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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220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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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 나에게 있어 지리산은 지금의 네팔 만큼이나 먼 곳으로만 생각되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찾아가기도 힘든, 너무나 아득한 산이었다.
지리산은 그보다 더 특징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잿빛의 산, 비극의 산으로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부각돼 있었다.

내가 최초로 접한 지리산이라면 영화 '피아골'이었다. 빨치산과 토벌군이 죽고 죽이는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영화였다.
그로부터 빨치산 풍문들을 주로 접했다. 여순병란,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 '망실공비 2인 부대' 이홍희와 정순덕 등의 이야기들이었다. 지리산이 어찌 무시무시하지 않겠는가.

그 다음으로 빨치산들을 토벌하는 군경부대의 '견벽청야 작전', 저 끔찍한 양민학살사건들의 편린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리산이라면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피의 산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김지하 시인의 '지리산'이란 시도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고 절규하지 않던가.

그렇게 지리산에 관한 소식은 한결같이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도벌꾼들이 함부로 도끼를 휘두른 끔찍한 사건, 화전민 촌락을 집단방화한 잔혹 사건 등이 이어졌다.
내가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던 1970년대 초반까지의 지리산은 오로지 잿빛이요, 살벌한 냉기만이 감도는 비극의 땅일 따름이었다.

1974년 12월18일, 나는 처음으로 지리산을 찾게 되었다. 눈 덮인 천왕봉에 오른 뒤 법계사 초막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 지리산은 잿빛도, 살벌함도 아니었다. 순백의 순수, 설국의 동화세계, 천왕봉의 일망무제...
지리산과의 첫 대면이 안겨준 아늑한 평화로움의 그 기막힌 감동이라니!

그 때까지 나는 고작 부산의 금정산을 올랐을 뿐이었다.
금정산에서 지리산으로의 도약(?), 그것은 신천지의 개척과도 같았다.
그렇다. 지리산은 나에게 '신세계 교향곡'이었다. 그 아름다운 세계를 잿빛의 비극, 살벌한 공포의 대상으로만 알고 있었으니,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미수 이인로가 청학동을 찾기 위해 지리산에 발길을 들여놓았다는 곳이 화개동천이다.
신록이 우거지기 직전, 화개동천이 온통 분홍색으로 뒤덮이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을 때의 그 눈부심!
온갖 봄꽃들이 화개동천의 온 산을 물감을 풀어놓은 듯 그야말로 발갛게 물들여 놓았다.

'지나는 곳마다 선경이 아닌 곳이 없었다. 천암이 다투어 솟아있고, 온갖 골짜기에는 맑은 물이 소리 내어 흐른다. 대나무 울타리와 떼를 입힌 집들이 복숭아꽃 살구꽃에 어리어 정말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닌 듯하다.'
이인로가 보았다는 그 지리산을 나도 보게 된 것이다.

지리산이 초록의 거대한 융단을 둘러쓰고 있는 것도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없이 깊은 적요에 잠겨 있는 깊은 골짜기에도 안겨 보았다.
맑고 파랗게 쏟아지는 계류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었다.
한여름철 주능선을 뒤덮은 야생화와 고사목이 그려내는 미묘한 그림도 보았다.

나는 거대한 초록의 융단에 내 눈을 씻기 위해, 자연의 그 두터운 적요에 한없이 깊이 침잠하고자, 또 계류가 들려주는 절묘한 음악에서 위안을 건지고자 지리산으로 달려가고는 했다.
처음 마주치는 곳마다 감동의 신세계였고, 골짜기마다 나는 눈을 새롭게 뜨고는 했던 것이다.

지리산은 정녕 포근하기만 했다. 산등성이와 골짜기만이 아니었다.
지리산의 자연세계를 닮은 산마을과 산사람들이 좋았다.
70년대 중반의 지리산 마을들은 토담집 일색이었다. 지붕이 낮은 집에서 호롱불을 켜고 사는 순박한 주민들과 금세 마음을 열고 친해졌다.

지리산의 잿빛이나 암울한 비극은 이미 역사의 저편으로 흘러간 것이다.
이제 지리산은 평화의 시대를 맞아 지난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혹한의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신록으로 뒤덮이는 숲처럼 지리산 사람들은 새로운 의욕으로 삶의 터전을 밝게 가꾸고 있었다.

산을 찾는 횟수가 잦을수록 지리산에서 찾는 기쁨은 날로 배가 되었다.
그 산이 품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민중의 숨결, 향기로운 문화의 자취가 그것이었다.
지리산은 민중의 아픔을 달래주는 모성의 산이자, 새로운 의욕을 심어주는 부성의 산이다.
지리산은 사람의 산이자 신앙의 산이요, 생명의 산이자 역사의 산이다.

지리산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민속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리산 개산의 역사를 지닌 달궁의 마한 피란도성, 가락국 마지막 비밀을 지닌 전구형왕릉, 국악의 연원지 운상원의 옥피리, 아자방과 차의 향기, 천왕봉의 성모석상에서부터 석탑과 석등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광대하다.

