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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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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양지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 찬 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피우고 앉았으니 / 한 점 티끌로 오는 것이 없어라'-고려말 원정공 하집의 매화시다. 그가 산청 남사마을에 심은 매화가 '원정공 매화'인데, 홍매화로 지리산 매화 가운데 그 자태가 으뜸이다.

지난 주말인 11일 섬진강 매화축제가 시작됐다. 온 마을을 뒤덮은 수십만 그루의 매화가 꽃을 피우며 섬진강과 어울려 빚어내는 정경을 선히 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 차파(車波)로 빚어지는 정체와 혼잡, 소음이라니! 그것을 알면서도 일요일인 12일 매화마을을 찾았다. 빙자옥질(氷姿玉質)의 매화이니, 올해는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해서다.

꽃샘추위에 강풍, 먹장구름에 먼지기둥 등 현지 상황이 썩 좋지 못했다. 섬진교에서 차량을 통제, 강변 모래밭 임시주차장에서 셔틀버스에 옮겨타게 했다. 교통경찰이 겹겹이 차량진입을 막고 있는데도 축제 현장은 차량과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무엇보다 매화꽃이 거의 피지 않고 있었다. 꽃이야 피었거나 말았거나 장사하는 사람들의 소음이 요란했다.

'집 양지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원정공 시조를 또 떠올렸다. 발길을 돌려 산청 남사리로 향했다. 집단군락이 아니라 한 그루 우리 토종 매화의 단아한 자태와 은은한 향기가 그리웠다. 2500개의 장독대와 홍쌍리 명장의 인간승리 등 청매실농원의 감동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시절이 하수상한 때문일까, '설중매(雪中梅)'의 참뜻을 한번쯤 생각하게 한다.

"껍데기와 뼈대는 그려도 정신을 그리기는 어렵다"-명나라 한 화가의 말이다. 매실음식전 등 매화 관련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매화축제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탐매(探梅)와는 거리가 멀다. 매화는 요란법석의 축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일본에서 대량생산을 위해 개량한 왜매(倭梅)가 들어와 매화상업주의를 퍼뜨렸다는 주장도 나오는 판이다.

'예담전통민속마을' 남사리에 닿았다. 하지만 '매화집' 대문은 주인이 출타하여 굳게 닫혀 있었다. 워낙 오래 된 고목이어서 한 두 가지에서 매화꽃을 피운다고 이웃주민이 말했다. '원정공 매화'를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실망할 것은 없었다. 가까운 거리의 단속사지(斷俗寺址)와 산천재에 유명한 '정당매(政堂梅)'와 '남명매(南冥梅)'가 있기 때문이다.

청계계곡 깊숙이 자리한 단속사터를 찾았다. 동서 5층석탑만 남아있는 빈 절터에 '정당매 비각'과 함께 정당매가 서 있다. 고려말 강회백이 이 절에서 공부할 때 심은 수령 640년의 한국 최고(最古) 매화이다. 그이가 정당문학에 올랐다고 하여 '정당매'로 불린다. 하지만 골짜기가 깊은 탓인지 고목의 새 가지는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고 있었다.

산천재(山天齋)를 찾아 '남명매'와 만났다. 양지 바른 덕분에 이 백매는 그래도 여러 개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은은한 아정(雅情)과 고취(高趣)의 감동이라니! 하지만 단속사지의 '정당매'도 산천재의 '남명매'도 오랜 세월의 풍상만 안은 채 너무나 쓸쓸히 자리한다. 이들 매화를 찾아온 사람은 그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섬진강 매화축제장의 '떼거리 관광'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매화는 네 가지 귀한 것이 있다고 하여 예부터 관상의 기준으로 삼았다. 함부로 번성하지 않은 희소함, 어린 나무가 아니라 늙은 줄기의 모습, 살찌지 않고 홀쪽 마른 모양, 활짝 핀 것이 아니라 갓 피어날 꽃봉오리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요란법석의 매화축제장을 찾아야 할는지, 한 그루 토종 '선비 매화'를 찾아야 할지 그 대답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매화는 나무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다. 병풍이나 족자에서, 청자나 백자 도자기 위에서도 피어났다. 서재에 늘 자리하며 선비들에게 청빈과 지조, 바른 법도를 지키게 했다. '골프 소동'이 온 국민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있는 요즘 매화 한 그루가 지니고 있는 뜻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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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마 2006.03.15 22:40
    성추행을 행하는 정치인도 매화의 고결한 자태를 보기도 힘들겠지요.
    매화축제가 시작되었군요. 아직 매화가 만개하진 않았나 봅니다.
    산천재의 '남명매', 단속사지'정당매' 남사리의 '원정공매화' 이름만 들어도 그 기품이 느껴지네요. 일반인들도 그 매화들을 만나볼 수 있겠지요?
    '황제골프','황제테니스'치듯 특정인들만 찾을 수 있는건 아닐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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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6.03.15 23:56
    남명매 정당매와함께 섬진강 매화 축제소식 반갑습니다,
    서울쪽은 12일날 영하의날씨에 바람이 무척불어서 체감온도는
    영하 10도가 훨씬 넘었답니다,
    야생마님은 멀리있어도 국내사정도 환하네 그려,
    그도 한때는 국민들의 아낌없는 사랑을받으며 잘나갔는데 권력에
    취하다보니 그렇게 지저분 해진것같네,
    3.1절이 골프치는 날인가,
    그것도 국무총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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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비림 2006.03.18 08:04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탁영집(濯纓集)에 있는 정당매시문후(政堂梅詩文後)에 보면 강회백이 원래 심었던 정당매는 100여년이 지나 고사하고, 그 손자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아들 용휴(用休)를 시켜 다시 심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지금 있는 정당매가 강용휴가 심은 것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500년 조금 넘은 것입니다. 매화가 500년을 넘어 살기가 쉽지는 않으니까 지금의 정당매도 기록에는 없지만 강용휴 이후에 누군가가 다시 심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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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경 2006.03.18 13:31
    고귀한 정당매와 남명매,,,
    그은은한 아정과 고취의 감동,,,,여산선생님 너무 부럽습니다
    매화의 네가지 귀한점을 알고부터는 매화를 감상하는
    느낌의 깊이가 다를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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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6.03.31 19:26
    반갑습니다 如山선생님!
    귀한글 매화향의 순수를 더욱 일깨워주십니다
    남명매,정당매의 산천재 매화소식에 여유를 느낍니다
    도시화 관광화된 군락지 보다 두메 산골 '묵점' 한 농가의
    매화에서 겨울을 이겨낸 절창의 그 향기에 취한던 일이
    그리워집니다 건필하시어 늘 고맙습니다
    Annapolis 의 새벽에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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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6.04.01 19:54
    선비매화에 심취하지 못하는 국민정서가
    못내 아쉽기도 합니다
    매화의 네가지 귀한점을 더욱 잘 익히며 글을 읽습니다
    '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추운겨울은 이겨낼지언정
    그 향기는 팔지 않는 다는 옛 선비의 말.
    깊이 새겨오던 말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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