과 계곡과 숲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무릉도원인 것은 대포리 또한 마찬가지다.

옛날의 덕산이 어떠했는지는 남효온(南孝溫)의 '유산기초(遊山記抄)'가 말해준다.
'양쪽 산자락에 단풍이 물들어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았는데, 아래에는 거울같은 맑은 물에 고기떼가 헤엄쳐 놀고, 새들은 숲에 날아들어 노래한다.
냇바닥의 돌들이 기이하고 거대하여 눈길을 끈다. 그저 즐거울 뿐이다.
이윽고 양당촌에 다달았다. 집집마다 나무를 길러 숲을 이루었고, 감나무가 집들을 둘러 그윽하니 가히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지금의 덕산은 옛 양당촌 모습이 아니다.
덕천강은 직강공사로 정취를 잃었고, 2차선 포장도로에 콘크리트 건물들이 난립해 있다. 시골 도시의 어지러운 풍경이 뒤덮고 있다.
하지만 대포리는 시대의 흐름을 거의 타지 않고 옛 정서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이 마을은 지리산 개발 열풍과 무관하여 '민박' 간판을 단 집이 한 곳도 없다.
레저 열풍과도 무관한 마을, 언제나 조용하면서도 풍요로움이 넘치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대포리의 진정한 가치는 그 마을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마을은 지리산의 아주 독특한 골짜기인 장당골과 내원골의 문지방과 같다.
장장 30여리에 걸쳐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장당골, 지리산의 한없이 넉넉한 품이 이 마을로부터 열리게 되는 것이다.
시외버스가 덕산까지만 운행되던 지난 60년대까지만 해도 지리산 천왕봉 등정은 대포리가 등산기점이었다. 지리산의 진정한 관문은 바로 이 마을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지리산을 한창 찾아다녔던 지난 80년대 대포리에 오두막 한 채를 마련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꿈은 그야말로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대포리에 필자 대신 부산에서 살던 세 사람이 옮겨와 살고 있다. 필자의 회사 선후배 두 분이 각각 영구정착했다.
두 분은 지리산 자연세계의 넉넉한 품에서 건강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인의 삶을 누린다.

대포리에 오두막 한 채를 갖겠다던 필자의 꿈은 영영 무산되고 말았다.
꿈이란 눈을 뜨면 깨어지기 마련인가? 필자는 이제 더이상 지리산 오두막에 집착할 의욕조차 잃고 말았다.
이제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대포리에 영구 정착한 직장 선배의 집을 찾아가보는 것이다.
그이의 지리산 삶을 한껏 부러워하고 찬미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 뒤 발길을 돌려 귀로에 오를 때의 쓸쓸함이란!
잃어버린 '대포리의 꿈'이 너무나도 아쉽다.
(2001년 10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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