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필자에게 '취급주의'라고 표기된 우체국 택배가 도착했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108번지, 화개동천 삼신동 법화선원(法華禪院) 법공(法空)스님이 친히 보낸 것이다.
스님이 손수 정성껏 포장한 것을 뜯어보니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휘호와 함께 스님 특유의 달마대사상(達磨大師像)이 담겨 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각기 다른 3폭이다.
한 폭은 금니(金泥)로 새겼는데, 대사상 아래에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密多心經)'이 씌어 있다.
세 폭의 달마대사상!
금니 달마상과 불경을 한데 아우른 것, 금니로 달마상을 새긴 것, 그리고 검은 먹으로 달마상을 친 것, 그래서 세 폭이다.
법공 스님은 달마대사상을 한 폭도 아니고 왜 세 폭이나 보낸 것일까? 나중에 따로 말하겠지만, 한 폭이 아니라 세 푹인 바로 그 점이 필자를 상당히 놀라게 만들었다.
[법공 스님은 7년 전 걸망 하나를 메고 지리산에 들어왔다.
그이는 달마대사의 6대 제자인 6조 혜능의 정상이 모셔진 지리산 금당지 참배를 계속했다.
3년 전 이 오두막집 토굴과 인연을 맺은 스님은 석가모니 본존 석불 좌상을 모시고 수행 정진을 하던 중 천일기도 회향일을 며칠 앞둔 계미년 정초에 꾼 현몽에서 위풍이 당당한 도승이 나타나 자기 키 만한 큰 붓을 던져주면서 "이 붓으로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라"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한달 뒤 법공 스님은 붓으로 불법을 전하는 방법은 달마도를 그리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그로부터 미친 듯이 달마도를 치기 시작했다....!]
('법보신문' 2003년 6월4일자)
이로부터 법공 스님의 달마도를 소지하는 이에게 복을 내리는 신통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화개동천 신흥부락에서 화개천에 걸린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 '섬등'이라 불리는 별천지가 있고, 거기에 외딴 오두막 한 채가 거의 십년 가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 오두막집에는 누가 살까?"
그런 궁금증만 갖고 있던 나에게 어느날 갑자기 그 오두막이 '법화선원'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신흥부락 화개천 건너 '섬등'의 외딴 오두막집 한 채.
거의 10년 가까이 빈집처럼 서있는 그 오두막집에 대한 궁금증이 알게 모르게 무르익고 있었다.
그런데 2003년 5월, 필자가 화엄사 효대에 대한 글을 쓴 것이 인연이 되어 그 오두막집의 주인공과 극적으로 연락이 닿게 되었다.
더욱 놀랄 일은 오두막집 주인은 지난날 필자와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그이는 부산 광복동의 전통찻집 '차마당' 주인이었는데, 그 사이 속세를 떠나 '법공' 스님이 되어 있었다.
법공 스님과 필자가 만나게 되는 극적인 사연은 이곳 오브넷의 '최화수의 지리산 통신'과 함께 실려 있는 필자의 '지리산 일기'에 그 전말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즉 '지리산 일기' 제35호(2003년 6월22일자) '저 오두막에는 누가 살까?'(1)~제38호(2003년 7월2일자) '저 오두막에는 누가 살까?'(4)에 이르기까지 4회에 걸쳐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다.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글을 참고로 할 필요가 있겠다.
지리산, 화개동천의 한 오두막, 법화선원의 법공 스님이 정성껏 그려 보내온 달마대사상과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불경!
더구나 한 폭도 아니고 세 폭이다, 필자가 놀란 것도 그 때문이다.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그린 달마상이라 하지 않았던가.
달마상, 요즘 유난히 세인의 화제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기도 하다.
'달마상의 신통력'(?)으로 너무 유명해진 한 민속화가가 있다. 그이와 필자 사이에 '미묘한 일'(?)이 있는데, 필자가 놀란 것도 법공 스님이 마치 그 일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