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사계곡은 뱀사골과 함께 지리산에선 둘뿐인 '한국의 명수(名水) 100곳'이다. 지리산의 많은 계곡 가운데 계류가 맑고 주변 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에 명수로 선정되었을 법하다.
대원사계곡을 칭송하는 글은 흔하게 본다. 우선 행정관할구역인 산청군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대원사계곡 예찬을 보자.
'기암괴석을 감도는 계곡의 옥류소리, 울창한 송림과 활엽수림을 스치는 바람소리, 산새들의 우짖는 소리가 어우러지는, 대자연의 합창을 들을 수 있는 계곡이 대원사계곡이다. (중략)유평리에서부터 청정 비구니가 독경으로 세상을 깨우듯 사시사철 쉼없이 흐르는 물소리로 깊은 산중의 정적을 깨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대원사계곡을 일컬어 남한 제일의 탁족처(濯足處)로 꼽았다.
"너럭바위에 앉아 계류에 발을 담그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먼데 하늘을 쳐다보며 인생의 긴 여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 보다 더한 행복이 있으랴."
대원사계곡은 골이 깊다보니 변환기 때마다 중요 피난처이자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1862년의 농민항쟁에서부터 동학혁명에 이르기까지 변혁에 실패한 사람들끼리 모여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일제시대에는 항일의병의 은신처가 되었고, 6.25전란에 이어 빨치산이 기승을 부릴 때는 낮에는 국군, 밤에는 빨치산 세상이 되기도 했다.
대원사계곡은 '한국의 명수 100곳'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대원사계류는 정녕 울창한 송림을 흔드는 바람소리와 어우러지는 옥류라 불러도 될까?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1960년대까지 대원사계곡 일대에 많은 화전민들이 살았는데, 지금까지 그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는 때문이다.
산속의 화전민들을 한곳에 모은 이른바 독가촌들, 지금까지 사람들이 가축을 키우고 과수를 가꾸고 농사를 짓고 민박을 하는 마을로 버티고 있다.
새재마을, 중땀마을, 외곡마을, 삼거리마을, 유평마을 등이 그러하다.
대원사계곡은 이들 주민의 생활오수 등이 알게 모르게 흘러들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명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지...?
대원사계곡길은 걸어서 가기에 기막히게 좋은 곳이다. 조선 소나무들이 그려내는 환상적인 그림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넘칠 터이다.
그러나 실제 그곳을 걸어가보면 그 같은 기대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자동차들이 쉴새없이 굉음과 매연을 내뿜으며 질주한다.
그 자동차들 때문에 대원사계곡길은 걸어갈 수가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국립공원 대원사매표소가 있는 곳에 대규모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관광버스 등 대형버스만 그곳에 주차하고 승용차 등은 매표소를 통과하여 새재마을까지 총알처럼 오르고 내리고 한다.
심지어 화물을 가득 실은 짐차들까지 요란하게 내왕한다.
대원사계곡을 제대로 즐기고자 아침 일찍 매표소를 통과해보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다. 이른 아침이라고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립공원 구역 안의 화전민 독가촌들을 왜 지금까지 그대로 두고 있을까? 더구나 주택을 양옥으로 개조하는 것까지 허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원사계곡 입구를 막아 입장료를 징수한다.
'청정 대원사계곡'은 어디로 갔는가? 국립공원은 대원사계곡의 '청정함'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매표소 안의 독가촌은 적정보상을 하고 공원구역 밖으로 이주시켜야 할 것이다.
그도 아니면 자동차 통행이라도 금지시켜야 한다. 공해가 없는 모노레일 운행을 하든지 마차가 다니게 하든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원사계곡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어서 가는 길로 되살려야 한다.
마음속에 여유를 갖고 걸어 올라가보면 지나다니는 자동차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