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대원사계곡을 따라 걸어보았는가?
아니, 해가 막 떠올라 햇살이 숲 위에서 미끄러지고 있을 때라도 좋다.
대원사계곡길은 걸어서 가야 한다.
자동차를 타고 쏜살같이 내달려야 할 그런 곳이 아니다.
대원사계곡 매표소가 있는 대원사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가야 한다.
대원사계곡을 찾는 이는 무엇무엇을 눈과 가슴으로 보는 것일까?
계곡바닥을 온통 뒤덮고 있는 암반들인가?
한지(韓紙)보다 더 희기도 하고, 나뭇잎보다 더 파란 계류를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때죽나무, 굴참나무, 서어나무, 당단풍나무...들이 무성한 숲인가?
제마다 눈과 가슴에 새기는 것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대원사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물인가? 이 계곡 물이 '한국의 명수 100곳'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으니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이름을 날린 이는 이곳을 '탁족(濯足)'에 안성마춤이라고도 했다.
또 있다.
대원사계곡에는 그 옛날 산으로 드는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씻었다는 '세신탕'과 '세심탕'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계곡의 이름도 두 가지이다.
'대원사계곡'이라 하고, 또 '유평계곡'이라고도 한다.
그 이름처럼 대원사가 자리하고, 사연이 많은 유평마을도 있다.
비구니 사찰인 대원사, 가랑잎학교가 있던 유평마을, 그 사이 '용소'의 비경도 대단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아니다.
대원사계곡에서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따로 있다.
너무너무 질박하고, 슬프도록 아름답다.
이 세상의 모든 그림들을 초월한 아름다운 그림.
아, 한 둘이 아니다.
그 모습이 모두 다른 것들이 차례차례 얼굴을 내민다.
아름답다.
청정하다.
향기롭다.
고고하다.
질박하다.
담백하다.
.....
그것은 소나무다.
육송, '조선소나무'!
둥치와 가지가 발갛다.
푸른 청솔 뒤에 숨고도 무엇이 부끄러울까?
얼굴 붉히고, 속살도 붉힌다.
산중여인인가, 천상선녀인가?
대원사계곡의 '조선소나무'들!
대나무처럼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왕관을 쓴 채 미소를 짓고 있다.
목공예 하듯 손발을 비튼 채 있다.
계류에 발을 담근 채 간짓대처럼 서 있다.
....
대원사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돌담장 너머로 석탑을 볼 테지.
그것도 좋지만...
계곡 건너편 산등성이를 올려다 보라.
햇살이 눈부시게 막 비껴내리는 그곳.
황금색 소나무들의 도열이라니!
여인들이 그처럼 얼굴을 붉힐 것인가?
대원사계곡길을 자동차를 타고 가지말라.
대원사도, 유평마을도, 새재마을도 걸어서 가라.
아름답고 청정한 '조선소나무'들을 보라.
어찌 매연과 소음을 솔향에 내뿜겠는가.
차를 타고 가면 볼 수도 없다.
소나무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모습들을!
마주치는 소나무마다 얼굴과 속살을 얼마나 붉히던지요!
......
이번 주말을 포함하여 나흘 동안 일본 도쿄에 머뭅니다.
그 준비에 바빠 얼룽뚱땅 이 글부터 우선 올려놓습니다.
일본 다녀온 뒤, 저 아름다운 조선소나무 만나겠습니다.
오브넷 가족 모든 분에게도 솔향기가 그득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