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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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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들에 둘러싸인 채 20여리나 들판길처럼 부드럽고 평탄한 길이 열려 있다.
평일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적막강산이다. 자동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아 현실세계와 완전 단절된 듯한 길이다.
묵은 논밭과 계곡이 가까이 있고, 사방으로 보이는 것은 그저 푸른 숲의 산등성이 뿐이다.
이 적요한 자유의 길을 혼자 걷는 그 오묘한 맛이란!

지리산 산중의 또 산속에 세상만사와 완벽하게 담을 쌓고 들판길처럼 열려 있는 길 20여리.
등산이 아니라 산책을 하는 길이다.
이 적막한 세계를 걷노라면 마치 깊은 물속으로 침잠하는 느낌이다. 아니, 타임머신을 타고 세월을 역류하는 듯도 하다.
20여리를 오고가는 시간만 서너시간, 탈속과 환속을 교차하면서 3차원 세계를 넘나드는 착각마저 들기도 한다.

각박한 삶의 우리에게 때로는 그러한 착각도 행복한 법이다. 몽상과 환상, 꿈결같은 세계로의 유영(遊泳)도 하게 된다.
그와 정반대로 냉정하고 차분하게 자아를 찾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자유로운 사색의 공간, 이 환상적인 길로 '산책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얼마나 좋은가.
꿈결 세계의 그곳은 어디인가?
내원사~경상대 연습림의 장당골이 바로 거기다.

이 길은 등산하는 코스로 바삐 걸어갈 곳이 결코 아니다. 단체로 어울려 떠들썩하게 지나갈 길은 더구나 아니다.
등산화보다 고무신이나 짚신이라도 신고 걸으면 정말 좋을 길이다. 이 세상의 모든 굴레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야생동물처럼 자유인이 되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주머니에 깨엿이나 감자 한 알이라도 넣고 마음의 부자가 되어 걸어가야 할 곳이다.

필자는 보았다. 이 장당골을 캄캄한 밤중에 떼를 지어 정신없이 걸어가는 등산객들을!
하지만 천혜의 자유공간을 그렇게 허겁지겁 가다니, 참으로 어리석고 부질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캄캄한 어둠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헐떡거리며 이 길을 스쳐가다니!
이 적요한 공간이 제공하는 사유의 자유, 끝없는 편안, 완벽한 고요의 베풂을 어찌 모를까.

조선 명종 16년(1561년) 남명 조식(南冥 曺植)은 회갑을 맞이한 나이에 고향을 등지고 덕천강 옆 덕산동(산청군 시천면 사리, 사륜동)으로 옮겨 지리산의 품에 영원히 안긴다.
그는 이곳에 '산천재(山天齋)'를 열고 마지막 생애 10년을 장식한다.
남명이 천왕봉이 올려다보이는 덕산을 이상향으로 결정하기까지 지리산을 17차례나 둘러보았다.
그는 갓끈을 씻고 덕산에 들었다.

필자는 덕산을 이상향으로 선택한 남명의 혜안에 감탄했다. 지리산 둘레 800리 가운데 덕산이 이상적인 마을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필자는 이 덕산과 인접한 대포리를 최고 명당으로 친다. 대포리는 장당계곡과 유평계곡이 합류하는 곳에 자리한 산청군 삼장면 면소재지다.
(필자는 아직 '대포리 꿈'을 못 이뤘지만, 회사 동료였던 두 사람은 이 마을로 이사, 신선처럼 살고 있다).

대포리에서 장당계곡과 함께 이어진 도로를 3킬로미터 가량 가면 내원사가 그림처럼 자리한다.
왼쪽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오르면 국사봉에 닿는데, 마지막 마을 '안내원'이란 곳에 정순덕 생가가 있었다. 그녀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생포된 곳이기도 하다.
내원사 주차장 조금 못 미처 오른쪽으로 도로가 가지를 벌린다. 이 도로는 장당골을 따라 경상대 연습림까지 20여리나 이어진다.

덕산~대포리~내원사~국사봉~순두류는 지난날 천왕봉 등정 코스였다. 지난 60년대 중반까지는 시외버스가 덕산까지만 운행했기 때문에 이 길을 거쳐 갔던 것이다.
그런데 써레봉과 중봉을 거쳐 갈 때는 장당골 코스를 따랐다. 장당골 상단부는 무재치기폭포와 닿는다.
요즘은 거리가 가까운 유평리나 새재마을에서 무재치기폭포로 오른는다. 그래서 장당골은 등산객에게 잊혀진 길이 됐다.

지금도 황금능선이나 구곡산을 찾는 이들이 내원골 또는 장당골을 거쳐 가기도 하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다. 특히 장당골은 상단부의 경상대 연습림을 찾는 이들만 드나들 뿐, 언제나 적요한 고요에 잠겨 있다.
6.25 직후까지 50여가구의 화전민 가옥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끝까지 버틴 김형수옹(작고)의 외딴집 한 채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언제나 적막강산이다.

장당계곡 상단부의 경상대 연습림에는 아름드리 잣나무 등이 원시수해를 이뤄 하늘을 뒤덮고 있다. 일제시대 큐슈대학 연습림일 때 잣나무 묘목을 심은 것이 이처럼 성장했다.
그 원시수해 속에서 하루종일 원시인의 자유를 구가해도 좋다.
하지만 내원사~경상대 연습림 관리소까지만 오고가라. 그것 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에는 행복이 터질 듯이 충만하고도 남을 것이다.
(2001년 9월28일)

  • ?
    허허바다 2004.05.21 16:50
    예... 1979년 형 따라 내원사 지나 장당골로 들었던 기억이 찟기고 바랜 사진처럼 기억의 다락방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 사치를 한 번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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