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난다
구천에 뿌리 곧은 줄을 그로하여 아노라'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가운데 소나무 대목이다.
어디 고산(孤山)과 같은 선비뿐이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소나무이다.
여론조사에서 소나무가 단연코 으뜸이고, 두번째가 은행나무다.
소나무는 장수를 상징한다.
소나무는 거북, 학, 사슴 등과 함께 이른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이다.
사철 푸른 소나무는 대나무와 더불어 절개와 지조를 상징한다.
인정도 의리도 내몰라라 하는 현실사회에서 저 소나무의 고고한 기상이라니!
나무 학자들은 우리의 숲은 세계화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왜일까?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종인 우리 숲에는 민족의 얼과 정기가 서려 있기 때문이란다.
다른 것은 세계화를 하더라도 숲만은 우리만의 것으로 존재할 따름이라는 것.
대원사계곡은 '한국 100 명수'의 물의 명소이다.
대원사계곡은 '100 명수'에 걸맞는 숲의 명소이다.
숲으로만 친다면 다른 곳이 더 앞설 수도 있다.
하지만 낙락장송이 그려내는 신선세계는 이곳이 독보적이다.
계곡을 따라 걸어가면 신선세계에 든 듯한 느낌이 앞선다.
천상의 미인 미녀송(美女松)들이 꿈결같이 도열하고 있고...!
우리 소나무는 육송과 해송이 주종이다.
그들은 겉보기부터 확연히 구별된다.
육송은 여성이고, 해송은 남성이다.
육송은 곡선이고, 해송은 직선이다.
육송은 부드럽게 속살을 붉히고, 해송은 거칠고 거무틱틱하다.
여인처럼 아름다운 자태의 육송을 흔히 '조선소나무'라 부른다.
대원사계곡이 빛나는 것도 이 조선소나무 때문이다.
대원사계곡은 소나무로 하여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아니, 대원사계곡의 진정한 매력은 이들 소나무에서 찾게 된다.
다른 어떤 곳보다 청정한 대원사계곡의 조선소나무!
이들 소나무가 요즘 들어 특히 주목되는 까닭이 있으니...!
소나무 가운데 특히 육송, 조선소나무들이 지금 엄청난 재앙을 맞고 있다.
재선충(材線蟲)이란 무서운 벌레가 소나무들을 결딴내고 있는 것.
소나무재선충병은 매개충이 솔수염하늘소다.
1밀리미터도 안 되는 이 벌레가 소나무의 양분 이동통로를 차단해 고사시킨다.
번식력도 강해 한 쌍이 20일이면 20만 마리로 증식된다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재선충이 처음 발견됐다.
동물원이 일본에서 원숭이를 수입하면서 소나무 우리를 들여왔는데, 거기에 재선충이 묻어온 것이다.
그로부터 17년, 이 재선충은 경남, 북 지역 50개 시, 군, 구로 확산돼 피해면적이 5000㏊를 넘어섰다.
베어내거나 고사한 소나무만도 100만 그루에 이른다.
2112년에는 우리나라 소나무 16억 그루가 전멸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한번 걸리면 100% 고사하기 때문에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병.
부산 금정산의 조선소나무들은 거의 고사한 지 오래이다.
필자가 매일 아침 찾고 있는 부산 대신공원(구덕산, 엄광산, 구봉산)은 수년째 아름드리 조선소나무들을 베어내 훈증처리한 것들이 공동묘지처럼 흉칙하게 자리한다.
경북 임하까지 북상했다는 이 재선충이 거기서 110킬로미터나 떨어진 강릉에서 발견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엊그제 날아들었다.
소나무 에이즈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사실상 없게 되었다.
대원사계곡의 조선소나무를 다시 보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원사계곡의 조선소나무가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생각된다.
저토록 수줍게 얼굴 붉히고 있는 여린 소나무들!
저 심심산골의 숫처녀들이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에이즈에 걸린다면!!!
아, 그보다 더 슬프고 억울한 노릇이 이 세상에 또 있을 수 있겠는가!!
참 안타까운 일이군요,
황우석 박사같은 분들이 재선충잡는 연구도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