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 남쪽은 시천(矢川)이다.
시천이란 계곡물이 화살처럼 빠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리산에는 임걸련 전설이 있다.
화살을 쏜 뒤 그 화살보다 더 빨리 말을 타고 달렸다는 도둑의 이야기다.
시천이나 임걸련보다 더 빠른 것이 있다.
요즘 세월이 그렇다.
2004년 캘린더가 어느새 한 장만 남았다.
부쩍 짧아진 하루 해처럼 한 해가 숨가쁘게 저물려고 한다.
"2005년 새해 첫날을 어떻게 보내실 생각인가요?"
이런 메일이 지리산에서 날아왔다.
새해 첫날 무엇을 할 것인가?-메일을 받고 보니 정말 새해가 눈앞이다.
새해라면 천왕일출(天王日出)???
그렇지만 천왕일출은 아니다.
지리산 메일은 나에게 이런 권유를 한다.
이름하여 '새해 단식(斷食)'이다.
4박5일 동안 '비움의 잔치'를 벌이자고 한다.
"올 한해 우리의 몸과 마음에 묵었던 것들을 모두 털어내고
생명과 평화의 기운을 다시 담기 위해
눈 맑은 벗들과 함께 비움의 잔치를 엽니다.
비우면서 더욱 충만해지는 기쁨을 맛보세요."
2004년 12월31일부터 2005년 1월4일까지 4박5일이다.
닷새 동안 지리산생명문화교육원(구 실상사 귀농학교)에서 효소단식과 춤과 노래, 명상으로 비움의 잔치를 치른다는 것이다.
'지리산생명평화결사'가 마련하는데, 참가자는 선착순 40명으로 마감한다.
'지리산생명평화결사'는 이보다 앞서 지난 10월 중순 실상사에서 '참회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길 위에서 길을 찾기 위해 산사를 떠나 '생명평화 탁발순례'에 나섰던 도법스님과 수경스님이 순례길에서 만난 '생명평화결사'의 등불(회원)들과 어울림 공동체로 생명평화운동 결의를 다진 것이다.
단식, 그것은 비우는 것이다.
몸과 마음 속의 묵은 것들을 깨끗하게 비워내는 것이다.
왜 비워야 하는가?
도법 스님이 그 대답을 들려주는 듯하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도법 스님이 펴낸 책이다.
"수행자의 불성실과 무력함, 회의와 방황이 길어지고 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천년 전 수행자들처럼 온몸으로 물음을 던지는 것말고 달리 길이 보이지 않는다."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그러다보면 어찌 온몸으로 물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도 있을 터이다.
생명과 평화의 기운을 다시 담을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새해 첫날
지리산에서 몸과 마음을 비워볼 일이다.
묵은 것들을 비우고 또 비우고...
눈맑은 벗들과 함께 비움의 잔치를 벌이고...
비우면서 더욱 충만해지는 기쁨을 느끼고자 한다.
지리산에서는 비우려고 하는 모임이 준비되고있군요.
의미깊은 행사에 찬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