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192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천 '소문난 짜장면'의 강상길 사장이 내놓은 두툼한 대학노트 철, 앞면과 뒷면에 깨알같은 글씨로 새카맣게 써놓은 것이 무려 200여쪽이다. 대충 계산을 해보아도 200자 원고지 1,000장에 이를 방대한 분량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저의 파란만장한 삶을 여기에 죄다 털어놓았습니다."
강상길님의 표정은 너무 진지했다.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구만!)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이는 바른쪽 팔이 없다. 그러니까 이 방대한 분량의 원고도 하나뿐인 왼손으로 썼다. 그는 지금도 손수 밀가루를 반죽하여 면을 뽑고 탕수를 만들며 식당 손님들을 맞이한다. 그이의 하루는 일에서 시작하여 일로 끝난다. 그이는 피로에 지쳐 곯아떨어져야 할 밤 늦은 시각에 졸음을 떨쳐내며 자신이 살아온 삶의 족적을 대학노트에 한자 한자 써나갔다. 지난 해 사월 초파일 이후 거의 1년 동안 그렇게 한 작업의 전부가 이 대학노트 철에 담겨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공기나 물처럼 너무 흔하게 늘상 이루어진다.
너무 많은 만남이다보니 그 대부분은 바람이 스치듯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잊혀진다. 옷깃이 한번 스치는 것에도 천년의 인연이 있다지만,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들과 지치고 피곤하도록 부딪히기 때문에 아주 쉽게 잊는 것에도 익숙해져 있다.
그렇지만 우연한 만남이 질긴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어쩔수없는 인간관계의 고리를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 초파일 전야, 지리산 답사팀의 즐거운 모임을 가졌던 마천의 '소문난 짜장면'집!
'소문난 짜장면' 못지않게 자장면집 주인 강상길님의 소문도 굉장했다.
'지리산을 닮은 지리산 사람'인 그이는 순진무구한 인상이 참으로 좋다.
하지만 그이는 오른쪽 팔이 없는 장애자이다. 그이는 그 육신의 장애를 뛰어넘어 건강한 삶을 이룩해냈다.
마천의 '소문난 짜장면'은 '아름다운 인간승리'와 더불어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욱 유명한 것이다.

그렇다고 '소문난 짜장면'집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왼팔 하나뿐인 장애자 강상길님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있었다. 그 얘기를 차분하게 한번 들어보라고 지리산 답사팀의 '초암', '돌쇠'님이 나에게 권유를 했었다.
그래서 추성동 민박집으로 옮겨 강상길님과 마주앉았고, 그이는 뜻밖에도 자신의 드라마틱한 삶을 육필로 기술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강상길님은 1년 전의 그 약속을 두툼한 대학노트 철로 내 앞에 내놓은 것이다.
그이의 글이 아주 방대한 분량인 것에 나는 먼저 놀랐다.
원고지로 환산해보면 200자 1,000장의 분량이니, 이게 장난일 수가 없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이와 나와의 어떤 질긴 인연의 끈을 직감했다.
그 대학노트 철로부터 나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정말 책으로 펴낼 작정이오?"
"예,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강상길님은 마천에서 자리잡은 '소문난 짜장면'집과 더불어 지리산에 완전하게 정착한 것이다. 더 이상 생활 걱정을 하거나 방황할 일도 없다.
나이도 이미 60대로 접어들었으니, 웬만하면 이 정도에서 '편안한 노후'나 생각하는 것이 좋을 법하다.
하지만 그이는 그렇지가 않다. 자신의 진정한 꿈은 이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지리산에 노인들이 편안하게 노후를 의탁할 수 있는 경로복지시설을 만들 의욕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경로복지시설의 원동력을 거기서 얻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게 책이 될 수 있겠는지, 한번 좀 봐주세요. 책은 꼭 내야 하니까,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람과 사람의 질긴 인연의 끈은 이렇게 한쪽의 뜻과는 관계없이 이어지는가 보았다.
그이의 '인간 승리'는 무섭도록 강한 집념과 의지에 따른 결과였다.
"이것이 책으로 나오도록 봐달라!"는 그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여지란 전혀 없었다. 아무리 거절한다고 한들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그이가 아니었다.

강상길님은 나의 대답도 듣기 전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의 프로인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의 프로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2003년 7월4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4 '지리산 놀이'-'도사 되기'(1) 최화수 2004.01.30 2916
293 '지리산 놀이'-'도사 되기'(2) 최화수 2004.01.30 2276
292 '지리산 놀이'-'도사 되기'(3) 최화수 2004.01.30 2232
291 '지리산 놀이'-'도사 되기'(4) 최화수 2004.01.30 2448
290 '지리산 놀이'-'도사 되기'(5) 최화수 2004.01.30 2158
289 '지리산 놀이'-'도사 되기'(6) 1 최화수 2004.01.30 2208
288 마천의 '소문난 자장면'집(1) 최화수 2004.01.30 2346
287 마천의 '소문난 자장면'집(2) 최화수 2004.01.30 1896
» 마천의 '소문난 자장면'집(3) 최화수 2004.01.30 1927
285 [나의 프로 인생 끝나지 않았다] 최화수 2004.01.30 189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0 Next
/ 30
위로