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래봉 철쭉은 지금도 천상의 화원으로 생각될 만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바래봉의 아름다움은 철쭉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십수년 전에는 초지 능선을 수백 마리의 양떼들이 몰려다니며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하계의 일이 아니라 천상의 무슨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파란 하늘과 초록의 풀밭, 그곳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흰 빛깔의 면양(綿洋) 떼...이 목가적인 풍경이 지리산 서북능선의 한 구간을 장식했으니, 놀랍지 않은가.
어째서 면양떼가 바래봉 능선을 수놓게 됐을까?
운봉 일대에 '국립종축장 남원지원'이 생겨난 때문이다.
지리산 서북능선이 면양 방목지가 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 유명한 바래봉 철쭉 화원이 생겨나게 만든 사연은 알고보면 지난 시절 우리가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60년대 말, 국민소득 일백수십 달라에 불과했던 가난한 한국을 돕기 위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지원이 그 역사적 뿌리가 된다.
운봉 목장의 정식 명칭은 '국립종축원 남원지원'이다. 이 목장의 전체 면적은 약 200만평에 이른다.
지난 1990년 당시 이 목장에는 면양 2300마리, 한우 153두가 사육되고 있었다.
그 무렵 매년 이곳에서 400마리 이상의 면양이 전국 각지에 분양되고 있었는데, 분양 신청은 그 4배에 이르렀다.
국립종축장 남원지원은 한국과 호주 정부의 축산기술협력에 의해 세워진 시범목장이다.
우량 면양의 생산보급과 초지 이용에 앞장서면서, 목장 경영자에게 양 치는 법을 가르치는 등 면양산업의 기틀을 다지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었었다.
원래 호주 축산 기술자들은 면양 시범목장 후보지로 지리산 유평계곡 외곡 분지(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외곡마을 일대)를 지목했었다.
외곡분지와 외고개~왕등재에 이르는 광활한 산역이 목초지 생산에 가장 이상적인 곳으로 판명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당시로서는 외곡분지에 이르는 도로가 개설되지 않았다.
이 교통의 불편 때문에 면양 시범목장이 유평계곡 외곡분지에서 운봉고원으로 옮겨진 것이다.
외곡분지에 면양 시범목장이 들어섰다면 축산대학의 설립 계획도 추진되기도 했다는 것이 현지 주민의 말이다.
1969년 호주의 면양 기술자들은 운봉 고원 일대를 정밀 답사, 이곳이 지리산에서 가장 이상적인 시범목장지로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1971년 한국과 호주 정부는 '한호(韓濠) 시범목장 및 지도소에 관한 약정'을 맺고, 72년부터 76년에 이르기까지 면양 2717마리를 호주에서 들여왔다.
호주 정부와 우리나라가 공동관리해 오던 이 목장은 76년 12월 우리 정부가 완전 인수했고, 78년 9월에는 그 명칭도 '국립종축원 남원지원'으로 고쳤다.
이 목장을 우리가 독자 경영하기까지 호주 정부의 지원이 컸다.
우리 정부가 3억1천만원을 투자한 것에 비해 호주 정부는 6억1천만원을 지원했고, 4명의 기술자를 파견, 72년부터 7년 동안에 걸쳐 초지 조성법을 개발하고 우량종 사육 성공을 뒷받침한 것이다.
바래봉에 왜 철쭉의 화원이 조성됐는지는 앞의 글에서 이미 언급했다.
철쭉 화원으로 만든 면양 떼...그것은 호주 정부의 지원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면양 지원을 받았고, 가난을 면하고자 시범목장을 조성했던 것이다.
바래봉에 철쭉화원이 조성된 것은 우리의 가난한 역사에 그 뿌리가 있으니 기막히지 않은가.
지금은 면양 떼가 바래봉에서 사라졌다.
요즘은 국민소득이 1만달라가 넘는 부자(?)나라여서인지 운봉 목장에 양떼도 소떼도 보이지 않는다. 그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서북능선에 면양떼가 사라지면서 바래봉~부운치의 '철쭉 지도'가 십수년 전과 견주면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놀랍네요.가난한시절의 호주정부의 지원속에 면양떼들에 의해..
2300마리면 엄청나게 많았네요.
철쭉핀 분홍빛 서북능선에 이른새벽 산안개속에 2300마리
면양떼가 풀을 뜯는모습. 달궁,성삼재쪽으로 운해라도 깔리면...
그런 생각을 하니 우리 지리산이 조금 메마른 감도 듭니다.
반달곰,양도 있고 수달,고라니, 수많은 종의 산새들 등등
지금도 풍요롭지만 좀더 진정 산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