위대한 역사의 인물을 만나는 것도 대단한 감동이다. '지리산 정신'의 표상인 남명 조식, 매천 황현, 그들의 학문과 정신세계는 천왕봉처럼 우뚝하다.
또한 수많은 고승대덕의 자취와도 마주치는데, 특히 서산대사의 지리산 20년은 그 발자취가 아주 찬연하다.

하지만 지리산은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너무나 달라졌다. 마을마다 골짜기마다 쌍전벽해가 이루어졌다.
지리산 마을들이 현대화 상업화 되면서 지리산 사람들도 달라졌다.
내가 처음 만났던 그 산마을 산사람들은 이제 사라지고 어디에도 없다.

역사와 민속, 문화도 지난날들과는 사뭇 다르다.
속속들이 도로가 넓혀지고 자동차 행렬이 뒤덮고 있지 않는가.
자동차와 사람들의 소음으로 산이 담고 있던 향기가 사그라졌다.
그 산을 빛낸 인물들의 자취도 점점 퇴색되고 있다.

그 아늑한 산길의 정취도 사라지고 온통 시끌벅적한 소음들이 지리산을 뒤덮고 있는 듯하다.
인터넷으로 속속들이 산을 알린 사이트나 지리산의 이름을 파는 동호회들 때문에도 오히려 상처가 나고 얼룩이 지고 있다.
나 역시 그 죄를 지은 장본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지리산 앞에 너무 부끄럽다. 조용히 그 죄를 빌고 있을 따름이다.

.............................................................

[글쓴이의 말]
위의 글은 월간 '마운틴' 2005년 2월호에 '지리산, 적요 속에 듣는 영혼의 오케스트라'란 제목으로 실려 있는 필자의 졸문입니다.
요즘 이런저런 일에 쫓겨 정신을 놓고 있던 중 오늘 아침 신후님이 '최화수의 지리산산책' 댓글에서 위의 글을 언급한 대목을 보고, 새 글 대신 여기에 옮겨 싣습니다. 해량 바랍니다.]

  • ?
    오 해 봉 2005.04.15 13:37
    "나 역시 그 죄를 지은 장본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지리산 앞에 너무 부끄럽다. 조용히 그 죄를 빌고 있을 따름이다"

    화전을일구고 농사짓고 고사리 취나물등으로 춘궁기를넘기던 세월은
    먼 옛이야기가 된겁니다,
    산업사회에 들어오면서부터 풍요로워지며 살만하니 자연히 산을들찾고 자기들 건강관리를위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산선생님은 절대로 죄인이 아닙니다,
    지리산을 모르거나 조금 밖에모르는 우리들의 향도역할을 훌륭하게 하시는 선구자로 생각합니다,
    조금도 괘념치 마십시요.

  • ?
    김용규 2005.04.15 16:19
    오랫만에 새글을 올리셨군요. 지리산은 아직도 숨은 비밀이 많은것 같습니다. 얼마전 함양군 유림면 지곡리 손곡마을 앞 강(엄천강)의 제방둑 공사를 하다가 선사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몇 천년전의 그 골짜기는 원시 상태 그대로였다고 짐작이 가는데 유물의 발굴로 선사시대와 지리산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것 같더군요.
  • ?
    야생마 2005.04.16 00:54
    지금은 네팔도 가까워졌고 지리산도 뒷산 오르듯 하더군요.
    전 처음에 지리산갈때 호랑이 나오면 어쩌나 긴장했었는데
    어찌나 사람들이 많던지 정체도 생기고...산길도 널직하고...

    지리산의 자연과 산행의 묘미도 그렇고 무수한 문화와 방대한 역사,
    오브넷에서 특히 지리마당에서 많이 느껴보았습니다.
    최화수선생님 덕분에 물론 저는 아직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다양한 말씀으로 많은걸 느껴볼 수 있었어요. 지금 하시는 말씀으로 새로운 각성이 이미 시작되고 산을 찾는 덕목이 조금은 변화될 수 있겠지요.
    선구자이십니다. 무지한 저는 문화와 역사 앞으로도 오랫동안 느끼고 배울수 있길 소망합니다. 그럴려면 선생님 항상 건강하셔야지요.
  • ?
    선경 2005.04.19 03:08
    지리산 적요속에 듣는 영혼의 오케스트라.....
    제목만으로도 지리산이 가슴에 다가옵니다

    지리산역사와 문화와 민속...쉽게 접할수 없었던 부문을
    알려주신 여산 선생님께 늘 감사드리고 있답니다

    현대의 물결따라 옛것을 순수 그대로 만날수는 없어도
    지금이라도 모두 힘을 합쳐서
    지리산을 후손에게 자신있게 물려줄수있도록 더이상의 손상없이
    자연그대로의모습으로 보존시켜야겠습니다

    여산선생님 늘 건강과 행복 함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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