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절은 시를 쓰고, 한나절은 차를 따며 산다."
지리산 화개동천, 그 곳 문덕산 구폭동천 '달빛초당(茶仙草堂)'!
들꽃같은 집에서 신선처럼 살고 있는 차시인(茶詩人)!
'한냇물' 벽사(碧沙) 김필곤님!
하지만 요즘 시인 부부는 한가롭게 차를 끓일 시간도 없다.
입동(立冬)을 하루 앞둔, 2004년 11월 첫 주말인 지난 6일.
벽사 시인 내외는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인다.
시인은 구들장을 놓고, 부인은 등지게로 황토를 날라 볏잎과 이긴다.
이긴 황토로 구들장 사이를 메운다.
방바닥에는 솔방울과 탱자로 천연코팅을 할 준비도 한다.
구들장 작업을 하는 시인 부부의 모습이 떳떳한 아랫목 온기를 넉넉하게 떠올려준다.
구들장과 황토에 시인 부부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다.
"지리산이 돌과 흙의 천지라지만, 이 구들장은 충청도 옥천에서, 황토는 하동 옥종에서 사왔구만요."
지리산이 나무 천국인데도 화개동천 깊은 의신마을에서조차 아궁이에 지피는 화목은 거꾸로 하동읍에서 사들인다고 하지 않는가.
'달빛초당'이 원래 자리에서 개울을 건너 바로 남쪽 높은 누대 위로 날아올랐다.
20평짜리 본채는 지난 8월에 완공하여 시인 부부가 이미 옮겨 살고 있다.
지금 짓고 있는 것은 본채 옆의 10평짜리 별채 서재이다.
'친구가 글 쓸 방'이라며 벽사 시인은 바쁘게 손을 놀렸다.
1주일 뒤, 11월15일 이 서재 공사를 마무리할 것이란다.
달빛초당은 우리의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었다.
"전통 한옥을 짓는 돈의 3분의 1 정도로 하려다 보니..."
시인 내외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집짓는 일을 도우고 나설 수밖에 없었단다.
건축비를 줄이고자 지붕은 가벼운 신소재로 기와를 대신했다.
그렇지만 방수는 물론 수명도 반영구적이라고.
높은 누대 위로 날아오른 새 '달빛초당'!
집도 넓고 그 모양도 근사하다.
원래의 달빛초당은 개울을 끼고 낮은 곳에 안온하게 자리를 잡았었다.
새 다선(茶仙)초당은 집채같은 자연석과 느티나무 등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지리산, 화개동천 자연풍광이 살아있는 그대로 꿈틀거리는 듯하다.
누대로 날아오른 만큼 무엇보다 시야가 확 트였다.
"방문만 열면 지리산 국립공원이 제발로 걸어와 우리집 정원이 되구만요!"
그렇다. 이제는 달빛초당에서 화개천을 내려다본다.
그 위로는 고려말 청학동을 찾아온 이인로가 보았다던 울긋불긋 복사꽃이 피는 바로 그곳이다.
'낮이면 내가 산으로
어슬렁 어슬렁 올라가고
밤이면 산이 내게로
뚜벅뚜벅 내려오네.
.....
내가 산에 사는 걸까
산이 내게 사는 걸까.'
김필곤 시인의 '산거일기' 중 '초롱초롱 별 뜬다고'의 한 대목이다.
그렇다. 이제는 낮과 밤을 가릴 것도 없게 됐다.
시인과 산이 서로 오고갈 필요도 없게 됐다.
새 달빛초당에선 시인과 산이 함께 동거하고 있지 않겠는가!
입동이라지만 아직은 노란 국화에 물들어 있는 가을이다.
새 다선초당에 쏟아지는 달빛을 마음으로 맞고 또 맞는다.
그리고 다선의 그 차향에 취한다.
벽사 시인의 '지리산가' 한 대목이 문득 떠올랐다.
'오라, 지리산으로 오라.
어중이 떠중이들 다 지리산으로 오라.
다 지리산으로 와서
껍질 좀 훌훌 벗고 가거라.
청학동 폭포를 맞고
마음의 때 좀 벗고 가거라.'
달빛초당 별채인 서재 공사가 완료되는 11월15일 이후 새 달빛초당에서 오브넷 가족들이 지신(地神)을 한번 밟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허허바다'님이 솔메거사, 김현거사님 등 여러분과 상의하여 벽사 시인 내외의 새 달빛초당 입주를 축하하는 오브넷 가족 모임을 갖도록 하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