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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222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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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동부 관문 덕산(德山)은 지금 행정명칭에 따라 시천(矢川)이라 부른다.
시천은 경남 산청군의 면 이름이기도 한데, 천왕봉에서 쏟아져내리는 중산리계곡 물과 세석 쪽에서 흘러내리는 내대천이 합쳐 화살처럼 물살이 빠르다고 하여 '시천'이란 이름이 붙었다.
시천의 원래 이름은 살천(薩川)인데, 갈마음수(渴馬飮水)의 명당인 '음수모퉁이'를 기준으로 위쪽을 '물윗골', 아래쪽을 '물아래'라고 불렀다.

물아래 마을은 고려 녹사 한유한이 신선이 된 곳이요, 또 산림처사 남명이 산천재를 열어 영남학파의 꽃을 피운 명소로 세월이 흐를수록 그 문향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덕산 분지가 끝나는 갈마음수의 음수모퉁이 그 위쪽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지리산록에 더욱 바짝 기댄 촌락들이다. 그런데 이 촌락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 이름과 똑같은 실제상황을 놀랍게도 현실로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고유의 지명(地名) 그대로의 현실화다.
음수모퉁이를 돌아 얼마간 오르면 계곡 건너편에 반천(反川)이란 마을이 있다.
반천으로 건너가는 갈림길에 있는 마을은 신천(新川)으로 옛 이름은 '새내'였다.
반천은 마을 위편 고운동에 양수발전수 상부댐을 설치, 물이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것을 예측한 셈이 됐다.
신천이란 지명 역시 양수발전소가 새로운(新) 내(川)를 만들었다고 하여 현실과 용케 부합이 된다.

중산리와 내대리(거림골)의 갈림길이 있는 곳이 교통의 요지인 이름난 곡점마을이다. 우천 허만수님이 자주 찾았던 미모의 여자주인이 열고 있던 국밥집도 이곳에 있었다.
이 곡점마을에 산청양수발전소가 들어서게 됨으로써 주변 일대의 지도가 완전히 바뀌어졌다.
곡점부락 한가운데서 좁다란 다리를 건너 내대리로 들어가던 도로가 훨씬 위쪽의 산줄기에 터널을 뚫어 예치(禮峙)마을로 통하게 해놓았다.

내대리 쪽의 마을 이름들은 아주 아름다운 뜻을 지니고 있다.
내대리와 장판터, 청래, 남대리 등을 통칭하여 지난날에는 '한차례'라고 불렀다.
이 이름을 한자로는 '대차례(大次禮)'라고 적었고, 앞의 '예치'마을 이름은 한차례로 가는 고개라는 뜻이었다. 또한 '여리재'라는 표기도 거기서 나왔다고 한다.
이곳의 원래 지명 '한차례'와 '여리재'는 고유한 순수 우리말 지명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이곳의 지명이 예절을 상징하는 예(禮)자를 많이 쓰고 있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도덕과 예절을 숭상했던 우리 겨레의 전통미덕이 이곳 지리산 천왕봉 남쪽 산골마을들의 이름에서부터 짙게 배어 있는 것이다.
'한차례(대차례)' 마을로 들기 위해 예치 고개를 넘어갔던 옛 사람들의 발걸음마다 배어 있을 예절을 떠올려보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선비와 예절의 고장이 산청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대리로 가는 이설도로의 다리가 놓여있는 골짜기의 원래 이름이 '다리골'이었다.
또한 양수발전소의 상부댐과 하부댐의 통수로가 지하로 통해 있는 곳의 지명은 '수왕골'이었다.
내대천 하부댐의 물을 2대의 양수기가 전력이 남아도는 밤시간에 상부댐으로 퍼올렸다 낮에 하부댐으로 내려보내며 발전한다.
70만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하는 양수발전소 물이 오르내리는 통수로이니 수왕골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 고장이 배출한 의도(義盜) 임걸룡(林傑龍) 전설이다.
내공리 정각사 자리는 수백년 전 삼남대적으로 유명한 임걸룡이 출생한 터다.
엿장수를 하는 부부가 이곳에 한 칸 집을 짓고 살며 임걸룡을 낳았다.
이 아기는 4, 5세 때 이미 비상한 재주를 보였다. 엿장수 부부는 어린아이를 집에 두고 장사를 나갔는데, 선반 위의 엿이 자꾸만 줄어들어 하루는 숨어서 지켜보게 됐다.

임걸룡은 엽전 한 닢을 화로불에 달군 후 실을 엽전 구멍에 단단히 매어서 엿을 놓아둔 그릇에 던져두었다가 실끈을 잡아당기니 엽전에 녹아붙은 엿가락이 실끈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었다.
아기 어머니가 "요놈의 자식이 방 아랫목에서 밥먹고 윗목에다 똥싸면서 도둑질해 먹는 것이냐. 앞으로 큰 도둑이 되겠다"고 호통쳤다.
임걸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어머니가 가르쳐준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지략이 비범한 임걸룡은 그 후 자라며 무예를 즐겨 말타기 활쏘기를 좋아했다.
그는 정각사 동쪽에 있는 쥐설이란 묘 옆에서 준마 한 필을 얻게 됐다.
그는 또 마근담(덕산 입구 골짜기) 위쪽 봉우리에 산채를 마련하여 훈련을 시키고 활동을 하다가 산청 새고개의 석굴에 숨어들어 삼남대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에게 일화가 많지만, 지리 주능선의 '임걸령'이란 지명이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2003년 2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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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옹 2004.08.01 19:02
    무더위에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천왕봉 아래 덕산지역의 지명을 알기쉽게 풀어주셨습니다.
    시천(矢川)면도 있지만 지리산 북쪽으로 주천면이 있던데 한자로 표기하면 '朱川'이 맞는지요?
    어느 지도에서 보니 모두 '矢川'으로 표기를 해서 헷갈리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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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04.08.02 11:54
    남원시에 주천면(朱川面)이 있지요. 육모정과 구룡계곡, 정령치 등이 이 주천면에 있는 지리산 명소들입니다. 주천면은 1914년 행정구역 통합 때 주촌면과 하원천면 등을 병합하면서 주촌면의 주(朱)와 원천면의 천(川)자를 따서 주천(朱川)면으로 쓰게 됐다고 합니다.
    지리산 둘레의 주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고장이기도 합니다. 춘향묘소, 용담사 석불입상(보물 42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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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4.08.06 05:15
    산청땅, 지리산 문턱 지역 구비구비 마을 이름과 자연에 남아 숨어있는 이야기들 열심히 많이 읽어두겠습니다. 쓰시마 이즈하라 아리랑 축제기간에 건강 유의하시고 날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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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4.08.08 10:29
    산청 시천면과 임걸령에관한 재미있는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다리골 수왕골의 이야기도 의미가깊군요,
    양수발전소가 생길걸 알고이름을 그리지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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